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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경캡은 후배들 바람막이…입에서 단내 나지만 좋은 기자 만들어야죠”

[기자 25시](23) 박진국 부산일보 시경캡

김달아 기자2015.09.15 22:24:27

앞에서 끌고 뒤에서 밀어주는 균형추
좋은 기사 위해 닦달하는 악역 맡아야
후배들과 머리 맞댄 생태하천 시리즈
인터랙티브 뉴스 등 다양성 시도 반향

결혼 전날 최종 면접에서
면접관들에게 결혼반지 보여주며
“꼭 뽑아주십시오!”
신혼집 대신 경찰서 쪽잠 자며 수습

신문은 지역사회의 소중한 자산
지역민이라면 지역지 꼭 읽어야
단숨에 세상 바꿀 기사 쓰기 어렵지만
지역사회 긍정적 변화 역할하고 싶어


사회부 기자들의 세계를 다룬 드라마 ‘피노키오’에서 시경캡은 ‘입사 이래 웃는 얼굴을 본 사람이 없는’ 인물로 묘사된다. 과연 그럴까. 시경캡의 일상이 궁금했다. 16년 차 기자인 박진국 부산일보 시경캡의 하루를 좇았다.


지난 10일 아침 부산지방경찰청에서 그를 만났다. 말끔한 정장 차림에 푸른색 넥타이를 맨 그는 “여기까지 오느라 수고했다”면서도 “취재할 게 뭐 있겠느냐”며 웃었다. 부산일보 시경캡의 하루는 경찰청에서 시작해 경찰청에서 끝난다. 회사에 들어가는 날은 많지 않다. 석간이던 부산일보가 올해부터 조간으로 전환하면서 기자들의 생활방식도 변했다. 오전 5시30분 출근, 오후 6~7시 퇴근이던 일상은 오전 8시 출근, 오후 9시 퇴근으로 바뀌었다. 조간체제로 바뀌면서 타사와의 경쟁은 더 치열해졌다. “수십 년간 굳어진 시스템을 변화하기란 쉽지 않죠. 조간전환 후 8개월여가 흐른 지금에서야 조금씩 익숙해지고 있어요. 석간 마지막, 조간 첫 시경캡이라는 자부심이 있습니다.”


경찰청으로 출근한 그는 전날 밤이나 새벽에 발생한 사건을 챙긴다. 캡과 바이스를 포함한 경찰팀은 모두 9명. 며칠 전부터 수습기자 3명 전원이 경찰팀에 배치됐다. 식구가 늘어난 만큼 신경 써야 할 일도 많아졌다. 기자 한 명을 키우는 데는 많은 시간과 노력이 든다. 앞으로 4개월간 수습을 맡아야 할 그의 어깨가 무거워 보였다.


▲박진국 부산일보 시경캡은 “미국 한 언론사 편집국 벽에 적힌 ‘저널리즘은 내 마음속 꺼지지 않는 불꽃이다’라는 문구를 보고 기자로 살아온 자신을 되돌아보게 됐다”고 말했다.

그는 시경캡의 역할을 ‘후배들을 위한 바람막이’라고 말한다. 앞에서 이끌고 뒤에서 밀어주는 것, 그 균형을 찾으려 노력하고 있다. 힘들 걸 알면서도 닦달하고 몰아붙이는 것도 결국 좋은 기사를 위한 것임을 후배들이 이해해주리라 믿고 있다.


오전 9시20분 취재기자들의 보고가 쏟아졌다. 수습기자가 절도사건을 보고하자 수화기 너머로 꼼꼼한 피드백과 취재지시가 이어졌다. “절도 피해 금액이 너무 적어서 기사가 안 돼. 하지만 피의자가 기초생활보장 수급자인지, 전과가 있는지 여러 가능성을 두고 취재해봐. 특별한 사연이 있는지 자세하게 봐야 한다.” “기사를 쓰는 것은 논문 쓰는 것과 비슷해. 일단 가설을 세워야 돼. 그걸 언론계에서는 이른바 ‘야마’라고 불러. 야마를 잡아 놓고 객관적인 근거를 찾아야 하는데 그게 없으면 기사가 될 수 없지. 어떤 주제가 맞는지 일단 나가서 취재해봐라.”


