끝없는 징계·낙점받은 사장…얼룩진 공영방송

징계-무효 판결-재징계…MBC, 징계의 악순환
EBS사장도 내정설…공영방송 장악 현실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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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법원 징계 무효 선고에도 재징계
KBS, 회사 비판글 올린 직원 해고


공영방송이 징계의 칼을 또 빼들었다. 지난 18일 KBS는 특별인사위원회를 열고 시청자본부 소속의 신모씨를 해고했다. 지난해 10월부터 올해 7월까지 사내 게시판 코비스에 욕설과 함께 회사를 비방하는 글을 올렸다는 이유에서다. MBC 또한 법원이 징계 무효 판결을 내린 직원에 또다시 같은 이유로 징계를 하며 구설수에 올랐다.


MBC는 지난 16일 인사위원회를 열고 김혜성·김지경 기자에게 정직 1개월, 이용주 기자에게 정직 3개월의 징계를 통보했다. 노조는 17일 ‘MBC 경영진은 초법적 존재인가’라는 제목의 성명을 통해 “이번 재징계 조치는 MBC 경영진 스스로 법을 우습게 여기고 법원의 권위를 무시하는 집단임을 자인한 것”이라며 “2년이 넘는 기간 동안 소송을 거쳐 ‘부당한 징계’라고 확정된 것을 끄집어내 칼부림을 벌였다”고 비판했다.


▲공영방송 KBS와 MBC가 직원들에게 보낸 해고와 재징계 통지서.(사진=KBS새노조·MBC본부·뉴시스)

이번 재징계 대상이 된 이들과 MBC의 대립은 3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김혜성·김지경 기자는 지난 2012년 11월 타 언론사와의 인터뷰에서 해사행위를 했다는 이유로 정직 3개월의 징계를 받았다. 당시 ‘시사매거진 2580’에서 일하던 이들은 MBC의 신뢰도 하락은 아이템 검열 등에서 비롯됐다고 주장하고 “내부의 적과 싸우느라 지치지만 멈추지 않는다”는 뜻을 밝힌 바 있다. 이용주 기자 역시 2013년 회사 보도국 게시판에 MBC 경영진을 비판한 글을 올렸다가 정직 6개월 조치됐다. 이들은 이후 징계무효 소송을 벌였고 결국 올해 5월 대법원은 ‘사측의 징계가 지나치게 가혹하고 징계재량권을 일탈 남용했다’며 징계무효를 선고했다.


하지만 사측은 법원의 무효 판결에도 이들에 대해 다시 징계를 내렸다. MBC는 기자협회보와의 통화에서 “대법원 판결에서도 명백한 징계사유가 있고 다만 양정이 과하다는 것이었기 때문에 그에 합당한 징계를 내린 것”이라고 설명했다.


MBC는 지난해 4월에도 미국산 쇠고기 파동을 보도한 ‘PD수첩’ 제작진을 상대로 재징계를 내린 바 있다. 법원이 노조원 4명에 대해 정직 3개월과 감봉 6개월 처분을 내린 것을 두고 무효를 선고한 지 3개월만의 조치다. 결국 노조는 다시 징계 무효 소송을 냈고 올해 7월 법원은 “재징계 역시 무효”라는 결정을 내렸다. 거듭되는 노조의 승소에도 재징계는 계속됐다. 지난 7월 대법원으로부터 해고무효 확정판결을 받고 2년6개월만에 회사로 돌아온 이상호 기자에 정직 6개월의 중징계를 내린 것. MBC의 한 기자는 “재판이 보통 1년 이상 소요가 되는 만큼 노조원들의 회사 복귀를 막기 위해 사측이 재징계를 택하고 있다”고 호소했다.


노사 간의 징계 공방은 MBC만의 일이 아니다. 최근 KBS도 해사행위를 했다는 이유로 직원을 해고해 논란이다. KBS는 “공영방송인이 동료이자 상사인 공사 임원에 대한 인간의 존엄성을 파괴하는 심각한 언어폭력을 행사한 것에 대한 책임을 물은 것”이라며 “공사는 2011년 경영진에게 욕설을 하고 코비스에 모욕적인 글을 게시한 직원에 대해서도 해임했다. 과거부터 인격을 훼손하는 언어적 폭력행위에 대해서는 일관되게 엄격한 처분을 해 왔으며 이번 해임도 사규와 과거 징계양정을 고려한 신중한 결정이었다”고 설명했다.


하지만 새노조는 이번 해고가 ‘자사 보도를 비판한 특정 직원에 대한 보복성 해고’라며 반발하고 있다. 신씨는 2008년 8월 이후 새 노조 건설은 물론 파업에 앞장섰던 인물로 알려졌다.


내부에서는 ‘나도 언제든 잘릴 수 있다’는 공포감을 조성해 다른 직원들에게 미리 재갈을 물리려는 것 아니냐는 비판이 나오고 있다. 새노조는 “임기를 4일 남긴 조대현 사장과 본부장이 일사천리로 징계를 자행한 것은 KBS 구성원의 입에 재갈을 물리고 영원히 정권의 나팔수, 청와대 낙하산 사장의 머슴으로 살라는 강요”라고 비판했다.

