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후배 다리놓고, 디지털 짊어지고…'끼인 세대' 허리가 휜다

[기자는 무엇으로 사는가] 제1부-기자들이 사는 법 ③끼인 세대 7~15년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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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배들 후배 관리 잘해라 지적
후배들 선배 눈치 본다고 핀잔
디지털로 무게추 이동하는 시기
아이디어 짜야하고 실행 떠안아

부쩍 크는 아이들 돈 필요한데
연차 쌓여 경력이직도 어려워
여기자 육아·업무병행 힘들고
‘기자’와 ‘직장인’ 사이 갈등만


허리가, 아프다. 어디서든 ‘끼인’ 존재들은 그렇다. 언론사에선 대략 7~15년차 기자들이 이에 해당한다. 정신없이 달려왔더니 이젠 좋은 기사를 쓰는 것만으론 충분치가 않아졌다. 더 많은 것들이 눈에 들어온다. 조직도 더 많은 것을 기대한다. 이들은 ‘시대’에 끼였다. 오프라인 매체에서 디지털 중심으로 넘어가는 업계의 전환기, 금방이라도 가라앉을 것만 같은 미디어산업 전반의 위기 속에서 ‘지면·방송 은하의 끝’ 다음에 올 우주는 무엇인지, 또 어떻게 대응해야 하는지, ‘디지털 혁신’의 해답제시를 강요받는 것이 현재 허리연차의 모습이다. 이들은 ‘선·후배’ 사이에 끼인 연차이기도 하다. 평기자 중 선임이고, 간부 중에선 막내뻘인 차장(대우) 급 연차. 조직은 이들이 양측을 잇는 ‘소통의 가교(假橋)’가 되길 바라지만 이 또한 쉬운 일은 아니다. ‘기자(記者)’와 ‘직장인’이라는 정체성 사이에서 여러 현실적인 조건들을 가늠해 ‘신중히’ 이직을 고민하는 것도 이쯤이다.


▲허리급 기자들은 디지털 혁신의 총대를 메고, 선후배 간 ‘다리’가 되길 요구받는다. 사진은 임종명 뉴시스 기자(왼쪽), 이재훈 한겨레신문 기자.


“디지털 드라이브 총대메기…허리 연차 몫”
지난 18일 한겨레신문사에서 만난 이재훈 기자(13년차)는 고민하고 있었다. 지난 2013년 8월 회사의 SNS업무를 담당하면서부터 현재 디지털콘텐츠팀원으로까지, 그는 한겨레신문사의 ‘디지털 혁신’ 움직임을 충실히 추진해왔다. ‘더친절한기자들’, ‘디스팩트’, ‘뉴스AS’ 등이 그와 팀원들의 작품이다. 이들 코너는 한겨레신문의 주요 브랜드로 자리잡은 것은 물론 호평과 함께 고정 팬까지 확보한 언론사 대표 뉴미디어 콘텐츠가 됐다. 그런 그의 입에서 “부담이 된다”는 말이 나왔다.


실적이나 업무증가에 대한 압박 때문이 아니다. 그는 현재 언론사들이 다양한 실험의 장을 열어둔 상황이고, 그의 연차가 이를 떠맡는 것은 당연한 일이라고 했다. 퇴근 후에도 수시로 SNS를 모니터링하다가 아내에게 “왜 퇴근이 없냐”는 핀잔을 듣는 일도 “어쩔 수 없는 노릇”이라며 멋쩍어했다.


다만 그는 지면에서 디지털로 무게추가 옮겨가는 현 상황에서 ‘키’를 잡고 앞장서 나아가야 한다는 사실에 무거운 책임감을 느낀다고 했다. 이 기자는 “새로운 시스템, 콘텐츠에 대한 이해가 부족하다보니 설득이 어렵고 ‘너희들이 필요하다고 하니 해봐라’ 하는 식이 될 수밖에 없다”며 “결국 우리가 모든 걸 안고 한겨레 브랜드를 대표해서 만들어야 되는 상황인데 상당히 부담스러운 일”이라고 토로했다.


