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론중재법 개정안, 언론사 1년 내내 기사 삭제 요청 시달릴 것

인터넷상 피해 구제 취지로
온라인 기사·댓글 삭제 추진
중재 대상 광범위·기준 모호
언론·표현의 자유 위축 우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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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론중재법 개정안이 논란이다. 언론중재위원회(이하 중재위)가 지난 13일 최초 공개한 개정 시안에 따르면 개정안은 온라인 기사, 카페와 블로그의 복제기사, 댓글의 삭제를 가능케 하는 내용을 골자로 한다. 또 피키캐스트와 페이스북 등 신생 뉴스미디어 또는 이 같은 역할을 하는 ‘유사뉴스서비스’도 중재대상에 포함시켰다.


이를 두고 언론계와 학계, 포털 등에서는 ‘표현의 자유’ 전반의 위축을 우려하는 목소리가 나온다. 개정안은 결국 인터넷상 거의 모든 형태의 표현행위를 중재대상 범위로 삼는 셈이어서다. 이미 욕설·모욕·사생활 침해 등에 대한 법규가 있는 상황에서 중재위 등의 행정비용만 늘어나고 실익은 없을 것이란 관측도 있다.

‘침해배제 청구권’ 개념 도입
중재위가 밝힌 개정안의 핵심은 ‘침해배제청구권’을 명문으로 규정했다는 것이다. 침해배제청구권은 ‘인터넷상’ 언론보도로 명예훼손 등 인격권 등의 침해를 받고 있는 자가 언론사 등을 상대로 ‘침해의 중지’ 등을 청구할 수 있는 권리를 의미한다. ‘잊혀지지 않는’ 웹의 특성을 고려해 온라인 기사와 댓글, 복제 게시물, 새로운 미디어 등장 등에 따른 언론보도 피해자 구제를 보완하겠다는 취지다. 이를 위한 구체적인 방법으로도 ‘기사(동영상) 삭제’, ‘웹사이트 검색 중단’, ‘다시보기나 미리보기 서비스 제공 중지’, ‘DB삭제’ 등이 제시됐다.


▲언론중재위원회는 지난 13일 오후 국회 의원회관에서 언론중재법 개정안 쟁점과 해설에 대한 정책토론회를 열었다. 개정안을 두고 언론계 안팎에서는 보도와 표현의 자유 위축 등에 대한 우려가 나온다.

이 법안이 입법부를 통과할 경우 영향을 받는 것은 인터넷신문(언론사), 인터넷뉴스서비스(포털), 이를 이용하며 댓글 등을 작성할 수 있는 시민 일반 등이다.


언론사의 경우 기존 정정·반론보도 외에 기사의 수정이나 보완, 삭제 등의 조치 의무를 갖게 된다. 정정·반론보도 청구는 보도를 안 날부터 3개월, 보도 후 6개월이 지나면 조정신청을 할 수 없지만 개정안에 따른 댓글, 기사 등 관련 조치는 게시물의 존재를 안 후 1년까지 조정신청이 가능하다. 또 각 언론사 사이트의 기사 댓글란에서 댓글 관련 조정신청이 제기될 때 관리 운영자로서 조정심리에 출석해야 한다.


포털의 경우 언론사 기사를 매개하며 제공되는 댓글 시스템에서 조정신청이 제기될 때 게시판 운영자 자격으로 조정심리에 출석해야 한다. 포털이 제공하는 블로그·카페 등에 게시된 복제기사로 분쟁이 생길 때는 중재위의 조정결정 등 직권조정안을 해당 사이트, 게시판에 게시하고, 해당 게시물에 대해 임시조치를 해야 한다.


댓글 작성자나 복제기사 게시자, 즉 일반 시민들도 영향을 받는다. 작성한 댓글에 삭제 등을 구하는 조정신청이 제기될 수 있고, 이 경우 해당 댓글에 대한 차단조치가 이뤄질 수 있다. 복제기사 게시자는 원 기사의 위법성이 확인되면 사이트관리자로부터 중재위의 수정·보완·삭제 등 조치가 담긴 직권조정안을 공지받게 된다. 해당 게시물은 임시조치가 될 수도 있다.

삭제권 남용…중재위 권한만 커져
개정안에 따른 기사 및 댓글 삭제 등의 조치가 결국 언론사의 보도활동과 댓글 게시자의 표현의 자유를 위축시키는 결과로 이어질 것이란 목소리가 나온다.


