길을 찾던 고참기자들, 디지털 세계에 눈 뜨다

온라인 공간서 종횡무진 활약
칼럼연재·팟캐스트 진행 기본
SNS 소통·영상뉴스 척척 생산
업무 부담 있지만 즐겁게 일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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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참 기자들이 온라인 세상에서 활약하고 있다. ‘디지털 퍼스트’ ‘모바일 퍼스트’를 내세우는 시대 흐름에 맞춰 축적된 취재경험을 바탕으로 온라인 전용 콘텐츠를 연재하거나, 팟캐스트에서 날카로운 통찰력으로 방송을 진행하는 고참 기자들이 늘어나고 있는 것이다. 일부 고참 기자는 트위터, 페이스북 등을 통해 소셜미디어 소통에 앞장서거나, 영상 편집 프로그램, 포토샵 등을 배워 카드뉴스·영상뉴스를 직접 제작하고 있다.


고참 기자들이 온라인에서 활약하는 데에는 언론사의 콘텐츠 차별화 전략이나 디지털 뉴스 강화 방안이 큰 영향을 미친다. 서울신문이 한 예이다. 서울신문은 지난 8월 고참 기자들에게 자기 이름을 건 깊이 있는 기사를 온라인에 연재하라고 특별 주문했다. 매주 한 편씩 기명칼럼을 온라인에 선보이라는 것이다.


서울신문은 이후 ‘빠르고 자극적인 것에 길들여진 일상에서 연륜 있는 서울신문 중견기자들이 전하는 진중하고 정감 넘치는 고품격 스토리텔링 뉴스’라며 홈페이지 중간에 ‘웰메이드N’이라는 코너를 배치했다. 서울신문 온라인뉴스부 담당자는 “선임기자와 전문기자가 ‘웰메이드N’에 참여하고 있다”며 “현재 7명의 고참 기자가 특색 있는 칼럼을 연재 중”이라고 말했다.


▲축적된 취재경험을 바탕으로 온라인 전용 콘텐츠를 연재하거나 팟캐스트에서 방송을 진행하는 고참 기자들이 늘어나고 있다. (맨 위부터) 서울신문이 만든 뉴스 브랜드 ‘웰메이드N’, 이대근 경향신문 논설위원의 ‘이대근의 단언컨대’, 장윤선 오마이뉴스 선임기자의 ‘팟짱’, 김의겸 한겨레 선임기자의 ‘우충좌돌’, 권혁재 중앙일보 사진전문기자의 ‘뒷담화’.

한겨레도 지난해 10월 디지털 퍼스트를 위한 조직 개편을 거치며 4명의 ‘디지털 라이터’를 선보였다. 이 중 성한용·김의겸 선임기자는 ‘성한용의 정치 막전막후’ ‘김의겸의 우충좌돌’로 이름 붙인 기획 연재물을 꾸준히 연재 중이다. 한겨레 안에서 ‘스콘’이라 불리는 스페셜콘텐츠팀도 대부분 고참 기자들로 이뤄져 있다. 조홍섭 환경전문기자와 오철우 선임기자, 곽노필 선임기자 등이 환경, 과학, IT 등 자신의 전문 분야를 살린 기사를 온라인에 연재한다.


회사 차원의 압박이 아니더라도 온라인 전용 콘텐츠를 제작하는 고참 기자는 점점 늘어나고 있다. 중앙일보와 한국일보, CBS 등에서 많은 고참 기자들이 자진해 자신의 전문 분야나 관심사를 온라인에 연재하고 있다. 이들의 콘텐츠는 깊은 전문지식과 다양한 취재경험을 살렸다는 점에서 누리꾼들의 뜨거운 호응을 얻고 있다.


정혁준 한겨레 전략기획실 비서팀장은 “고참 기자의 기사는 오랜 취재 경험으로 깊이가 있고 또 한편으로 맛깔스럽게 읽을 수 있다”며 “온라인에 올렸을 때 다른 기사보다 훨씬 더 많은 관심을 받는다. PV(페이지뷰)가 높은 것은 물론이고 SNS 상에서도 많은 호응을 얻는다”고 말했다.


팟캐스트와 같은 인터넷 방송 플랫폼도 고참 기자에게는 새로운 활로다. 이대근 경향신문 논설위원은 팟캐스트 프로그램 ‘이대근의 단언컨대’에서 날카로운 통찰로 한국 정치를 해부하고 있고, 이기환 경향신문 논설위원은 ‘이기환의 흔적의 역사’에서 역사적 지식을 친절하고 쉽게 설명하고 있다. 변상욱 CBS 대기자의 ‘스타까토’도, 정규재 한국경제신문 주필의 ‘정규재TV’도 ‘진짜 뉴스’를 전하기 위해 꾸준히 방송되고 있다.


