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라고 얘기하자 소개팅에도 나오지 않더라"

[기자는 무엇으로 사는가] 제2부:위기의 기자들 ②짝이 되기엔 부담스러운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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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봉·위험한 직업’ 선입견에 영화 속 부정적 이미지 덧칠
배우자감으로 부담스러워 해…결혼정보회사 등급도 하위권
잦은 술자리에 불규칙한 업무…가정에 충실할 수 있을까 우려
입사 5년차 이하 주니어 기자들 바쁜 취재에 데이트 취소 빈번


“장가가고 싶어도 소개팅이 뚝 끊겼어요.” “기자란 말 듣고 달라지는 표정 보면 불편하죠.” 젊은 기자들의 푸념이다. 지난 11일 저녁 주니어 연차 기자 8명에게 연애에 대한 속마음을 물었다. 또래 기자들의 고민은 비슷했다. 특히 남자기자들은 최근 영화 ‘내부자들’이 흥행한 이후 만남이 어려워졌다고 입을 모았다. 한 일간지 사회부 6년차 A기자는 “서로 사진을 보고 소개팅을 받기로 돼 있었는데 기자란 직업을 듣고 갑자기 나오지 않는다고 한 여성이 있었다”며 “친구한테 물어봤더니 영화보고 지레 겁을 먹은 것 같다고 들었다. 영화가 곧 현실은 아닌데 선입견이란 게 무섭구나 싶었다”고 했다.


4년차 방송기자 B씨의 사정도 다르지 않다. 바쁜 와중에도 시간을 쪼개 2주에 한 번씩 소개를 받아온 그는 불쾌했던 경험을 잊을 수 없다고 했다. 상대 여성이 기자란 직업에 대해서 자세히 캐묻더니 “친구들이 기자는 만나지 말라고 했다”고 했다는 것. 주변인들이 ‘술자리나 접대가 너무 많은 직업’ ‘인터넷에 떠도는 말들 짜깁기하는 기자’ 등의 이유를 들며 반대했다고 한다. B씨는 “최근 ‘기레기’란 이미지가 퍼지며 더욱 반감을 갖게 된 분위기”라며 “사실 선후배들을 보면 좋은 사람이 많은데 아쉬울 따름”이라고 전했다.


▲일러스트=김성규 기자

여기자들도 출산과 육아라는 큰 산 앞에서 번번이 넘어지기 일쑤다. 남성들은 바쁘고 일에 치이는 여기자들을 부담스러워한다. 한 일간지 온라인 부서의 8년차 C기자는 “오죽하면 결혼정보회사 등급에서 방학이 있고 여유롭게 아이들을 돌볼 수 있는 교사는 상위권인 반면, 여기자는 바쁘고 드센 이미지 탓에 꼴찌라는 소문이 있겠나”라고 푸념했다. 술을 자주 마시는 직업이라는 것도 남자들에게는 부담으로 다가온다. C기자는 “첫 만남 때 대화가 잘 통해 호감을 보이다가도 관계가 진전된 이후 높은 업무강도와 잦은 술자리에 자연스럽게 피하는 경우가 많다”고 고백했다.

소개팅 시장서 외면당하는 기자들
젊은 기자들 사이에서 ‘이러다 정말 솔로로 남는 것 아니냐’는 볼멘소리가 여기저기서 터져나온다. 특히 최근엔 SNS나 포털을 중심으로 ‘기레기’라는 신조어가 등장한 데 이어 지난해부터 영화에서도 기자의 이미지가 부정적으로 그려지며 이성간의 만남이 더욱 힘들어졌다는 지적이다. 특히 결혼을 앞둔 미혼남녀 기자들에게는 이러한 이미지가 연애에 걸림돌이 되는 경우가 적지 않다. 예전엔 기자하면 박봉, 위험한 직업이라는 이미지가 배우자감으로서 마이너스 요소로 작용했다면, 최근엔 영화나 TV, 온라인 등에서 사회를 파멸로 이끄는 암적인 존재 등으로 비춰지며 더욱 불편한 대상이 됐다. 한 일간지 부장은 “그래도 예전엔 사회를 이끄는 엘리트, 정의로운 이미지가 있었는데, 온라인이 등장하면서 기자를 풍자하고 희화화하는 존재로 전락한 것 같아 씁쓸하다”고 했다.


‘내부자들’, ‘특종’ 등에서 기자는 그 누구보다 비겁하고 위험한 존재다. 특히 내부자들에서의 기자는 정재계 권력과의 유착관계, 그리고 성접대 등을 노골적으로 즐긴다. 더 큰 권력을 쥐기 위해 힘없는 이를 협박하고 급기야 살인청부도 서슴지 않는 잔인한 인물이다. 기자와 3년째 만남을 이어온 D씨는 “내 남자친구는 절대 그럴 리 없다는 걸 알면서도 기분이 하루 종일 찜찜했다”며 “주변 친구들도 농담반 진담반으로 걱정스런 말을 건넸다”고 전했다. 올해 5년차가 된 경제방송사의 한 여기자는 “남자 기자들이 정말로 저렇게 노는지 주변에서 많이들 물어봤다”며 “여기자들이 살아남기 힘든 분야라는 인식도 더욱 팽배해진 것 같다”고 했다.