우선 언론사나 기자들은 기사 삭제요청이 늘어날 것이라 우려하고 있다. 현실적으로 피해자들은 반론·정정보다 삭제만으로 만족하는 경우가 많고, 이미 언론중재 과정에서 비공식적인 기사 삭제와 수정이 수용되고 있는 만큼, 기사 삭제청구권의 법제화는 삭제요청 증가의 수순이라는 것이다. 언론사 입장에선 청구강도가 높아지는 만큼 중재과정 자체도 지금보다 어려워질 소지가 크다. 더욱이 중재위가 내세운 권리침해의 ‘계속성’과 ‘중대성’ 등의 삭제청구 요건은 명확하고 일관성 있는 기준을 적용하기 쉽지 않아 삭제권이 남용될 우려도 있다.


댓글과 복제기사에 대한 문제는 더 심각하다. 현재 언론사의 인터넷 기사는 중재위가, 댓글과 온라인 게시판 일반에 대한 피해구제 업무는 방송통신심의위원회(이하 방심위)가 맡고 있다. 중재위는 개정안에서 기존 업무범위에 카페·블로그에 복제된 기사, ‘보도에 관한’ 댓글 등까지 중재대상을 확대했다. 방심위와의 업무분담도 이를 기준으로 하면 될 것이라 보고 있다.


하지만 실제 온라인 기사에 달린 댓글 다수는 해당 보도와는 무관한 경우도 많다. 이에 대한 문제제기 시 중재위의 업무소관인지 명확지 않아진다. 기사 댓글창에 의견이 개진됐다는 이유만으로 중재대상에 포함시킬 경우 결국 모든 의사표현 행위가 그 대상이 될 수 있다. 개인의 댓글을 언론행위로 보는 것이고, 보도라는 특수성을 고려한 중재 시스템을 넘어서는 월권이라는 지적이 나올 수도 있다. 이와 관련 중재위 내부에서도 댓글 관련 중재를 최소화해야 한다는 의견이 나오고 있지만 차후 내부방침으로 확정된다고 해도 ‘운영의 묘’는 구성원들 변화에 따라 언제든 달라질 수 있다.

신생 뉴스서비스 출현 저해 우려도
더욱이 언론중재법 개정안은 늘어나는 중재위의 행정비용에 비해 실효성이 없는, 유명무실한 법안이 될 공산이 크다. 무엇보다도 피해를 주장하는 이가 조정신청을 낸다고 해도 댓글 게시자는 조정절차에 출석할 필요가 없다. 최악의 경우 댓글 게시자는 댓글이 삭제되는 불이익을 안을 뿐이다. 물론 피해자가 댓글 게시자를 상대로 법원에 제소, 손해배상 등을 청구할 수는 있지만 이는 언론중재법 개정안을 근거로 한 것이 아니다. 해당 댓글이 삭제되고 게시자가 또 다른 ‘문제의 댓글’을 달 때 이를 막을 수 있는 것도 아니다. 그렇다고 댓글 게시자를 중재위에 출석시키거나 처벌까지 이르게 할 경우 국민 ‘재갈 물리기’라는 비판을 떠안을 수밖에 없다.


신생 미디어를 중재대상에 포함한 부분 역시 논란이다. ‘아직 오지 않은 미디어’들이 야기할 수 있는 피해에 대비해 구제방안을 마련하겠다는 것인데 중재 대상이 광범위하고 기준이 모호하다. 법안은 인터넷신문 및 인터넷뉴스서비스가 아니면서 이동통신서비스를 통해 정보, 논평 등을 계속적이고 상시적으로 제공하는 매체를 ‘유사뉴스서비스’라고 명명해 중재대상으로 삼았다. 이에 따라 피키캐스트와 페이스북 등 SNS게시물, 큐레이션 매체까지 대상이 확대됐다. 언론보도의 정의가 “언론의 사실적 주장에 관한 보도”에서 “언론이 공공에 정보와 논평을 제공하는 활동”으로 바뀌면서 파워블로거도 중재대상이 될 수 있다. 결국 개별 사안을 두고 언론중재대상에 포함되는지 여부부터 따지는 일이 반복될 가능성이 높다.


게다가 대다수 언론사가 소셜댓글서비스를 제공, 댓글과 펌글이 동시에 생성되는 현 환경에서 피해구제 조치는 내용규제에 대한 소셜미디어사의 반발을 야기할 수도 있다. 해외 서비스의 경우 사이트 관리자에 대한 통지 및 조정절차 진행에 제약이 있어 국내 SNS역차별의 우려도 있다.


이병선 카카오 CR팀 이사는 지난 13일 중재위의 정책토론회에서 중재위의 유사뉴스서비스 관련 법안에 대해 “규제대상이 명확하지 않고 추상적이며 자칫 자의적인 판단으로 언론 및 표현의 자유를 침해할 가능성이 크다”며 “그 결과 ICT기술발전에 따른 다양하고 혁신적인 뉴스서비스 출현을 저해할 위험이 있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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