“기사가 되겠다.” 이혜미 수습기자의 보고를 받던 그는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노래방에서 노래방 도우미와 한 남성, 이 남성의 이성친구가 싸움을 하다 경찰에 입건된 사건이었다. 기자들의 보고가 끝나자 사건사고·취재계획서를 작성했다. 잠시 뒤인 오전 10시15분, 그는 기자실을 나서며 휴대전화를 집어 들었다. 사회부장과 차장에게 오늘 취재할 기사를 보고하기 위해서다. “이 순간이 제일 긴장됩니다. 부장이 사건이나 취재내용에 관해 물었는데, 제가 제대로 대답하지 못하면 자괴감이 들기도 하고요.” 보고 후 곧바로 부산 동구 중앙대로에 있는 회사로 향한다. 부산일보 창간 69주년 기념행사가 열리는 날이기 때문이다.

부산지역 45개 하천 샅샅이 훑어
오전 11시 부산일보 10층 대강당에서 열리는 창간 69주년 기념행사에 참석했다. 늘 현장에 있는 취재기자들도 이날만큼은 회사로 모여들었다. 이 자리에서 안병길 부산일보 사장은 창간 70주년을 앞둔 부산일보의 비전과 함께 신사옥 준공 등 다양한 사업 계획을 발표했다. 오는 11월부터 신문 전면 컬러화 단행, 제호·서체 변경 등도 공식화했다. “사장님께서 저희도 자세히 몰랐던 것들을 공개적으로 발표하셨네요.(웃음) 이제 신문에서는 큰 수익을 창출하기 어려워 다양한 수익모델을 개발한다는 사장님의 말씀이 참 든든합니다. 경영·재정적 안정은 기자들이 저널리즘의 기본가치를 지킬 수 있는 기반이니까요.” 행사 막바지엔 참석자들이 모두 일어나 사가를 제창했다. “양심의 붓대를 힘차게 쥐자”는 노랫말이 크게 울렸다.


점심식사는 부산일보 근처 단골 횟집에서 ‘생태하천 20년 시리즈’ 특별취재팀 기자들과 함께했다. 휴가로 빠진 김백상 기자를 제외하고 황석하·이대진·장병진 기자가 그를 반겼다. 이들은 숙성된 선어회와 문어 숙회, 해산물 가득한 어묵탕에 소주를 곁들이며 이야기를 나눴다. 하천 취재팀은 지난 4월부터 11차례에 걸쳐 부산지역 45개 생태하천 정비사업의 문제점과 대안을 심층 보도했다. 지난 9일에는 취재내용을 기반으로 제작한 ‘우리 동네 하천지도’ 인터랙티브 뉴스도 공개했다. 카드뉴스 형식으로 부산지역 도심하천의 실상을 한눈에 파악할 수 있다. “부산 도심하천이 망가지고 있었어요. 동천엔 녹조, 온천천엔 적조가 발생했고요. 지난 20여년간 하천정비 사업에 수천억원이 투입됐는데 생태하천은 더 망가졌죠. 우리 기자들이 대부분의 하천을 직접 찾아 발원지부터 훑으며 취재했어요. 기획 초반부터 다양한 플랫폼에 적용하기로 해 동영상이나 사진을 직접 공들여 찍었어요. 기자들이 고생 많았죠.” ‘생태하천 20년 시리즈’는 지역사회와 학계 등에 큰 반향을 일으켰다. 보도를 접한 학자들이 도시생태하천 연구 데이터를 제공하기도 했다. 인터랙티브 뉴스에는 도시하천과 관련된 고급 정보를 지속해서 업데이트할 계획이다.


“현재 신문의 주요 독자는 고령층이죠. 온라인에 익숙한 지금의 젊은이들이 나이 들면 종이신문을 볼까요? 언론은 콘텐츠를 강화하고 다양한 플랫폼을 활용해야 살아남을 수 있어요. 하천 인터랙티브 뉴스가 한 예죠. 기자들이 소셜미디어를 적극 활용했으면 좋겠어요. 자신만의 콘텐츠를 만들어야 해요. 이제 부산일보의 ○○기자가 아니라 ○○기자가 다니는 부산일보가 돼야 합니다.”

▲생태하천 특별취재팀 장병진 기자, 이대진 기자, 박진국 시경캡, 황석하 기자(왼쪽부터 시계방향으로)가 ‘우리동네 하천지도’ 관련 회의를 하고 있다.