그의 고민은 사실 현재 언론계 종사자 모두가 공유한 문제에 가깝다. 다만 아무도 답을 모르는 문제를 떠맡아 흐릿한 안개 속 미래를 앞장서 헤쳐 나아가는 것은 그의 연차에게 던져진 과업이라는 의미다. 종합일간지 11년차 한 기자는 “현재 국·부장급 역시 디지털 드라이브에 관심이 크지만 이들은 현재 (지면 중심) 시스템을 잘 관리하다가 퇴직할 수 있는 마지막 세대”라며 “우리 연차야말로 모바일 시대를 핵심적으로 살아야 하고, 결국 이건 변화된 시대에 대비해 새롭게 차세대 먹거리를 고민하고 책임져야 한다는 의미”라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그는 “하지만 사실 아무도 해본 적이 없지 않나. 항상 이와 관련한 새로운 기획안을 내야하는지, 개선안을 제시해야 하는지 골몰하고 있다”고 밝혔다.


언론계는 ‘디지털 혁신’이라는 측면에서 ‘승리의 경험’이 전무하다. 1990년대 말부터 시작된 디지털에 대한 관심은 2000년대를 거쳐 현재에 이르기까지 ‘온라인 강화’라는 일부 성과만 거뒀을 뿐 근본적인 체질 개선을 이루진 못했다. 선배들은 디지털에 친숙한 세대가 아니며, 후배들은 기존 시스템을 배워가는 중이다. 오프라인과 디지털 중심 체제 사이 양 다리를 아슬아슬하게 걸친 현 시기는 ‘옛 게임을 잘 하는 법’과 ‘새 게임의 룰 만들기’를 동시에 요구하고 있다. 단지 ‘좋은 기사를 쓰겠다’는 말은 아무 대비도 하지 않겠다는 말과 다름없이 돼버린 시대, 허리연차는 기대를 잔뜩 품은 시선을 받으며 머리를 쥐어뜯고 있는 모양새다.


방송사 13년차 한 기자는 이들의 발언에 더 적극적으로 힘을 실어줄 것을 당부했다. 그는 “뉴미디어 분야를 강조하고 있지만 현 방송뉴스 중심 시스템과 유기적으로 맞물리지 못하고 있다는 인상”이라며 “10~20년을 더 다녀야 되는 우리와 당장의 성과가 중요한 분들이 내리는 판단 중 어느 게 더 장기적인 관점에서 방향성을 갖고 이뤄질 수 있는지 묻고 싶다”고 지적했다.

“선·후배 사이 조율, 쉽지 않은 일”
지난 15일 서울 서대문구 경찰청에서 만난 임종명 뉴시스 기자는 지난해 초부터 사회부 ‘바이스’를 맡아왔다. 경찰청 기자실에서는 7년차 ‘영 맨’이라는 그는 서울시 내 7개 라인을 담당하는 후배들과 캡 사이에서 ‘중간자’ 역할을 담당하고 있다. 커다란 보조배터리를 휴대폰에 연결한 채 쉴 새 없이 오르내리는 보고와 지시사항을 전달하며 팀 전체를 ‘조율’하는 것이 그의 일이다.


“단지 기사를 열심히 쓰는 게 아니라 어떤 게 읽히는지 고민해 지시하고, 팀 전체가 잘 돌아가도록 하는 게 내가 할 역할이다. 특히 오프라인 모임의 중요성을 실감한다. 얼굴을 보면 업무에 대해서도, 그 외적으로도 더 많은 얘기가 나온다.”


허리 연차 기자들은 조직 내에서 조율의 역할을 부여받는다. 단일기사를 넘어 전체 뉴스 흐름 속에서 판단하길 기대 받고, 보도의 결과를 고려한 결정을 요구받기 시작한다. 인력운용과 업무배분 등 관리직무가 부과돼 기사작성 외 영역을 담당하는 것도 이쯤이다.


