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국 언론이 '파리 테러'를 보는 법

[글로벌 리포트 | 영국]김지현 골드스미스 런던대 문화연구 박사과정

▲김지현 골드스미스 런던대 문화연구 박사과정

지난 13일 전 세계를 발칵 뒤집는 테러가 프랑스 파리의 도심 한복판에서 일어났다. 괴한들이 파리 일대의 여섯 곳에서 불특정 다수를 대상으로 무차별 공격을 감행하고 인질극을 벌였다. 그 결과 최소 130명의 사망자가 발생했다. 90명이 숨진 파리 시내 공연장 바타클랑에서 영국인 한 명도 목숨을 잃었다. 이 괴한들의 정체는 이후 ‘이라크 시리아 이슬람 국가(Islam State of Iraq and Syria, 이하 ISIS)’의 추종자로 알려졌다.


이웃 국가에서 벌어진 이 비극적인 사건은 영국 언론의 ‘분노’를 자아냈다. 사건이 일어난 다음 날부터 영국 일간지들은 특집과 사설을 통해 숨진 프랑스 시민들을 애도하고 대테러를 위한 영국과 프랑스의 결속을 촉구했다. 파리 테러에 대한 영국 일간지 보도의 경향을 분석한 한 칼럼리스트는 이렇게 말했다. “2차 세계대전 이후 영국과 프랑스 사이가 이처럼 친밀해진 적이 없다.”


테러 다음 날에 23쪽의 특집 기사를 실은 ‘데일리 메일(The Daily Mail)’을 비롯해 대다수의 일간지들은 평균 10쪽 이상을 파리 테러 보도에 할애했고 이번 테러가 ‘계획된 시민 학살’이라는 점을 강조했다. 영국 정부가 이번 테러에 대해 어떤 형태로든 조치를 취해야 한다는 주장도 공통적으로 등장했다.


하지만 그 조치의 형태에 대한 입장은 각기 달랐다. 15일 ‘타임스(the Times)’가 시리아와 이라크 내부의 ISIS에 맞서기 위해 영국의 군용기와 특수부대를 동원하자고 주장한 반면 ‘텔레그래프(Telegraph)’는 유럽 내 국경이 없는 룩셈부르크 셍겐(Schengen) 지역의 보안을 강화하자고 했다.


진보 성향의 일간지들은 ISIS의 의도가 ‘전쟁’을 일으키는 것에 있다며 군사적 대응에 있어서만큼은 신중해지자는 주장을 펼쳤다. 15일 ‘가디언(the Guardian)’은 “ISIS에 맞서는 전쟁을 선포하는 것은 그들의 의도에 부합하는 것”이라고 주장했다. ‘인디펜던트(Independent)’ 역시 2003년의 이라크 공습으로부터 ISIS의 세력화가 이뤄진 점을 언급하며 ‘(과거의) 우리 잘못’을 되풀이하지 않기 위해서는 군사적 대응보다는 유럽 내 난민을 보호하기 위한 ‘정치적 의지’가 강화되어야 한다고 밝혔다.


하지만 이와 관련, ‘데일리 메일(The Daily Mail)’과 같은 보수지는 “이슬람국가의 니힐리즘에 빠진 도살자들이 난민으로 가장해 들어오고 있다”며 영국의 국경지대 보안과 난민 관리가 엄격해져야 한다고 정반대의 목소리를 냈다. 16일 ‘선(Sun)’은 사설을 통해 영국 내 무슬림 커뮤니티가 “ISIS에 맞서 일어나야 한다”며 무슬림인과 좌파들은 “더는 변명하지 말고 ISIS를 비난할 것”을 요구했다. 이어 23일에는 영국 내 무슬림인들의 1/5이 이슬람 무장단체에 가담하는 ‘지하디스트’들에게 동정심(sympathy)을 가지고 있다는 자체 설문조사 결과를 헤드라인에 내걸었다.


이처럼 ‘분노’에 찬 기사들이 끊임없이 재생산되는 가운데 영국 사회에서 반이슬람 정서는 급속도로 확산되고 있다. ‘인디펜던트(Independent)’의 23일 보도에 따르면 파리 테러 이후 일주일간 영국에서 무슬림에 대한 증오 범죄는 세 배나 늘어나 115건에 달했다. 가해자 대부분은 백인 남성이었고 피해자 대부분은 이슬람 전통복장 차림의 여성들이었다. 공교롭게도 같은 날 데이비드 캐머런 총리가 시리아 내 ISIS에 대한 공습 참여를 파리 정상회담에서 공표하면서 이런 사실은 크게 주목받지 못했다.


파리 테러의 참혹한 현장을 미디어를 통해 접한 이들 중 분노하지 않은 이는 없을 것이다. 그에 대한 시민의 분노는 정당하다. 하지만 분노만을 표현하는 언론은 정당하지 않다. 그 분노가 낳을 수 있는 또 다른 폭력의 위험성이 불편부당한 시각에서 함께 다뤄져야 한다. 영국 사회 내 평범한 무슬림 여성들에게 자행된 폭력이 테러 이후 등장한 사설 속의 정치적 선동이나 무슬림에 대한 자극적인 보도로부터 조금도 영향을 받지 않았다고 말할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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