교만했던 기자인생 바꿔 놓은 미국 연수
그는 기자로서 인권과 환경을 강조한다. 2009~2010년 미국 미주리대학 저널리즘스쿨에서 연수하며 얻은 깨달음이다. 기자 10년차, 자신감 혹은 자만심이 하늘을 찌르던 때 미국으로 연수를 떠났다. 당시 미국은 2008년 9월 글로벌 투자은행 리먼 브라더스 파산이 초래한 금융위기로 큰 혼란에 빠진 상태였다. 대규모 정리해고가 이어졌고, 언론사도 예외는 아니었다. 쫓겨나는 미국 언론인들을 직접 목격했다. 처참한 광경이었다. 앞서 그는 2007년 미국탐사보도협회가 주최한 콘퍼런스 참여차 미국을 방문한 적이 있었다. 그때 시애틀타임즈는 미국에서 성장하고 있는 몇 안 되는 신문으로 소개됐었다. 하지만 금융위기는 이곳에도 매서운 해고 바람을 몰고 왔다. 시애틀타임즈 기자 3분의 1 이상이 회사를 떠났다. 연수중이던 그는 이런 상황에 부닥친 시애틀타임즈를 방문했다. 우울할 줄 알았던 회사 분위기는 생각보다 밝았다. 편집국 벽에 크게 적힌 ‘저널리즘은 내 마음속 꺼지지 않는 불꽃이다’라는 문구를 보고는 머리가 ‘띵’ 했다. 그 문구 하나에 그동안 잊고 있던 언론인의 소명의식이 되살아났다. 지난 10년간 기자로 살아온 자신을 되돌아보게 된 것이다.


이달의 기자상은 이미 수차례, 한국기자상을 2년 연속 수상하기도 했던 7~8년차 기자 시절의 그는 교만하고 건방졌단다. 날카로운 지적만이 기자의 역할이라 믿을 때였다. 그러나 10년 차에 훌쩍 떠난 미국 연수가 그의 기자인생을 송두리째 바꿔 놓았다. 회사에서 해고되고도 저널리즘 구현을 위해 취재현장을 누비는 기자들. 그들을 보고 느끼며 자신이 한없이 부끄러워졌다. 백팩을 메고 스마트폰을 든 채 현장으로 나간 기자들은 스스로 미디어가 됐다. 그전보다 벌이는 줄었지만, 이들을 후원하는 재단은 늘어나고 있었다. 미국 연수는 그동안 갖고 있었던 허세와 겉멋을 벗어내는 시간이었다.


“나에게 주어진 특별한 힘을 나 자신이 아니라 독자, 지역사회를 위해 써야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인권과 환경, 언론인이 최우선으로 지향해야 할 가치임을 깨닫는 순간이었죠. 미국 연수를 다녀온 뒤 부산일보 기자라는 게 행복하고 감사한 일이라는 것을 다시 한 번 느꼈습니다.”


이윽고 그는 처음 부산일보 기자가 된 때를 떠올렸다. 대학 졸업 후 대우그룹이 소유한 지역신문 기자로 1년을 보냈지만 회사가 망해 실업급여를 받는 처지가 됐다. 캠퍼스 커플로 만난 여자친구는 교사가 돼 있었다. 실직 기간이 1년에 다다르니 그의 불안감은 커져갔다. 그러자 여자친구가 그에게 “살림이나 해라”며 덜컥 프러포즈했다. 반대할 줄 알았던 처가에서는 결혼을 승낙했고, 오히려 그의 부모님이 부끄럽다며 반대했다. 우여곡절 끝에 결혼 날짜를 잡았다. 그런데 부산일보 최종 면접일이 결혼 전날일 줄이야! 그는 면접관들에게 결혼반지를 보여주며 “내일 결혼합니다. 꼭 뽑아주십시오!”라고 외쳤단다. 면접관들은 황당해 했지만 그의 패기가 먹혀든 것일까. 결국 최종합격 통지서를 손에 쥐었다. “당시만 해도 남자는 28세가 취업 마지노선이었는데, 제가 딱 28세이던 해 11월9일 부산일보 기자가 됐어요. 정말 기뻤죠.” 하지만 결혼 후 곧바로 지옥 같은 수습기자 생활이 시작됐다. 매일 신혼집 대신 경찰서에서 잠을 잤다. 그가 집에 계속 들어오지 않자 아내는 경찰서에 전화해 “박진국 기자 경찰서에 있는 것 맞느냐”고 확인할 정도였단다. 신혼여행도 미룬 채 시작한 기자생활이었다. 인생에서 가장 달콤해야 할 신혼을 동기들과 경찰서에서 쪽잠 자며 보낸 것이다. 