이진우 기자 jw85@journalist.or.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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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부 반대 고대영 사장 취임
이명희 교수 EBS 사장 거론


KBS가 공영방송사의 미래가 되고 있다. 좋은 의미가 아니다. 청와대가 개입했다는 의혹을 받고 있는 고대영 KBS사장은 첫 출근을 했고, 일련의 흐름은 EBS의 사장선임 과정에서 반복될 소지가 크다는 점에서다. 실제 EBS사장에 뉴라이트 계열 학자인 이명희 공주대 교수의 내정설이 나온다. 언론계에서는 KBS 이사진과 MBC 대주주인 방송문화진흥회 이사진에 친정부 성향의 인사가 포진하고, KBS에 이어 EBS사장마저 내정설이 나오면서 정권의 공영방송 장악이 현실화됐다는 지적이 나온다.


방통위가 지난 18일 EBS사장 공모를 마무리 지으면서 ‘청와대 낙점설’이 다시 한 번 언론계를 뜨겁게 달궜다. EBS 전·현직 부사장 등 총 12명이 지원한 EBS사장 공모에서 이명희 공주대 교수는 응모 초기부터 유력설이 제기되던 뉴라이트계 인사 중 유일하게 지원했다. 특히 방통위가 24일 면접대상자 4인을 결정한 데 이명희 교수가 포함된 것으로 알려지면서 ‘이명희 원 톱(one top)설’은 더욱 힘을 얻는 모양새다. 방통위 한 고위관계자는 지난 19일 기자협회보와 통화에서 “역사교과서 국정화와 관련됐거나 뉴라이트 계열로 볼 수 있는 지원자는 이명희 교수가 유일하다”며 “다른 후보들은 그가 내정됐다는 얘기에 아예 지원을 안 한 것 같은데 내정이 거의 확실해 보인다”고 귀띔했다.


▲청와대 개입 의혹을 받고 있는 고대영 KBS사장이 24일 취임식을 가진 가운데 EBS의 사장선임도 내정설에 휩싸이면서 정권의 공영방송 장악이 현실화되고 있다는 우려가 크다. 사진은 이날 KBS본관 앞에서 출근 반대 투쟁을 벌이고 있는 전국언론노동조합 KBS본부 조합원들의 모습.

이 같은 심증은 지난 16일 고대영 KBS사장 후보자의 인사청문회를 앞두고 터진 강동순 전 KBS 감사의 폭로로 의구심을 더했다. 친 여권 인사이자 유력 사장후보였던 강 전 감사 주장의 핵심은 김성우 청와대 홍보수석이 이인호 KBS이사장에게 개별적으로 연락해 고대영 후보의 낙점을 지시했다는 것 등이다. 하지만 대세에는 지장이 없었다. 고대영 KBS사장은 인사청문회에서 청와대 개입설을 부인했고, 24일 첫 출근은 물론 취임식까지 마쳤다.


문제는 고 후보자의 KBS사장 임명 과정이 앞으로 공영방송 사장 선임에서 반복되는 역사일 수 있다는 점이다. 강 전 감사의 폭로를 따라가 보면 사장선임 과정에 정권의 입김이 작용할 수 있었던 것은 KBS이사회를 장악했기 때문이다. “각서 비슷하게 개별적으로 김성우 홍보수석한테 다짐을 하다시피 하고” KBS이사회에 입성한 여권 이사 7명은 2차 투표에서 전원 고대영 후보에게 몰표를 던졌다. 야권 이사들의 사장추천위원회 구성, 특별다수제 도입 등 주장은 거부됐다.


‘보이지 않는 손’이 분주한 가운데 방통위는 사장 선임에 막대한 영향력을 가진 공영방송 이사회를 실제 꾸리는 절차를 도맡았다. 이 과정에서 수적 우위에 밀린 방통위 야권 상임위원들의 의견 역시 무시됐다. 지난 8월13일 방통위의 KBS이사회(여 7, 야 4)와 MBC 대주주 방문진 이사(여 6, 야 3) 결정 절차는 이 같은 과정 속에서 진행됐다. 당시 야권 김재홍·고삼석 상임위원은 기자회견에서 “그동안 3차례에 걸쳐 인선 회의를 무산시키면서 최성준 위원장을 비롯한 여권 위원들에게 사전협의와 조율을 요구했으나 끝내 받아들어지지 않았다”고 토로했다. “문재인은 공산주의자”의 고영주 방문진 이사장, “더러운 좌파는 동성애자 무리”의 조우석 KBS이사 등은 이 때 임명된 인사들이다.


EBS의 경우 이런 전력을 가진 방통위가 사장 선임의 전권을 갖는다. 최성준 방통위원장은 지난 11일 기자간담회에서 “공모에 지원한 후보자들의 알려진 발언들, 보도된 부분들을 감안해 인사를 할 것”이라며 “EBS가 자기 기능을 충실히 할 수 있는 분을 사장으로 선임하고자 한다”고 밝혔다.


EBS구성원과 언론시민단체는 ‘내정설’을 두고 강력한 반발과 함께 우려의 목소리를 내고 있다. 전국언론노동조합 EBS지부는 지난 18일 “이 교수 임명을 강행할 경우 최성준 위원장을 헌법과 방송법 위반으로 고발하고 (18년 만의) 총파업도 불사하겠다”고 밝혔다. 언론개혁시민연대도 지난 19일 논평에서 “이명희 교수는 박근혜 정권의 ‘역사교과서, 공영방송 국정화 시도’의 마지막 퍼즐”이라고 주장했다.     

최승영 기자 sychoi@journalist.or.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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