특히 언론사라는 조직이 필요로 하는 조율은 조금 더 미묘하다. 일에 대한 책임감, 동료에 대한 우정, 조직에 대한 소속감 등 인간적인 교감이 만들어내는 ‘생기’야 말로 언론사를 언론사답게 만드는 요인이어서다. 평기자 후배들과 간부 선배들 사이에 놓인 이들 연차는 그래서 양측의 소통을 조율하는 ‘다리’가 되길 함께 기대 받는다. 그러나 양측 두 그룹은 기자라는 직업을 대하는 인식부터 크게 다르다는 게 이들의 얘기다.


종합일간지 한 기자는 “선배들이야 천생 기자로 살아왔고, 그게 가능했다. 사회적인 존경과 특권을 누렸고 월급도 많았다. 하지만 후배들은 뭉뚱그려 ‘기레기’ 취급을 받고, 박봉에 시달린다. 연애·결혼, 가족 등 개인생활과 업무에서 균형을 잡으려 하고 ‘저녁이 있는 삶’을 꿈꾸는 게 잘못됐다는 생각도 들지 않는다”며 “술자리에서 이 문제로 선·후배 간 언쟁이 붙어 중간에서 난감해지는 경우도 있었다”고 말했다. 


경제 전문 방송사 한 기자는 “위에서 바라는 소통은 선배들이 가고자 하는 방향을 후배들이 불만 없이 따라올 수 있도록 하는 가이드라인에 가깝다”면서 “데스크가 기사를 지시하고 협찬을 받는 것도 단기에선 성과지만 후배들은 오랜 기간 기자생활을 하는 데 자존감에 상처를 입는 결과가 된다. 후배들도 이를 점점 당연히 여기면서 비판의식이 희석되는 느낌을 받는다”고 우려했다.

“나는 기자로 남을 수 있을까…?”
이들 연차의 기자들 역시 이직을 꿈꾼다. 30대와 40대 초반을 아우르는 이들 연차는 생애주기에서 결혼과 출산, 아이의 입학 등을 겪고 있다. 언론계에서 가장 선호하는 3~5년차 경력은 훌쩍 넘어버렸고 ‘메이저’에 대한 포부만으로 이직을 결심하기엔 부양가족에 대한 책임이 무겁게 다가온다.


경제지 12년차 한 기자는 “낮은 연차 때는 대기업 홍보팀 등으로 오라는 얘기를 두고 고민하기도 했는데 그 시길 지나니까 오퍼도 잘 들어오지 않는다”며 “아이가 둘인데 (이직에서) 가장 주안점을 두는 건 당연히 ‘페이’부분이 아니겠나. 나이가 적지 않다보니 새로 일을 시작하는 데 부담도 커져 다들 신중하게 나서는 분위기”라고 털어놨다.


더욱이 회사 내에선 사업·영업 분야도 신경 쓸 수밖에 없는 연차가 됐다. 자신의 장래에 대한 고민도 본격적으로 들 수밖에 없는 시기, 이들은 ‘기자’와 ‘직장인’의 정체성 사이에서 혼란을 겪곤 한다. 부끄럽지 않은 기자 선배로 남을지, 좋은 직장인 후배가 될지의 고민은 이들에게 지극히 현실적인 문제가 된다.


방송사 한 16년차 기자는 “윗선의 부당한 간섭이나 지시에 저항을 한다면 가장 앞장 서야 하는 게 이 연차다. 그런데 당장 몇 년 후면 내가 그 자리에 가게 될 수도 있다”며 “불이익에 대한 두려움이 다른 시기보다 더 크게 와 닿는 이유”라고 설명했다.