▲박진국 시경캡(가운데)과 사회부 기자들이 퇴근 후 부산 서면의 한 식당에서 회식을 하고 있다. 분위기는 내내 화기애애했다.

후배들, 지역언론 기자 자부심 갖길
오후 1시, 경찰청으로 돌아오자 기자들의 2차 보고가 시작됐다. 오전에 취재한 내용을 바탕으로 피드백과 추가 지시가 내려졌다. 김준용 수습기자가 걸어온 전화를 받았다. 부산사상터미널에 불법 주정차한 택시가 줄지어 있다는 내용이었다. “보내준 사진 방금 봤다. 사진에는 주제와 부제가 있는데 이 사진은 주제가 부각되지 않네. 트리밍을 해도 안 되겠다. 좀 더 다양한 앵글로 찍어봐. 건물 높은 곳에서 찍어보자.” 전화를 끊자마자 또 다른 전화가 걸려왔다. 역시 수습기자였다. “취재하면서 저쪽 반론은 받았니. 이야기 충분히 들어주고 취재원 배려해라. 우리가 할 수 있는 건 기사로 말하는 거다.” 오후 2시20분, 기자들의 보고 내용을 취합해 또다시 부장과 차장에게 보고한다. 이때 킬 하거나 더 크게 쓸 것, 추가 취재가 필요한 기사들이 정해진다. 편집국 회의를 거쳐 오후 3시40분 기사 지면배치가 확정됐다. 이때부터 기자들은 본격적으로 기사 작성을 시작한다.


“오늘은 조금 여유가 있는 편이네요. 얼마 전 추자도 낚싯배 전복사고 피해자에 부산 지역민들이 포함돼 있어 한참 정신 없었거든요.” 하지만 곧 새로운 사건이 보고됐다. “바이스가 보고했는데, 꽤 큰 사건이네요.” 부산의 모 백화점에서 2억3000만원대 초고가 다이아몬드 반지가 도난당해 경찰이 수사에 나섰다는 내용이다.


오후 5시에 접어들자 기자들이 쓴 기사가 그의 컴퓨터로 속속 도착했다. 그는 연신 자판을 두드리며 기사를 수정했다. 역시나 수습들의 기사에 손이 많이 간다. “첫 번째 이야기는 킬 시키자. 문장에서는 주어가 먼저 나와야지. 이렇게 쓰면 무슨 말인지 쉽게 이해할 수 없잖아.” 수습들은 엄하게 가르쳐야 한다면서도 고쳐야 할 기사내용을 조목조목 지적하는 그의 목소리에는 애정이 묻어난다. 한참이나 전화기를 붙잡고 있던 그가 말했다. “아휴, 입에서 단내가 나네요. 수습들 언제 사람 만들까요. 소 키우는 심정입니다. 하하.”
이날은 마침 장병진 기자의 이달의 기자상 수상 축하 겸 수습기자 환영 회식이 있는 날이었다. 평소보다 좀 더 일찍 퇴근해 회식장소로 발걸음을 옮겼다. 오늘도 수고했다며 맥주잔을 기울이는 그와 후배들은 시종일관 화기애애했다.


그는 후배들이 비교적 깨끗한 언론환경을 갖춘 부산에서 좋은 언론인으로 성장하길 바란다고 말한다. “부산 언론은 진입장벽이 높아요. 다른 지역은 대판 12~16면 찍는 신문도 많은데, 부산일보와 국제신문은 모두 32면이죠. 사이비 언론은 살아남을 수 없는 환경이에요. 부산일보와 국제신문은 서로 경쟁하며 성장해왔어요. 경쟁하니까 경쟁력이 있는 거죠. 생산적 경쟁은 기자와 각 사, 지역 모두에게 좋아요. 이 두 신문은 지역사회의 소중한 자산입니다. 지역민이라면 지역지를 꼭 읽어야 하지 않을까요? 저도 두 신문 모두 개인적으로도 구독하고 있습니다.”


그러면서 그는 지역 언론사 기자의 중요성도 강조했다. “단숨에 세상을 바꿀 수 있는 기사는 쓸 수 없을 겁니다. 하지만 지역민 한명 한명에 귀 기울이며 지역사회를 긍정적으로 변화시킬 수는 있죠. 후배들이 부산일보 기자라는 자부심을 가지길 바랍니다. 저는 제 나름대로 일상성에 매몰되지 않기 위해 매일매일 발버둥 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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