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양축구학교에서 북한의 변화를 엿보다

안홍석 연합뉴스 기자 평양 취재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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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월17일 주체사상탑 앞에서 포즈를 취한 안홍석 연합뉴스 기자. (안홍석 기자 제공)

서른다섯 살의 기자에게 평양은 과거의 어색함과 새것의 익숙함이 한데 뒤섞인 곳이었다.


기자는 8월16일부터 열흘간 평양 능라도의 5.1경기장에서 열린 2015 국제 유소년 U-15(15세 이하) 축구대회 취재를 위해 방북했다. KBS 선배들까지 총 5명의 취재진이 평양을 찾았는데 북한이 한국 언론의 평양 취재를 허용한 것은 2010년 5.24 대북제재 이후 처음이었다.


당연히 평양의 변화상을 독자에게 전하는 것이 1차적인 임무였는데 기자는 북한 취재 경험이 전혀 없었던지라 무엇이 얼마나 변화했는지 잡아낼 능력이 부족했다. 출장길에 오르기 전 선배들의 조언에 따라 회사 사진 DB에서 평양 시내 사진을 뒤적거렸으나 한계가 있었다.


어쩌면 1980년대생 한국 기자가 평양을 찾는 것은 처음 있는 일일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모르는 것을 아는 채 하며 쓰지 말라’라는 수습 시절 한 선배의 조언(이라고 쓰고 ‘갈굼’이라 읽는다)이 떠올랐다. 그저 마음 편히 가서 내 눈에 비친 대로 덤덤하게 쓰는 것도 의미가 있겠다 싶었다.


평양의 풍경은 TV를 통해 간접적으로 접한 한국의 1960∼1970년대 모습과 비슷했다. 대부분의 건물이 베이지색이나 회색으로 단조로운 느낌이었다. 도로에는 버스와 비슷한 형태의 무궤도 전차가 다녔다. 남성들은 대부분 펑퍼짐한 짙은 양복바지에 흰색 셔츠 차림으로 복제한 듯이 비슷했다. 마치 시간여행을 하는 듯한 기분이었다.


▲8월21일 평양 능라도 5.1경기장에서 열린 제2회 국제 유소년 U-15(15세 이하) 축구대회 개막전 단체응원을 끝내고 학생들이 귀가하고 있다. 안홍석 연합뉴스 기자는 8월16일부터 25일까지 열흘간 열린 제2회 국제유소년 U-15(15세 이하) 축구대회를 취재차 북한 평양을 방문했다. (연합뉴스)



TV서 봤던 한국 옛 모습에 시간여행 착각

휴대전화·전자화폐 사용·고층아파트 눈에 띄어

평양역 광장 시민들 만화영화 시청 인상적

체력·규율이 전부였던 북한 축구계 변화 모색


익숙한 풍경도 많았다. 거리에는 휴대전화를 든 시민들의 모습이 눈에 많이 띄었고 상점에는 한국의 ‘티머니’와 비슷한 ‘나래카드’라는 전자화폐가 통용되고 있었다. 평양의 대표적인 부촌 창전거리에는 타워팰리스에 버금가는 규모의 고층 주상복합 단지가 들어서 있었으며 시내 서쪽에는 그보다도 넓은 부지에 과학자들을 위한 주거 단지가 한창 공사중이었다.


만화영화 ‘소년장수’를 보려고 평양역 광장 전광판 앞에 모인 수백명 시민들의 모습은 가장 인상적이었다. 소년장수는 1980년대 초반 방영돼 선풍적인 인기를 끈 작품인데 이번에 리메이크됐다고 한다. 일본 문화의 영향을 본격적으로 받으며 자란 기자의 눈에도 그림의 움직임이 매우 부드러웠고 연출도 세련됐다. 프로레슬링 경기에 열광하던, 보고 즐길 거리가 많지 않았던 한국의 1960∼1970년대를 떠올리게 했다.


방북 닷새째인 8월20일에 남북 간에 교전이 발발하면서 평양역 광장 분위기를 직접 취재하기도 했다. 방북 기간 내내 북한은 숙소인 양각도국제호텔과 5.1경기장 등 정해진 곳의 취재만 허용했을 뿐이다. 차량을 타고 이동할 때면 사진과 영상 촬영이 철저히 금지됐다. 그러나 북한은 교전 이틀 뒤 갑작스럽게 평양역 광장 취재를 허용했다. 한국 언론을 통해 그들의 목소리를 전하겠다는 북한 의도와 보다 생생한 취재를 원했던 취재진의 바람이 맞아떨어진 결과였다.


체육부의 축구 담당 기자로서 가장 기억에 남을 일은 북한 축구의 새 조류를 이끄는 평양국제축구학교를 취재한 것이다. 북한 축구는 군대를 연상케하는 조직력과 빠른 속도로 특징지어진다. 이를 위해 기본기와 창의성을 제쳐두고 체력과 규율에 모든 것을 걸었던 북한 축구는 10여년간 암흑기를 보냈다.


그러나 지난해 열린 U-16 아시아 챔피언십에서 이승우, 장결희가 버틴 한국을 꺾고 우승하는 등 부활의 신호가 감지되고 있다. 그 중심에 있는 것이 김정은 국방위원회 제1위원장의 전폭적인 지원으로 설립된 평양국제축구학교다.


북한 축구계는 과거의 방식이 드러낸 한계를 인정하고 변화를 모색하고 있다. 변화의 방향은 기본기를 다지고 생각을 통한 창의적인 축구를 구현하는 데에 맞춰져 있다. 기자는 한 나라의 축구에는 그 문화가 반영돼있다고 믿는다.


어쩌면 평양국제축구학교는 북한 사회의 어떤 변화의 흐름이 반영된 결과물일지도 모른다. 방북 기간 허용된 취재의 폭이 넓지 않았고 무엇보다도 북한 사회 전반에 대한 기자의 이해가 부족한 까닭에 이런 부분까지 기사로 다루지는 못했다.


남북관계가 하루빨리 개선돼 북한 전문 기자 선후배들이 평양을 찾아 북한의 변화된 사회 분위기를 세밀하게 전해주기를 독자의 한 사람으로서 희망한다.

▲8월17일 평양국제축구학교 앞에서 현철윤 교장(사진 왼쪽)과 함께 기념촬영을 하고 있는 안홍석 연합뉴스 기자. (안홍석 기자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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