장윤선 오마이뉴스 정치선임기자의 ‘장윤선의 팟짱’은 팟캐스트 포털 서비스 ‘팟빵’에서 10위권을 오르내리며 높은 순위를 자랑한다. 장윤선 선임기자는 “고참 기자가 발 빠르게, 적극적으로 현장 대응을 해야 할 필요성을 느껴 팟캐스트 방송을 하게 됐다”며 “지난해 9월 첫 방송을 시작한 이후 다운로드가 1억 건을 돌파할 정도의 놀랄 만한 성과를 거뒀다”고 전했다.


트위터, 페이스북 등을 통해 소셜미디어 소통에 앞장서는 고참 기자도 있다. 경남도민일보에서 SNS를 활용한 독자와의 소통을 진두지휘하고 있는 김주완 출판미디어국장이 그 예다. 김주완 국장은 지난 6일 ‘2015 지역신문 컨퍼런스’에서 부서별 페이스북 페이지를 선보이며 “SNS에서 이용자의 도달율이 10만에서 50만정도 된다. 전 사원이 페이스북을 의무적으로 사용하도록 하고 있다”고 강조했다. 그는 “페이스북 등 SNS를 통해 충성 독자와의 관계를 형성할 수 있고 이는 자체 뉴스펀딩으로도 연결된다”면서 새로운 수익 모델을 제시하기도 했다.


영상 편집 프로그램, 포토샵 등을 배워 카드뉴스·영상뉴스를 직접 제작하는 것도 비단 젊은 기자만의 일이 아니다. 최진원 경향신문 기자는 지난 4월부터 프리미어 프로, 애프터 이펙트 등 동영상 편집 프로그램을 배워 직접 영상뉴스·카드뉴스를 제작하고 있다.


온라인 분야에서 다양한 활동을 펼치고 있는 고참 기자들은 독자와의 쌍방향 소통이 가능하다는 점, 지면에 차마 담지 못한 시시콜콜한 얘기를 편하게 쓸 수 있다는 점에서 온라인 활동을 긍정적으로 바라봤다. 성한용 한겨레 선임기자는 “신문에 쓰지 못하는 얘기를 편하게 쓸 수 있는 것이 온라인 콘텐츠의 장점이다. 독자들에게 편지를 쓰는 기분으로 친절하게 쓰려고 노력한다”며 “다만 업무가 늘어나는 것은 스트레스”라고 말했다.


김의겸 한겨레 선임기자도 “출입처가 없을 때는 뿌리가 없이 여러 방면으로 기사를 쓰다 보니 쓸 거리를 찾는 게 일이었고, 막상 국회에 출입하면서 온라인 콘텐츠를 생산하려니 현안을 쫓을 수밖에 없었다”면서 “선임기자에게 요구하는 넓은 시야와 고상한 덕목을 채우기에 많은 애로사항이 있다. 하지만 결국 온라인밖에는 길이 없는 것 같다”고 말했다.


일부 언론사들의 고참 기자 활용 의지와 달리 대부분의 언론사에는 제대로 된 고참 기자 활용 방안이 전무한 상태다. 이완수 동서대 미디어커뮤니케이션학과 교수는 지난 5월 ‘정년연장 시대 언론인의 전문성 강화 및 활용방안 세미나’에서 “온라인 콘텐츠 이용자들이 급격히 늘어나고 있으나 정작 언론들은 온라인에 적합한 뉴스 콘텐츠를 제공하고 있지 못하다. 시니어 기자들에게 온라인에 게재할 수 있는 다양한 주제의 콘텐츠를 개발, 생산, 유통하는 역할을 맡겨야 한다”고 주장했지만 아직 현장에 반영되지 않고 있는 추세다.


