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4시간 울려대는 '카톡 카톡~'…웃고 우는 기자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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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톡 황당 이야기>
부서원 단톡방에 올라온 데스크의 “사랑해 여보”
부장의 속보 지시에  뜬금없이 ‘ㅋㅋㅋㅋㅋ’

<카톡의 두 얼굴>
주말·퇴근 후에도 시도 때도 없이 울려대
옆자리 앉아서도 카톡…선후배 대화 단절되기도


# “사랑해 여보.” 늦은 시각 한 일간지의 온라인 부서 단톡(단체카카오톡)방에 뜬금없는 메시지가 올라왔다. 갑작스런 데스크의 고백에 당황한 선후배들은 답을 뭐라고 해야 할지 망설였다. 한 용감한 후배가 이모티콘으로 화답하자 기다렸다는 듯 다들 무슨 일이냐고 물어보기 시작했다. 해외로 출장을 떠나기 전 공항에서 와이프에게 사랑한다는 말을 남기려고 했던 게 잘못 온 거였다. 같은 부서원 A기자는 “당시 데스크는 조용하고 무뚝뚝한 이미지였는데 순식간에 ‘로맨틱 카톡남’으로 불리게 됐다”며 “특히 여기자들 사이에서 인기가 좋았다”고 했다.



# 부장의 실시간 업무지시에 평소 힘들어하던 B기자도 지난해 단톡방에서 일어난 자신의 실수를 잊지 못한다. 여느 때와 같이 쉼 없는 카톡 업무지시에 정신없이 일을 하던 무렵, 실수로 단톡방에 “ㅋㅋㅋㅋㅋㅋ”라는 멘트를 남긴 것. 여러 개의 카톡창을 열어놓고 일을 하다보니 대화창이 엇갈려 버렸다고 한다. B기자는 “어린 후배의 의도치 않은 반항에 “웃어줘서 고맙다”라고 답문을 남겨준 부장에 감사할 따름”이라며 “PC카톡이 생긴 이후엔 종종 이런 황당한 실수를 하곤 한다”고 했다.


# 사회부 경찰서 기자실에서도 엉뚱한 일이 벌어졌다. 바이스에 보고를 하려고 카톡 버튼을 누른 2진 기자가 날벼락을 맞은 경우다. 실수로 누른 버튼이 페이스톡(카톡영상통화)으로 연결된 것. 마침 용변을 보고 있던 바이스는 영문도 모르고 수신버튼을 눌렀고 민망한 상황에 맞닥뜨리게 됐다. 후배는 영상통화로 연결된 것을 알고 후다닥 껐지만 이미 볼 건 다 본 상태. 이 일은 한동안 선후배들의 안주거리로 남았다는 후문이다.


기자들은 유독 카톡에 얽힌 황당한 사연이 많다. 전화나 카톡에 자주 노출되는 직업이라서 더 그렇다. 일곱 살 아이를 둔 한 일간지 12년차 여기자는 아이가 휴대폰을 가지고 놀다가 부서 단톡방에 장난스런 메시지를 올려 당황했던 순간을 떠올린다. 동기들만 모인 단톡방에서 선배 흉을 보다 실수로 부장한테 보내 민망한 일을 겪은 기자도 있다. 한 방송사 5년차 기자는 “카톡창을 띄워놓으면 채팅을 하는 게 티가 나서 일부러 엑셀을 가장한 카톡창을 띄워놓고 대화를 한다”며 “한창 재미있는 대화가 오갈 때 나도 모르게 웃게 되는데, 데스크와 눈이 마주쳐 민망한 상황이 연출되기도 한다”고 전했다.


카톡은 기자들에게 떼려야 뗄 수 없는 존재이다. 취재원에게 카톡으로 빠르게 정보를 얻고 선후배들과는 상황을 수시로 주고받는다. 취재 풍경이 완전히 바뀐 셈이다. 예전엔 출입처에서 자료나 사진 등을 보내줄 때 주로 메일을 이용했지만, PC카톡이 생긴 이후엔 기사를 쓰는 도중에 실시간으로 전달받게 됐다. 기자실에서 다른 매체 기자들에게 공개하기 싫은 나만의 정보들도 카톡으로 비밀리에 공유가 가능하다. 한 방송사 8년차 기자는 “주변 기수들 10여명이 들어와 있는 ‘무엇이든 물어보세요’ 방이 있는데 취재원 연락처를 물어보면 한 방에 다 나올 정도”라며 “전보다 취재 환경이 빠르고 좋아졌다”고 했다.



카톡이 독이 되는 경우도 있다. 24시간 실시간 카톡 지시로 녹초가 되기 일쑤다. 데스크가 언제 어디서든 업무를 주고, 그걸 읽은 기자들은 곧바로 일을 처리하는 시스템이 고착화된 것. 한 일간지 기자는 “주말이나 퇴근 후에도 단톡방에서 이뤄지는 실시간 업무 지시가 노이로제를 불러일으킬 정도”라고 호소했다. 특히 온라인 기자의 경우 빠른 속보 대응이 요구되는 만큼 ‘카톡 트라우마’에 더욱 시달리고 있는 상황이다. 한 온라인 편집기자는 “각 부서마다 올라오는 디퍼 기사를 실시간으로 반영해야 하고, 수시로 카톡방을 통해 검토를 받는 등 어느 순간 카톡의 노예가 된 자신의 모습을 실감하게 된다”며 “퇴근 후에도 울리는 카톡 소리에 놀라는 나를 보면서 친구들이 안쓰러워 한다”고 하소연했다. 한 일간지 6년차 기자는 “업무시간 외 추가로 일을 하는 게 당연하다는 인식 자체를 바꿔야 한다”며 “그게 안 되면 차라리 수당 등 그에 맞는 처우라도 해줘야 하는 것 아니냐”고 불만을 표했다.


카톡에 제때 응답하지 않으면 찍히는 경우도 다반사다. 한 일간지 6년차 기자는 “카톡 지시에 즉각적인 반응을 하지 않았다는 이유로 사수 선배한테 제대로 혼난 적이 있다”며 “화장실을 가거나 잠들기 전에도 반드시 카톡 소리를 크게 켜놓는 버릇이 생길 정도”라고 했다. ‘카톡 무응답’에 보복 인사 의혹을 불러일으킨 사례도 있다. 한 방송사 부장은 매일 리포트가 나가고 나서 후배들을 독려한다는 의미로 ‘고생했다’ ‘잘썼네’ 등의 메시지를 남겼다. 이에 답변을 하지 않은 후배들은 우연찮게도 이후 인사 시즌에 좌천됐다. 한동안 사내에서는 “카톡에 응답하지 않은 것 때문에 인사조치된 것 아니냐”는 소문이 나돌았다.


카톡이 선후배간의 대화 단절을 조장한다는 지적도 나온다. 한 일간지 23년차 기자는 “예전엔 편집국 내에서 선후배들 사이에 기사를 놓고 논쟁하다가 술을 마시고 푸는 과정이 있었는데 이제는 옆자리 후배와도 카톡으로 보고 받는다”며 “다들 내 얘기를 몰래 하고 있는 건 아닌지 조마조마하고 분위기가 삭막해진 측면이 있다”고 고백했다. 또 다른 고참 기자도 “기자의 특성상 사람을 직접 대면해야 더 깊은 기사가 나오듯이 카톡만 이용할 게 아니라, 의식적으로라도 사람과의 대면 기회를 넓히려는 노력이 필요하다고 생각한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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