속속 등장 데이터 저널리즘…아직은 일회성 이벤트 그쳐

수익성 없다는 인식에 냉대
지면 위주 제작관행도 한몫
언론사간 데이터 공유 중요
부산일보 대학과 협업 눈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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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년 현재 우리나라 데이터 저널리즘의 위치는 어디쯤일까? 국내 데이터 저널리즘 보도의 효시는 1988년 제민일보가 4·3사건의 진실을 밝히기 위해 대량의 자료들을 컴퓨터 데이터베이스화 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인터넷에 많은 데이터가 축적되면서 2008년 이후 데이터 저널리즘은 재조명받기 시작했다. 현재 데이터 저널리즘은 업계 전반에 알려져 있고 보편화된 상황이다. 하지만 전문가들의 평가는 냉정하다. 일부 유의미한 보도가 나오고 있지만 데이터 저널리즘이 꽃피우기에 국내 업계와 환경이 더없이 열악하다는 것이다. 이들은 데이터에 대한 사회 전반 인식이 높지 않고, 언론사들의 준비상태도 미흡하다고 입을 모은다. 참여와 공유, 오픈소스 등 데이터 저널리즘의 다음 단계로 넘어가기 위한 생태계 자체가 구축돼 있지 않다는 것이 이들의 평가다.

공공 데이터 활용도 떨어져
데이터 저널리즘이 이뤄지기 위해서는 무엇이 필요할까? 데이터다. 일반적으로 데이터 저널리즘이란 용어는 특정 주제에 대한 방대한 데이터를 수집·분석해 언론행위를 하는 것으로 통용된다. 정의에서부터 ‘방대한 데이터’의 필요성을 강조하고 있는 셈이다.
이런 맥락에서 공공 데이터는 데이터 저널리즘을 위한 ‘노다지’라고 할 수 있다. 데이터 규모가 방대하고 종류가 다양할 뿐더러 수집·관리에 드는 인·물적 자원을 최소화할 수 있다는 이점이 있어서다. 실제 공공 데이터는 국내 언론사들이 데이터 저널리즘 보도 시 가장 보편적으로 토대로 삼는 자료이기도 하다.



하지만 업계 관계자들은 공공 데이터를 얻는 과정이 매우 지난하고, 그렇게 얻은 데이터조차 쓸 수 없는 수준의 것이 많다며 볼멘소리를 내고 있다. 정부나 공공기관은 웹사이트를 통해 공개했다고 하지만 특정 정보에 대해선 사이트 검색이 막혀 있어 포털에서 검색되지 않는다. 정작 공개된 데이터도 알맹이는 빠져 있는 경우가 상당수다.


권혜진 뉴스타파 데이터저널리즘연구소 소장은 “점차 정보공개가 확대 시행되고 있긴 하지만 일부 데이터에 대해선 여전히 정보공개청구를 해도 비공개 되는 경우가 있다. 또 공개되긴 했는데 PDF인쇄본 형식으로 제공돼 가공이 불편한 경우가 많다”며 “비영리 단체를 중심으로 반가공 형태의 데이터를 언론사들이 공유하려는 시도는 물론 기자들이 함께 연대해 끊임없이 정보공개를 요구할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언론사는 준비됐나?
디지털 뉴스룸으로의 지지부진한 이행도 데이터 저널리즘 안착의 발목을 잡는다. 한국언론진흥재단이 발간한 ‘2014~2015 전국 언론인명록’에 따르면 10개 종합일간지에서 디지털 퍼스트 관련 전담 인력은 각 사별 10~30명 내외다. 편집국 전체 취재부서와 데이터베이스 관리 인력 비율은 평균 25~30:1정도에 불과하다. 이들은 전산팀 등에 소속돼 있고 그 역량과 규모 역시 극히 제한적인 실정이다. 결국 데이터 저널리즘 전담 인력은 없는 경우가 다반사고, 오랜 시간·비용·인력이 필요한 데이터 저널리즘 관련 보도는 결국 디지털 퍼스트 부서 인원들이 일회성 이벤트로 처리할 수밖에 없는 구조다. 국내 언론사의 데이터 저널리즘 보도가 자사 아카이브에서 불러낸 자료들을 기사, 이미지와 연결하는 정도에 그치고, 소화 데이터 양이 많지 않은 데다 퍼블리싱의 형태도 평면적이라는 평가가 나오는 근원적인 이유다.