한 종합일간지 디지털뉴스부 팀장은 “전략과 전술을 갖고 고참 기자를 활용하는 언론사는 극소수일 것”이라면서 “대부분 디지털뉴스 관련 팀을 꾸릴 때 젊은 기자 위주로 가는 경우가 많다. 편집국 차원에서 고참 기자 활용 방안이 논의되는 경우 자체가 드물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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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온라인이 내 가슴을 흔들 줄 몰랐어요”


▲최진원 경향신문 기자

최진원 경향신문 기자

편집부 28년 일하다 모바일팀 자원

학원 다니며 영상편집 프로그램 공부
후배에 물어가며 영상·카드뉴스 제작


‘디지털 퍼스트’ 시대에 ‘디지털’스러운 뉴스를 만들어보고 싶었다. 편집부에서만 28년 동안 일했던 최진원 경향신문 기자가 지난 10월 자진해 모바일팀으로 간 이유다. 부서 이동은 했지만 막상 그가 모바일팀에서 맡은 업무는 기사를 중요도 순에 따라 배치하고 제목을 고치고, 사진을 트리밍하는 일이었다. 편집부 시절과 별반 다를 게 없었다. “계속 고민했어요. 사실 젊은 친구들이 좋아하는 영상뉴스를 만들어보고 싶다는 생각을 했거든요. 재미있을 것 같아 해보고 싶었는데 워낙 백지 상태이다 보니 주저했죠. 그러다 후배에게 물어봤는데 전혀 어렵지 않다더라고요. 그 때 용기를 얻었습니다.”


그렇게 지난 4월, 그는 도전을 선언했다. 하지만 마음은 급했다. 인터넷으로 영상 편집 프로그램 중 하나인 프리미어 프로를 가르쳐주는 3시간짜리 특강을 듣고 당일 15초, 30초짜리 영상 샘플을 만들 정도였다. 처음 만든 터라 품질은 형편없었고 서툴기 짝이 없었지만 그에게는 ‘할 수 있다’는 자신감이 무엇보다 필요했다. 그 후에는 일사천리였다. 학원에 등록해 프리미어 프로와 또 다른 영상 편집 프로그램인 애프터 이펙트를 수강했고 일러스트레이터와 포토샵도 추가적으로 배웠다. 모르는 부분이 있으면 후배에게 꼼꼼히 물어가며 정보를 습득했다.


그의 열정에 주위의 격려도 끊이지 않았다. 후배들은 그의 서툰 영상뉴스를 페이스북에 올리면 그에게 자신감을 심어줬다. 게시물에는 종종 ‘보라고 만들었냐’ ‘글이 너무 빠르다’ 등 기술적인 부분을 지적하는 댓글이 달렸지만 그는 상처받기보다 고민하고 공부하는 쪽을 택했다. 그의 의지 덕분에 영상 편집 기술은 나날이 늘어갔다.


그러나 어느 순간 그는 기술보다 더 중요한 것이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차별화’였다. “남들과 똑같은 걸 만들면 승산이 없잖아요. 솔직히 기술적인 측면에서 신문사가 만드는 영상뉴스는 ‘스브스뉴스’같은 방송사의 영상뉴스와는 경쟁할 수 없거든요. 그래서 신문사만의 강점을 찾기 시작했죠. 70년 역사를 가진 경향신문의 사진DB를 활용하는 등 차별화할 수 있는 방식으로 생각을 전환했어요.” 지식채널e를 제작했던 김진혁 PD의 조언도 그에게 많은 도움이 됐다. “제약이 많은 공중파 방송사보다 좀 더 과감해질 것을 주문하더라고요. 또 언론사의 정체성을 살려야 한다고 했죠. ‘이 신문에 이런 게 있다’면서 독자들이 직접 찾아와서 볼 만한, 그런 콘텐츠를 만들어야 한다고 했어요.”


최 기자는 그의 조언에 따라 경향신문의 칼럼에 주목했다. 다양한 관점을 나타내는 경향신문의 칼럼, 독자들이 그 칼럼을 재미있게 읽을 수 있도록 2분 남짓의 영상으로 만들기 시작했다. 경향신문이 1면에 장기간 연재하고 있는 ‘내 인생의 책’도 일주일 치를 묶어 카드뉴스로 만들었다. “일주일에 평균 2~3개 정도 영상·카드뉴스를 만드는 것 같아요. 지금까지 만든 것만 90개 정도 되는 것 같습니다.”


최 기자는 52년을 살다 보니 가슴 뛸 일이 점점 사라졌다고 말했다. 그런데 지금의 일은 자신의 가슴을 뛰게 한다고 했다. “새로운 일을 배워가는 것이 정말 두근거리는, 재미있는 일이라는 걸 요즘 깨닫습니다. 주제넘게 다른 기자들에게 제가 하고 있는 일을 추천할 수는 없어요. 다만 제 나이대의 기자들이 무엇이든지 도전하는 데 두려움을 느끼지 않았으면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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