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와 언론의 경계, 최소한은 지켜야 한다

[우리의 주장] 편집위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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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법정드라마 ‘굿 와이프’에는 유명한 방송 진행자가 주 검사장 선거에 후보로 출마하는 에피소드가 나온다. 정치라는 아레나를 거의 독차지한 기성 정치인들에 대한 도전 격이다. 다른 후보들은 찔끔 긴장한다.


실제로 미국에서는 언론인 출신이 정계로 진출하는 사례가 드물지 않다. 공화당 대선 예비후보였던 새라 페일린도 원래는 지역 방송기자 출신으로 정치에 첫 발을 디뎠다. 보수성향의 정치 칼럼니스트 패트릭 뷰캐넌은 언론인과 정치인의 경계를 넘나든 것으로 유명하다. 닉슨 행정부를 거쳐 1980년대 중반 레이건 집권 때 백악관 대변인을 지낸 뒤 90년대 공화당 대선후보에 도전하려고 CNN에서 하차했다가 2000년대에 다시 타 방송을 통해 복귀한 바 있다.


유럽 의회에도 지난해 선거에서 언론인 출신 의원들이 등장했다. 대중과 괴리됐다는 비판을 받는 유럽의회가 다시 대중과 연결될 수 있는 새 감각을 얻을 기회가 될까 주목을 받았다. 벨기에 경제지 편집국장 출신인 요한 반 오베르트벨트는 “언론인은 대중과 어떤 방식으로 의사소통을 해야 할지에 대해 잘 알고 있다”면서 언론인 출신 정치인들의 미래를 낙관했다.


언론과 정치는 “정보를 추출하고, 설명하고, 주도하고, 설득하고, 발표한다는 점에서 닮았다”고 한다. 하지만 동시에 언론인의 기본적인 속성은 ‘구경꾼’이자 ‘참견쟁이’다. 사회체제가 법과, 도덕, 공공윤리처럼 사회적으로 합의된 규칙에 어긋나지 않게 굴러가고 있는지를 살피고, 문제가 있으면 큰 소리로 알려 대중의 주의를 환기시키는 이들이다. 구경꾼의 역할은 제한적이다. 그렇기에 더 나은 사회를 위해 ‘참여자’가 되겠다며 현실 정치에 뛰어들 수도 있을 것이다.


문제는 ‘구경꾼’이 ‘참여자’가 되기 위한 욕망의 발판으로 자신의 커리어를 이용하고, ‘공정성’이라는 소속 언론사의 간판을 훼손할 때 발생한다. 예로 한 방송의 간판 뉴스를 진행하던 이가 불과 며칠 사이에 ‘대통령의 입’인 청와대 대변인으로 등장하는 것이 옳은 일인가. 공정방송의 얼굴로 그를 기억했던 시청자들은 불과 며칠 사이 그의 마이크 배경이 바뀐 사실을 혼란스러워했다. 가장 당혹스러웠던 것은 내부 구성원들이었을 것이다. 좋은 저널리즘은 ‘잘난 개인’ 혼자만의 역량으로 이뤄지는 게 아니다. 조직 구성원들이 함께 힘을 모아 만들어왔던 것 아닌가. 그런데 특정 언론인이 자신의 ‘영전’을 챙기려고 다른 구성원들이 그간 쌓아올린 브랜드 가치까지 깎아먹는 일이 벌어진다면, 과연 옳은 일인가.


어쩌면 언론과 정치의 경계가 점차 모호해지는 것은 현대 미디어 사회에서 불가피한 현상일지도 모른다. 닐 포스트먼은 현대 미디어에 대한 비판적 저서 ‘죽도록 즐기기’에서 텔레비전이 등장한 이후 정치와 사회같은 다른 진지한 영역마저 ‘쇼’가 되어가는 현상을 경계했다. 정치인들에게도 ‘쇼맨십’이 요구되고, 스펙터클한 사건이 중요한 사건보다 더 많은 카메라의 관심을 받는 시대다. 야망을 품은 미디어 종사자가 정치인으로 변신하기에는 이보다 더 좋은 환경은 없을 것이다. 그러나 그가 떠난 이후 대중들은 다른 언론인의 발언을 볼 때마다 “저 언론인은 누구와 ‘야합’한 것이냐”고 질문하지 않겠는가.


언론인은 업계를 떠나도 평판에 항상 ‘언론사 출신’이라는 꼬리표가 오래도록 따라다닌다. 그만큼 전문성과 공정성을 기대받는 직종이다. 사회 참여와 공익을 위해 언론을 떠날 수는 있지만, 그 과정에서 언론의 가치를 훼손해서는 안 된다. 떠나는 이들이 차려야 할 최소한의 예의다. 언론에 대한 사회의 남은 신뢰마저 저버려서는 안 된다. 2015년, 우리가 이미 너무 먼 길을 온 것은 아닐까 우려스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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