박대민 한국언론진흥재단 선임연구위원은 “핵심은 방대한 데이터에서 어떤 가치 있는 것을 뽑아내느냐인데, 개발자와 데이터 사이언티스트가 해야 되는 역할을 우리 언론사는 모두 기자가 맡는 형태”라며 “업무에 과부하가 걸리고 전문성도 떨어질 수밖에 없다”고 꼬집었다.


더욱이 많은 비용이 들지만 회수하기가 어려운 데이터 저널리즘 보도의 특성상 언론사들은 부담을 느낄 수밖에 없다. 데이터 저널리즘 역량을 최대치로 발휘할 수 있는 다양한 수단들이 지면 위주의 비즈니스 모델을 벗어나지 못한 국내 언론환경에서 제약을 받고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최진순 한국경제 기자(건국대 언론홍보대학원 겸임교수)는 “반응이 마땅치 않고 돈도 안되는 상황, 지면에 매몰된 환경에서 데이터에 대한 마인드가 전혀 작동하고 있지 않은 셈”이라며 “언론유관단체가 관련 상 등을 제정, 수여해 관심을 조명하고 북돋우는 문화가 조성돼야 언론사의 투자요인이 될 수 있을 것”이라고 피력했다.

참여·공유의 데이터 저널리즘을 위해
전문가들은 국내 데이터 저널리즘이 다음 단계로 진화하기 위해 선례를 적극 발굴해야 할 필요성을 강조하고 있다. 이들은 △언론사의 적극적인 협업과 공유 △데이터의 사회적 가치와 공동체에 대한 기여 △데이터 접근성 확대를 통한 독자 참여 증대 등을 데이터 저널리즘이 담보해야 할 가치라고 보고 있다.


우선 부산일보는 언론사로서 지역 대학과의 협업을 통해 데이터 저널리즘의 가치를 구현한 드문 사례로 손꼽힌다. 부산일보는 지난해 ‘석면 쇼크, 부산이 아프다’라는 제목의 인터랙티브 뉴스 보도에서 부산시민이 스스로 석면노출 인구인지 확인할 수 있도록 GIS(지리정보시스템)를 활용한 자가 검증 프로그램 개발을 위해 부경대와 두 달에 걸쳐 협업을 했다. 지역신문의 한계 속에서 로컬리즘을 구현한 보도내용과 데이터 저널리즘을 기치로 언론사와 대학교가 산학 협력한 드문 사례로 볼 수 있다는 평이다.


뉴스타파의 조세피난처 탈세 관련 보도는 데이터 저널리즘이 궁극적으로 지향해야 할 사회적 가치를 보여주는 대표적인 예다. 뉴스타파는 지난 2013년 버진 아일랜드 등 조세 피난처에 상당수 사회 지도층 등이 페이퍼 컴퍼니를 설립하고 조세 회피나 탈세의 용도로 이용하고 있다고 폭로했다. 해외기관과의 협업, 충실한 준비, 데이터 수집 및 해석 등 탐사보도의 전형이자 데이터 저널리즘의 본질을 보여준 보도라는 평가가 나온다.


한겨레신문과 시사인은 지난 7월 국정원 해킹 의혹에 대한 진실규명을 위해 독자들의 참여와 정보 공유를 통해 함께 취재하는 크라우드 저널리즘 플랫폼을 선보여 국내 데이터 저널리즘의 지평을 새로이 열었다. 해외 유수 언론들은 독자들의 데이터 접근을 허용하고, 참여를 독려하는 식의 작업을 해왔지만 국내 언론에서는 드물었다.


최진순 한국경제 기자는 “업계의 문제만을 지적하는 것은 데이터 저널리즘의 발전 가능성을 제한하는 것이고 사회적인 조명이 필요한 일”이라며 “수용자의 정보소비 질을 높이기 위해 미디어 리터러시 교육을 하고 정보소비 격조를 높일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박대민 한국언론진흥재단 선임연구위원은 “결국 데이터 저널리즘은 참여와 공유 등 정보의 개방이란 가치를 실현해야 한다”며 “국내 데이터 저널리즘 생태계 구축을 위해 언론사들이 데이터 공개와 공유에 좀 더 적극적으로 나서야 한다”고 촉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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