해당 연차를 맞은 여기자들은 특히 고난의 시기를 겪는다. 부쩍 아이들에게 손이 많이 가는 시점인데다 회사에서는 중추 역할을 맡으며 양쪽에서 “고군분투해야 하는 것”이 현실이어서다. 경제지 9년차 한 여기자는 “책임이 커지고, 일도 많아지다보니 정해진 시각에 퇴근하기가 쉽지 않다. 업무와 육아를 병행하기도 점점 어려워진다”며 “자기계발의 욕구가 크지만 그럴 기회와 시간도 제한적이다. 때때로 한계를 느낀다”고 고백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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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들 ‘엑소더스’ 가속화

35~44세 5년새 10% 가량 줄어
허리급 연쇄이탈에 언론사 고심


신문사 허리급 기자들의 ‘엑소더스’가 가속화되는 추세다. 메이저 신문사와 방송사로의 이직은 물론 업계 밖으로의 탈출도 감행하고 있는 모양새다. 특히 일부 언론사는 이미 허리 연차의 부족에 따른 문제를 실감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한국언론진흥재단의 2010~2014년 한국언론연감 등에 따르면 30대 중·후반부터 40대 초·중반까지의 신문기자 수가 최근 5년 새 지속적으로 감소해 온 것으로 나타났다. 이들은 기자 상당수 학력이 대졸 이상이라는 점과 남·여 졸업 및 취업시기 등을 고려할 때 현재 언론사에서 7~15년차 허리급 기자에 해당한다. 2010년 조사에서 35~39세(21.2%), 40~44세(19.9%)의 기자들은 전 연령대 중 41.1%에 해당했지만, 2014년에는 각각 15.8%, 15.3%로 줄어 31.1%로 떨어졌다. 100명의 기자가 있는 뉴스룸이라면 5년 새 10명 가량의 허리급 기자가 증발한 셈이다. 더욱이 가장 최근 조사에서 두 연령대의 감소세는 최근 5년 중 가장 컸다.



지난 5년간 각 연령대별 비율 변화 추이를 살펴보면 언론사 뉴스룸의 고령화와 허리급 기자들의 이탈을 함께 볼 수 있다. 단순히 연령증가에 따른 것이라기엔 허리급 기자가 너무 많이 줄었고, 45세 이상 기자는 너무 많이 늘었다. 신문사 간 이직이라면 통계에 잡혀야 한다. 즉 방송사로 이직하거나 아예 업종을 바꾼 신문사 허리급 기자들이 늘고 있다는 의미다.


종합일간지 한 관계자는 “최근 수 년 사이 허리급 기자만 10명이 넘게 퇴사해 현재 7~15년차 기자는 30여명, 약 17~18%정도”라며 “대부분 중앙지로 옮겼지만 방송사로 이직하거나 전직을 하는 경우도 심심치 않다”고 했다.


이들의 퇴사는 업계 비전에 대한 우울한 전망과 낮은 업무 만족도가 영향을 미친 것으로 보인다. 2013년 한국 언론인 의식조사 통계에 따르면 35~39세, 40~44세의 기자들은 언론 전반에 대한 만족도에 대한 5점 척도 조사에서 각각 전 연령대 중 가장 낮은 2.46, 2.48점을 기록했다. 언론의 역할과 기능수행·공정성에 대해서도 가장 회의적이었다.


이 같은 추세 속에서 국민일보, 서울신문, CBS 등 일부 언론사에선 이미 허리연차 부족에 따른 현실적인 고민을 겪고 있다. 이들은 취재업무 노하우가 숙련된 연차의 이탈이 업무 효율성 저하와 분위기 침체는 물론 선·후배간 소통 부족 문제로 직결될 수 있다고 지적했다.


CBS 한 기자는 “시니어 선배들은 많고, 필드기자들은 전체기자 수의 절반도 안되는 상황이다. 방송과 인터넷 모두를 챙겨야 하는 매체 특성상 일하는 기자의 부족을 더욱 실감하게 된다”며 “낮은 연차가 곧장 이의 제기를 하는 게 거의 불가능한 기자 조직에서 허리급 기자의 부족은 어린 기자들의 ‘번아웃’을 야기하고 조직의 생기가 사라지는 결과로 이어지는데 그게 현재 모습”이라고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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