저녁 데이트는 먼 나라 이야기
기자를 배우자감으로 선호하지 않는 건 매스컴 때문만은 아니다. 기자는 그간 많은 이들에게 ‘부담스러운 직업’으로 꼽혀왔다. 자신이 맡고 있는 출입처에 사건이 발생하면 언제 어디서든 뛰어 가야하고 밤낮 없는 노동 환경에 노출된 기자들은 배우자감으로 환영받지 못한다. 한 일간지 9년차 기자는 “모처럼 쉬는 주말에 여자친구와 교외로 나가 산에 올라갔는데 캡의 전화를 받고 앞뒤 사정 설명도 못하고 곧장 일터로 돌아왔다”며 “당시 여자친구가 크게 화를 내며 이별을 통보했다”고 했다. 또 다른 주간지의 6년차 기자도 “옆 사람이 불안정할 정도로 일에 치이면 어떻게 마음 편히 만날 수 있겠나”라며 “기자정신이 투철하거나 일 자체가 재미있는 사람만이 할 수 있는 직업인 것 같다”고 했다.


입사 5년 이하의 주니어 기자들은 주로 사회부나 정치부 등 바쁜 부서에 배치되기 때문에 더욱 짝을 찾기란 ‘하늘의 별따기’다. 한 일간지 5년차 기자는 “저녁에 만남 일정을 잡아도 갑작스러운 취재에 번번이 취소나 연기를 하는 경우가 많다”며 “동기들 대부분이 솔로라는 건 이런 슬픈 현실이 반영된 게 아니겠느냐”고 지적했다. 한 방송사 정치부 4년차 기자도 “소개팅에 어렵사리 나가서 둘 다 호감을 느낀다고 해도 이후 관리가 문제”라며 “리포트를 부랴부랴 끝내고 20분 정도 늦게 약속장소에 도착했는데 여자가 화가 나 가버리는 경우도 있었다. 누군가를 지속적으로 만나려면 아예 한가한 다른 부서로 옮기고 나서 생각해야 하는 것 같다”고 하소연했다.

잦은 술자리에 디지털 대응은 덤
최근 디지털 퍼스트 기조에 온라인 기사를 실시간으로 올려야 하고, 카카오톡 등으로 24시간 업무지시가 일반화되면서 기자들의 사정은 더욱 딱해졌다. 한 일간지의 여기자는 “주말이나 퇴근 후에도 단톡방에서 이뤄지는 실시간 업무 지시가 노이로제를 불러일으킬 정도”라며 “데이트를 즐기던 도중 카톡으로 온 업무 지시 때문에 시무룩해진 남자친구를 보면 안타깝다”고 하소연했다. 한 방송사의 4년차 기자도 “디지털에 맞는 새로운 형태의 기사를 기획하라는 윗선의 지시로 밤낮없이 기획에 매달리게 되면서 여자친구와 자주 싸운다.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상황이라 답답하다”고 호소했다.


술자리가 잦고 사람들을 많이 만나는 직업이란 점도 부정적인 요소로 꼽힌다. 사회적 노출이 많다보니 그만큼 가정에 충실할 수 없다는 판단에서다. 기자들에게 점심과 저녁식사 자리는 단순히 밥을 먹는 자리가 아니라 비즈니스이다. 취재원과의 자리인 만큼 밥을 먹으면서도 정보를 얻고 보고한다. 한 대기업 홍보팀 3년차 E씨는 “식사자리에서 기자들을 대하는 경우가 많은데 신기하고 재미는 있지만 배우자감으로는 부담스러운 게 사실”이라며 “하루에 1번 술자리는 기본이고 업무 시간도 불규칙적인데 아내와 아이에게 어떻게 충실할 수 있겠나. 또 일하는 강도에 비해 연봉 등 처우가 낮은 것도 부정적인 요소로 꼽힌다”고 지적했다. 한 경제방송사의 수습기자는 “매 자리마다 소맥은 기본이요, 화장실에서 몰래 보고하는 등 긴장의 연속이다 보니 만성 위장병에 시달리고 있다”며 “계속 이 일을 하게 된다면 미래 나의 배우자가 희생해야 되는 부분이 많을 것 같다”고 했다.

기레기 이미지 벗어야
“한국은 왜 이런 영화를 못 만들까? 이런 언론인들이 없으니깐”. 최근 개봉한 영화 ‘스포트라이트’를 본 한 네티즌의 댓글이다. 이 글은 네이버에서 가장 많이 공감한 ‘베스트댓글’로 꼽혔다. 영화는 미국의 3대 일간지 중 하나인 보스턴 글로브 내 스포트라이트팀의 이야기로 전개된다. 이들은 가톨릭 보스턴 교구 사제들의 아동 성추행 사건을 파헤치며 성스러운 이름 속에 감춰진 사제들을 폭로한다. 영화 속 기자는 소외된 약자를 보호하고 권력에 대해서는 감시하고 비판하는 지식인이다. 내부자들에서 그려진 우리 기자와는 상반된 저널리스트의 모습이다.


