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자뷰-연출된 신년 기자회견, 침묵하는 기자들

[언론 다시보기] 김서중 성공회대 신문방송학과 교수

▲김서중 성공회대 신문방송학과 교수

데자뷰(deja vu)라는 말이 있다. 우리말로 기시감이다. 처음 보는데 어디선가 본 듯한 느낌? 그래서 진부하다는 뜻도 있다. 이번 대통령 신년 기자회견을 본 소감은 딱 데자뷰 그 자체다. 박근혜 대통령의 첫 번째 신년 기자회견은 프롬프트를 사용해서 정해진 질문에 대한 준비된 답변을 하고 끝났다.


비판 받고 나서 진행됐던 두 번째 회견에서는 프롬프트가 사라졌지만 정해진 질문 그리고 준비된 답변으로 끝나는 행태는 전혀 달라지지 않았다. 그럼에도 마치 자유스럽게 질의응답이 이루어진 양 ‘시간도 없고 하니 마지막 질문을 받겠다’고 연출까지 했다는 사실이 놀라울 뿐이다.


그리고 대통령이 되고 딱 세 번째인 올해 기자회견에서도 본질은 달라지지 않았다. 자유롭게 진행할 것이라는 정연국 대변인의 사전 고지가 무색하게 기자회견 전날 질문순서와 질문 내용이 정해졌다는 문건이 돌아 다녔다. 기자회견은 이 순서에 따라 질문과 답변이 이루어지고 끝나버렸다. 노무현 대통령 시절 보았던 자유로운 토론식 질의응답은 구경할 수도 없었다.


그럼에도 청와대 대변인이 중간 중간 다음 질문을 받겠다고 연기를 했고, 여러 기자들은 손을 들어 맞장구를 쳤다. 그들은 자신들의 차례가 아니라는 사실을 잊어버릴 정도로 기억력이 떨어지거나(?), 아니면 국민과 소통하는 것처럼 자연스럽게 보이려는 청와대의 기자회견 연출에 동원된 엑스트라 구실을 스스로 즐겼다고 봐야 한다. 게다가 전날 질문 순서와 질문 요지가 정해져 있음이 이미 알려진 상황에서조차, 여러 질문을 기억하는 양 자신의 기억력을 자랑하는 대통령과 이에 호응하는 기자들의 연기력을 보면서 웃을 수도 없었다.


▲박근혜 대통령이 1월13일 오전 청와대 춘추관에서 대국민 담화 및 기자회견 중 취재진의 질문에 답하고 있다. (뉴시스)

89세까지 50년 간 백악관을 출입하며 ‘시민을 대리하여’ 진실을 알아내고자 날카로운 질문으로 대통령들을 곤혹스럽게 했던 헬렌 토머스가 있다. 그는 백악관 출입기자로서 대통령에게 질문하고 몰아세울 수 있는 특권을 강조하며 취재원에게 사랑받을 생각을 하지 말아야 한다고 했다. 우리 청와대 출입기자들은 이런 주장에 동의하는가? 동의하는데 실천하지 못하는가? 그게 아니라면 청와대 출입기자는 정말 대통령의 생각을 충실히 전달해야 하는 국가적 사명(?)이 있다고 착각하는지도 모르겠다.


대통령의 말을 왜곡 없이 전달하는 것도 올바른 저널리즘의 한 부분이다. 하지만 동시에 시민들이 정말 듣고 싶은 내용을 질문하고 대답을 이끌어내어 알리는 것이 진짜 저널리즘의 본질이다. 기자회견 대부분이 미리 알려진 질문에 대한 대통령의 준비된 답변만을 듣는 것이라면 왜 많은 언론들이 필요할까? 한 기자가 대표로 대통령을 만나 충실히 받아 적어 오면 됐을 것이다. 아니 그냥 질문지만 전달하고 청와대 답변을 받았어도 될 일이다.


사실 질문을 했던 기자는 대통령의 일차 답변에 의문도 있고 다양한 측면에서 더 확인하고 싶었을 것이다. 더구나 다른 기자들은 또 다른 차원에서 추가 질문하고 싶은 것이 참 많았을 것이다. 시민들이 궁금한 내용이 많을 수밖에 없는 시절인 만큼 그들을 대리해야 하는 기자들이 다양한 질문, 추가 질문을 해야만 했다. 그런데 청와대 출입기자들은 왜 지금과 같은 방식을 받아 들였는지 그들을 취재해보고 싶다.


하지만 정작 이번에 얘기하고 싶은 것은 청와대 출입기자들의 이야기가 아니다. 저널리즘의 기본을 지키지도 못한 청와대 기자회견에 언론사 사주들은 ‘그 정도밖에 취재 못해’라고 질책하지 않았는지 궁금하다. 백번 양보해서 언론사 사주들은 저널리스트가 아닐 가능성이 많으니 그렇다 쳐도 동료 선후배 기자들은 뭐했는지 모르겠다. 당신들로 인해 언론의 신뢰도가 떨어지고 있는데 정신 차리고 관행을 바꾸라고 한 마디씩 했는지 모르겠다. 안 했다면 2007년 취재지원선진화법 논란 당시 대못 논쟁을 벌였던 ‘기자들의 기개’는 도대체 뭐였냐고 묻고 싶다. 저널리즘의 본령을 잘 지키는 것은 청와대 출입기자들만이 아니라 전 언론인의 공동책임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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