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론 본분 잊은 공영방송 KBS

[우리의 주장] 편집위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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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BS 1TV ‘도전! 골든벨’의 세월호 발언 편집 논란으로 공영방송이 또다시 도마 위에 올랐다. 지난 6일 방영된 경기도 안양 부흥고등학교 편 녹화 당시 한주연 학생이 세월호 사고로 숨진 삼촌 김웅진 학생을 언급하며 ‘세월호를 잊지 말아달라’는 내용의 발언을 했으나 전파를 타지 못한 사실이 뒤늦게 밝혀졌기 때문이다.


KBS는 ‘제작 과정에서 여러 가지를 고려해 편집했을 뿐’이라며 정치적 의도를 부인했지만 여론의 눈초리는 매섭다. 윗선에서 불편하게 여길 만한 내용을 알아서 삭제한 제작진의 ‘자체검열’이란 의혹과 비난이 인터넷과 SNS를 통해 확산되고 있다.


KBS는 어쩌다 여고생의 발언조차 내보낼 수 없는 매체가 됐을까. ‘도전! 골든벨’ 제작진은 세간의 의혹처럼 한주연 학생의 발언이 ‘세월호 이야기’라서 편집한 것일까. 최근 KBS 보도본부에서 벌어진 일련의 사건들은 이 불신과 의혹의 근원을 적나라하게 드러냈다.


먼저 보도본부 내 탐사제작부에서 제작 중인 ‘시사기획 창-훈장 2부작’을 둘러싼 논란을 언급하지 않을 수 없다. 대한민국 훈장 70만 건의 수여 내역을 단독 입수해 분석한 ‘훈장 2부작’ 가운데 2부에 해당하는 ‘친일과 훈장’편은 이승만, 박정희 정권 당시 친일 행적자 뿐 아니라 일제 식민통치를 주도한 일본인들에게도 대거 훈장을 수여했다는 내용을 담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하지만 방영 날짜도 정해지지 않은 가운데 제작에 참여한 일부 기자들이 본인의 의사와 상관없이 타부서로 전출되면서, KBS 기자협회를 비롯한 4개 협회는 공동성명을 통해 사측의 인사 발령이 ‘훈장 2부작’ 불방을 위한 조치라 비난했다. 다음 달로 예정된 사장 선임 절차를 앞두고 뉴라이트 계열 사학자인 KBS 이인호 이사장이 불편해할 것으로 예상되는 프로그램의 방영을 미루고 있다는 지적이다.


KBS 보도본부는 앞서 지난 6월 이와 참으로 유사한 내홍을 겪은 바 있다. 한국 전쟁 당시 이승만 대통령이 일본 정부에 망명을 요청했다는 ‘KBS 뉴스9’의 보도 직후 앞선 보도를 정면으로 부인하는 비정상적인 반론 보도를 한 데 이어, 책임 라인에 있는 간부들을 화요일 밤 기습적으로 보직 해임했다. 뿐만 아니라 디지털뉴스국에서 작성한 ‘전쟁 통에 지도자는 망명 시도…선조와 이승만’이라는 기사는 인터넷에서 삭제되는 수모를 겪었고, 담당 국장과 부장 역시 같은 날 보직 해임됐다.


전국언론노조 KBS본부는 당시 성명을 통해 ‘화요일 밤의 대학살’이란 표현으로 사측의 인사조치가 이사장 눈치 보기의 일환이라고 주장했다. 임기 만료를 앞둔 조대현 사장이 차기 사장 선임권을 행사할 이인호 이사장에게 충성 맹세를 한 것과 다름없다는 지적이다.


권력으로부터 가장 자유로워야 할 공영방송에서 최근 넉 달 간 벌어진 일들은 역설적으로 권력과 가장 친밀한 그들의 자화상과 다름없다. KBS가 끊임없이 의식하고 있는 권력의 실체는 때로 청와대일 수도 이사회일 수도, 혹은 그 모두일 수도 있다. 하지만 그 권력이 방송의 제작과 편성, 인사 발령까지 깊숙이 개입했을 가능성은 희박하다. 다만 KBS의 자발적인 검열, 이른바 ‘알아서 기는’ 행태가 반복되고 있을 뿐이다.


우리가 목격한대로 사장 선임 국면에서는 방송의 독립과 자율성을 보장한 ‘KBS 방송 편성 규약’도 소용없었다. 방송법 제4조 2항의 ‘누구든지 방송편성에 관하여 이 법 또는 다른 법률에 의하지 아니하고는 어떠한 규제나 간섭도 할 수 없다’는 추상같은 규정을 누구도 의식하지 않았다. 한주연 학생이 ‘공영방송 KBS에는 세월호 이야기로 편집됐지만’이라고 판단할만한 뚜렷한 근거를 그들 스스로 마련해준 셈이다. 신뢰를 상실한 공영방송 KBS. 알아서 기는 한 회복은 불가능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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