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보법안 반대여론 왜곡하는 일본 보수언론

[글로벌 리포트 | 일본]이홍천 도쿄 도시대학 교수

▲이홍천 도쿄 도시대학 교수

2007년 선정된 일본의 올해의 유행어에 ‘KY’란 단어가 있다. 일본어로 ‘구키 요메나이’라는 머리글자의 알파벳을 차용한 말 줄이기 문화의 일종이다. 한국어로 표현한다면 ‘분위기 파악 못하는 사람’을 의미한다. 일본에서는 상황에 맞는 언행을 하지 못하는 사람을 비아냥거릴 때 사용한다. 개인의 KY도를 측정하는 심리 테스트가 심심찮게 인터넷에서 주목을 받기도 한다.


최근 들어 일본 언론을 대상으로 ‘KY도’ 조사를 해보고 싶다는 생각이 든다. 사회의 흐름을 파악하지 못하거나 여론의 움직임을 애써 무시하려는 일본 언론의 행태가 심심찮게 눈에 띄기 때문이다. 안보법안 심의, 원자력 발전소 재가동, 오키나와 미군 기지 이전 등 일본의 쟁점에 대한 일부 전국지의 보도 행태가 그렇다.


지난달 30일 일본 전역에서 열린 안보법안 반대 집회에 대한 보도가 대표적이다. 아베 정권이 사활을 걸고 추진 중인 안보법안에 반대하는 대규모 시위가 이날 국회 앞에서 열렸다. 이날 집회는 도쿄뿐만 아니라 히로시마, 나고야, 오사카 등 일본 전국 200여개 지역에서 개최되는 등 최근 들어 보기 힘든 전국적인 반대 시위였다.


이 집회가 특히 주목을 받은 것은 지금까지 정치에 무관심했던 20대가 주축인 학생단체 ‘실즈(SEALDs, Students Emergency Action for Liberal Democracy-s, 자유와 민주주의를 위한 학생 긴급 행동)’가 시위를 주도한 것이다. 실즈가 주도한 집회에는 오카다 가쓰야 민주당 대표, 시이 가즈오 공산당 위원장 등 야권 인사들과 저명인들도 다수 참가하는 진풍경이 벌어졌다. 지난 2일에는 인터넷을 통해서 300여명의 고등학생이 시부야에서 반대 집회를 가지는 등 젊은층의 반대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그럼에도 지난달 31일자 지면에서 전날 시위를 비중있게 다룬 신문은 도쿄신문, 마이니치신문, 아사히신문 등 3곳뿐이었다. 산케이신문, 요미우리신문, 닛케이는 이들 뉴스를 감추거나 트집 잡는 편집이었다. 산케이신문은 8월31일자 사회면에 ‘국회 앞 반 안보법안 대규모 집회’라는 제목과 함께 ‘경찰 3만명, 주최측 12만명’이라는 제목을 붙였다. 사실보도를 빙자해서 집회의 규모를 축소하려는 속내를 드러냈다. 아래쪽에는 ‘학생단체 실즈는 세련된 이미지로 존재감, 일부 야당이 찬동’이라는 제목으로 학생단체의 실체가 불분명하다는 의혹을 제기하는 한편 일부 시위 참가자와 경찰 사이에 충돌이 일어나 2명이 구속됐다는 점에 주목했다.


산케이신문은 9월3일자 조간에서 3개 신문이 1면에 시위 기사를 게재한 것을 비난하면서 이들 신문을 ‘국회 앞 데모 예찬자’라고 몰아붙였다. 산케이신문이 계산했더니 3만2000명 정도인 시위대에 대해서 일부 언론이 과잉반응(보도)하는 것은 이상한 일이라는 반응이다. 표현의 자유가 보장된 국가에서 벌어지는 시위가 왜 주목을 받아야 하는가라고 되묻고, 시위에 참가하지 말고 법안심의나 제대로 하라고 국회의원을 꾸짖고, 시위에 참가하지 않은 압도적 다수(?)의 침묵을 무시하지 말라는 경고도 덧붙였다.


정말 안보법안에 반대하는 것이 소수의 목소리일까? 교도통신이 8월 14~15일에 실시한 여론조사에서 응답자의 58.2%가 안보법안에 반대했다. 안보법안을 찬성하는 산케이신문이 8월 15~16일 실시한 여론조사에서도 응답자의 51.6%가 안보법안에 대해 이해되지 않는다고 답변했다. 한 달 전에 비해서 10% 이상 증가한 수치다. 같은 조사에서 56.4%의 응답자가 이번 국회에서 안보법안을 통과시키는 것에 반대했다.


산케이신문은 ‘법안이 필요하다’는 응답이 16%나 늘었다고 보도했지만, ‘일본의 안전과 평화를 유지하기 위해서’라는 전제를 달고 ‘안보관련법안의 성립은 필요하다고 생각하는가’라고 유도성 질문을 던진 결과다. 여론을 왜곡할 소지가 큰 유도성 질문은 객관적인 여론을 살펴야 하는 언론사로서 해서는 안될 일이다. 8월 22~23일 아사히텔레비전이 실시한 여론조사에서는 ‘당신은 이번 안전보장관련 법안에 대해서 찬성하십니까, 반대하십니까’라고 물었다. 응답자의 55%가 ‘반대한다’고 답했다.


언론자유와 집회·결사의 자유는 민주주의를 가능케하는 골격이다. 언론자유를 존재가치로 삼은 언론사라면 이를 장려하고, 지원해야 하는 것은 말할 나위도 없다. 타인의 언론자유를 옹호하는 것이야 말로 자신의 언론자유를 지키는 최상의 길이기 때문이다.



이홍천 도쿄 도시대학 교수의 전체기사 보기

배너

많이 읽은 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