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론도 개혁대상"…언론에 강도 높은 개혁 요구

<故김영삼 전 대통령과 언론>
언론사 세무조사 용두사미 끝나
권력핵심 비판보도 감정적 보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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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민정부를 표방한 김영삼 대통령은 대통령이 되기 전까지 언론 친화적 정치인이라는 평가가 많았다. 그러나 대통령이 된 뒤로는 언론을 대하는 태도가 크게 바뀌었다. 집권 초기 언론을 개혁 대상으로 삼으며 강도 높은 사정작업을 벌였고, 정치권력과 유착을 시도해 온 언론계의 행태를 공개적으로 비판하며 “언론도 개혁의 대상에서 예외가 아니다”고 말했다. 취임 후 언론사 사주 및 대표들과 가진 회동에서도 “언론을 강압하기 위한 통제도 없겠지만 권언유착을 겨냥한 더 이상의 특혜도 없을 것”이라고 선언했다.


김 전 대통령은 이와 함께 언론사주의 재산과 신문부수 공개 등을 구체적으로 요구했다. 1993년 4월5일 신문의 날 기념식에서는 “신문도 일요일은 쉬어야 하는 것 아니냐”며 신문 과당 경쟁의 문제점을 지적했고, 이후 오인환 공보처장관이 4월20일 재경 신문사 발행인들을 만나 △주 1회 휴간 △발행부수 공개 △언론인 재산 공개를 요청했다. 이에 대해 3일 뒤, 신문협회는 이사회를 열고 △월 2회 이상 휴간 △감면 등을 주요 내용으로 하는 ‘자율결의’를 발표했다.


▲1993년 6월3일 김영삼 대통령이 취임 100일을 맞아 춘추관에서 내·외신 기자 150여명이 참석한 가운데 문민정부 출범 후 첫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연합뉴스)

사이비 언론과 비리 사주 등에 대한 강도 높은 사정작업도 벌였다. 1993년 8월 김영삼 정부 출범 6개월 만에 경기도민일보, 경북매일, 경북일보, 경인매일 등 14개 지역 신문사 사주가 비리 혐의 등으로 구속됐다. 당시 비리 언론인 구속자는 100여명에 이르렀다.


김 전 대통령은 권력 핵심에 대한 언론 보도에도 민감하게 반응했다. 정재헌 중앙일보 기자가 율곡비리 사건과 관련해 오보를 냈다며 전격 구속한 사건, 동아일보의 영부인 보도에 대해 제대로 정정보도를 내지 않았다며 대통령 동행 취재단에서 동아일보 기자를 배제시킨 사건 등 감정적인 보복조치도 불사했다. 1996년 MBC의 당정개편 예상 보도와 관련해서는 직접 당시 이득렬 MBC 사장에게 전화를 걸어 호통을 쳤던 것으로 알려졌다.


1994년 2월에는 주요 언론사에 대한 세무조사를 실시한다고 밝혔다. 이에 따라 10여년 만에 중앙일간지와 방송사, 경제신문 등에 대한 세무조사가 실시됐다. 세무조사는 언론에 대한 특혜를 폐지하고 권언관계의 정상화라는 측면에서 환영할 만한 것이었지만 세무조사 시점이 한약업사의 김현철 로비 의혹 사건이 발생한 직후여서 언론에 대한 압박용이 아니냐는 의혹을 샀다. 한국기자협회는 세무조사 결과의 투명한 공개를 강조했지만 결국 결과는 공개되지 않은 채 용두사미 격으로 끝나버리고 말았다.


한국기자협회 50년사는 “김영삼 정부의 언론정책은 개혁적인 측면이 있었지만 ‘문민폭력’의 위험성이 있었다는 데 그 한계가 있다”며 “실제로 언론정책은 지속적, 제도적 개혁으로 진전되지 못했다. 방송 정책의 경우에도 상업방송과 민영체제 확대라는 큰 흐름은 이전 정부와 별반 다를 것이 없었다”고 평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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