▲일러스트=김성규 기자

실제로 미국에서 기자란 직업은 안정된 전문직 중 하나로 꼽힌다. 억대 연봉과 질 높은 근무 환경 등 대우도 상당해 배우자감으로도 인기가 좋다. 미국의 한 지방방송사에서 인턴으로 일하다 국내 일간지 기자로 활동하고 있는 F기자는 “높은 강도의 업무량은 우리나라와 다를 게 없지만, 충분한 인력과 효율적인 조직 구조로 자신이 하고 싶은 취재를 장기적으로 할 수 있어 질 높은 콘텐츠를 생산할 수 있다는 점이 큰 차이”라며 “언론사들은 기자의 근무환경과 더불어 결혼이나 육아 등과 같은 개인적인 처우에 대해서도 개선에 힘써야 한다”고 밝혔다.


기자는 여전히 선망의 직업 중 하나다. 명문대를 나와 다양한 경험을 갖춘 인재들이 수백, 수천명에 이르는 경쟁률의 바늘구멍을 뚫고 들어올 정도로 인기가 높다. 하지만 포털과 SNS에서는 기자에 대해 평할 때 대부분 비판 일색이다. 어뷰징 등을 남발하는 기사나 광고홍보성 글을 올리는 기자들을 보고 사람들은 ‘기레기’라고 이른다. 한 일간지 부장은 “스포트라이트가 주목을 받은 이유는 거기에 나온 기자들이 기자다웠기 때문이다. 우리도 기레기라는 부정적인 이미지를 벗기 위해서는 회사 차원의 지원뿐만 아니라 기자 개인의 반성과 각성도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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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틈새 시간 활용 ‘라이프’ 즐기며 살아요”
학업·동호회 활동하며 새로운 한주 준비


기자들은 ‘틈새 시간’을 활용해 일과 사랑을 병행하는데 익숙하다. 한 경제방송사의 6년차 A기자는 3년 전 미팅으로 만난 인연을 배우자로 맞이했다. 5개월째 신혼생활을 즐기고 있는 그는 “결혼 전에는 업무에 치여 결혼 후에 어떻게 가정을 꾸릴지 막막했는데 막상 하고 나니 마음먹기에 달린 것 같다”며 “남편과 부족한 시간을 쪼개서 보내니 더 애틋한 면도 있다”고 했다. 요리에 젬병이었던 그는 퇴근 후 남편과 함께 요리교실을 다닌다. A기자는 “남편과 함께 재미있는 놀이를 함께한다는 생각에 신이 난다”고 전했다.


한 일간지 섹션 부서의 13년차 B기자도 ‘틈틈이 사랑법’을 고수해온 결혼 9년차 로맨티시스트이다. 그는 매주 아내와 특별한 주말을 보내기 위해 무엇을 할지 미리 준비한다. 대학교 캠퍼스 커플로 만나 사랑을 키워오다 11년 만에 결혼에 골인했다는 그는 참고 뒷바라지 해준 아내에게 고맙다고 한다. 그는 “평소에 와이프에게 신경을 못써주는 만큼 주말에는 집안 살림을 도맡아하는 것은 물론, 안 가본 곳을 놀러가거나 아내가 좋아하는 음식을 만들어서 대접한다”고 말했다.


B기자는 연애시절 ‘10분 데이트’를 즐겼다. 퇴근길 지금의 아내 집 앞에 들러 함께 산책을 한 게 전부였다. 술자리가 잦은 기자에게 하루 혹은 반나절 데이트는 꿈도 못 꿀 일이다. 그는 “영화보다가 사수의 지시에 뛰쳐나온 경험, 한강 데이트 중 아내를 홀로 두고 온 경험 등이 추억으로 남았다”고 했다.


틈틈이 시간을 활용해 학업이나 동호회 등으로 자신의 삶을 풍성하게 가꾸는 기자들도 있다. 한 일간지의 6년차 기자는 “현재 대학원을 다니며 견문과 인맥을 동시에 넓히고, 주말엔 지방에 내려가 대학에서 강의도 하고 있어 보람차다”며 “이러한 배움이 취재에도 도움이 되고 제2의 삶도 도모할 수 있어 안정되고 행복하다. 내년에는 책도 조금씩 써보고 싶은 마음이 있다”고 전했다.


또 다른 방송사 7년차 기자는 자전거 동호회에 흠뻑 빠져 있다. 틈새 시간을 활용한 덕이다. 그는 “리포트 제작이 끝나고 한 시간 정도 시간이 남으면 한강에 들러 동호회 친구들과 자전거를 타거나, 토요일 점심 때 모여 교외로 나가 맑은 공기를 한껏 마시고 온다”며 “자전거 하나로 일주일 동안 쌓인 스트레스가 풀리고 새로운 한 주를 맞이하는 에너지를 얻게 된다”고 했다.


그는 “시간이 없다고 생각하면 진짜로 없다. 내 삶은 내가 어떻게 가꾸느냐에 따라 달라지는 것 같다”며 “아무리 바빠도 삶의 우선순위를 정해서 잘 저글링하면 소중한 사람들과의 인연도 지킬 수 있다”고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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