'아일랜드의 머독' 데니스 오브라이언

[글로벌 리포트 | 영국]김지현 골드스미스 런던대 문화연구 박사과정

▲김지현 골드스미스 런던대 문화연구 박사과정

영국 미디어를 쥐락펴락하는 거물로는 루퍼트 머독(Rupert Murdock)을 단숨에 떠올릴 것이다. 그렇다면 아일랜드의 경우에는 어떨까? 영국 언론은 이구동성으로 ‘아일랜드의 머독’으로 데니스 오브라이언(Denis O’Brien)을 지목한다.


중남미를 중심으로 전세계 32개국에 무선통신 서비스를 판매하는 디지셀 그룹의 회장인 오브라이언은 그동안 아일랜드 출신의 억만장자 정도로만 국내에 알려져왔다. 하지만 거침없는 언변과 화려한 사생활로 언론의 가십란에 자주 등장하는 머독에 비해 유명세를 덜 떨쳤을 뿐, 그 역시 경제권력을 이용해 영미권의 유력매체들을 사들이며 비슷한 행보를 보여왔다.


현재 오브라이언이 아일랜드에서 소유하고 있는 매체들은 지면상 일일히 소개하기 힘들 정도로 많다. 공식적으로 그는 독립뉴스미디어(Independent News & Media)와 커뮤니콥(Communicorp)의 최대주주로 이름을 올리고 있다. 이 두 회사는 아일랜드 유력 신문사들과 라디오 채널 상당수를 소유하고 있다.


먼저 신문을 맡은 독립뉴스미디어는 아일랜에서 최대 판매부수를 자랑하는 아일랜드 인디펜던트와 선데이 인디펜던트를 비롯, 선데이 월드와 더블린 헤럴드 등의 일간지들과 아이리쉬 데일리 스타지와 같은 가십지, 14개의 지역신문을 발행하고 있다. 반면 커뮤니콥은 아일랜드 최대 규모의 상업라디오 채널인 뉴스토크를 비롯해 투데이 FM, 더블린 지역라디오 98FM, 스핀 1038, TXFM, 스핀 사우스웨스트 등 수많은 라디오 방송채널을 운영하고 있다.


하지만 그동안 이런 문어발식 경영을 언론계에서 문제삼는 일은 드물었다. 지난 8일, 영국의 언론인노동조합(NUJ)이 침묵을 깨고 이례적으로 아일랜드 정당들에게 아일랜드 내부의 미디어 소유권에 대한 조사를 요청하기 전까지는 말이다.


현재 아일랜드에서는 1992년 아일랜드 독립의 단초가 된 일명 ‘부활절 봉기’ 100주년을 맞아 정치권 개혁에 대한 일반의 관심이 높다. 이에 영국언론인노동조합은 정치개혁의 연장선에서 미디어의 자유를 위한 특별위원회를 구성, 정당을 초월한 협력으로 특정 인물이나 회사에 의해 언론권력이 독점되는 것을 방지해달라고 아일랜드 정치권에 성명을 통해 요청했다.


영국과 아일랜드의 일간지들은 이번 언론인노동조합의 성명이 사실상 오브라인언을 겨냥하고 있다고 분석한다. 아이리쉬 타임즈의 핀탄 오툴(Fintan O’Toole)은 칼럼을 통해 오브라이언은 “아일랜드 미디어업계에서 과도하게 자신의 권력을 휘둘러왔다”며 이로 인해 ‘(아일랜드) 민주주의의 공적 영역’이 훼손돼왔다고 주장했다.


영국의 일간지 가디언 역시 아일랜드에서 오브라이언을 비판할 수 있는 뉴스조직은 아이리쉬 타임즈와 RT 방송사 정도만 남았다고 지적하며, 오브라이언의 무소불위 언론권력이 정치권에마저 강력한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는 상황이라며 핀탄 오툴의 칼럼에 동조했다.


아일랜드 출신으로 이번 성명서를 발표한 영국 언론인노동조합에서 총무로 활동하고 있는 셰이머스 둘리(Séamus Dooley)도 이번 조치를 지지하는 발언으로 관심을 끌었다. 그는 비슷한 시기 라임릭 대학에서 열린 저널리즘 특강에서 “그동안 공론화가 안 됐을 뿐, 아일랜드 언론산업에서 오브라이언은 예전부터 악명을 떨쳐왔다”고 주장했다. 존 디바인(John Devine) 전 언론인노동조합 회장 역시 이날 특강에 참석, “어떠한 정부도 신문사주와 전쟁을 벌이려 하지 않는 것이 문제”라며 오브라이언에 대한 아일랜드 정치권의 견제를 촉구했다.


주목할 점은 이번 성명서를 계기로 오브라이언 개인에 대한 비판뿐 아니라 이제 영미권에 만연한 자본친화적인 신자유주의적 미디어 소유구조에 대한 문제가 환기되고 있다는 점이다. ‘가디언’의 칼럼니스트 로이 그린스레이드(Roy Greenslade)는 재벌이 한 나라의 미디어 소유권을 과도하게 가져갈 때 나타나는 문제는 단순히 소유구조의 투명성 문제로만 접근해서는 안된다고 지적한다. 사주의 입김이 들어가기 시작하면 이는 결국 유연한, 불안정한 고용조건에서 일하는 언론인들의 의제설정 활동에 부정적인 영향을 미치게 된다는 것이다.


실제로 지난해 오브라이언이 연루된 스캔들이 불거졌을때 그가 소유한 아일랜드의 매체들은 약속이라도 한 듯 이를 보도하지 않았다. 재벌과 기업의 언론장악이 우려되는 이유가 바로 이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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