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의 BBC, 불확실한 미래

[글로벌 리포트 | 영국]김지현 골드스미스 런던대 문화연구 박사과정

‘오늘의 BBC : 불확실한 미래(The BBC Today : Future Uncertain)’라는 제목의 책이 출간을 앞두고 있다. 현재 BBC가 처한 상황을 이보다 더 적확하게 묘사할 수는 없을 것이다. 칙허장 갱신 협상이 공식적으로 시작되지도 않았는데 보수당 정부는 거칠게 ‘수신료 전쟁’의 포문을 열었다. 지난 5월 총선에서 대승을 거둔 후 캠페인 기간 동안 못마땅했던 BBC에 대한 적개심을 공공연하게 드러내 온 터였다.


‘BBC의 황제적 야심’을 공개적으로 비판하며 그 규모를 축소하라고 주장해 논란을 빚어 온 조지 오스본 재무장관은 지난 6월, 그동안 복지재원으로 충당해온 75세 이상의 노령인구 수신료를 복지예산에서 제외하겠다고 밝혔다. 당시 업계에서는 그 계획이 BBC에게 어떤 식으로든 불리한 영향을 미칠 것이라 조심스럽게 예측했다.


아니나 다를까. 존 위팅데일 문화장관은 7월 초 의회에 출석해 BBC의 토니 홀 사장과 합의했다며 앞으로 노령인구의 수신료는 BBC의 예산에서 충당될 것이라고 공표했다. 이로 인해 BBC는 2020년까지 전체 수신료 수입에서 총 7억5000만 파운드의 손실을 입게 됐다. 세간의 관심은 이처럼 불리한 ‘거래’를 왜 BBC 경영진이 순순히 받아들였는지에 쏠렸다.


토니 홀 BBC 사장은 보수당 내각이 수신료 손해에 대한 보상을 약속했다며 공식적인 입장을 밝혔다. 하지만 논란은 계속 됐다. 좌파와 우파 모두 그 거래 자체가 절차적인 문제를 지닌다고 비난했다. 공공서비스방송인 BBC의 주요 재원을 조달하는 수신료와 관련된 중대한 변화임에도 불구, 어떠한 공공 합의도 없이 은밀한 ‘밀실’에서 거래를 끝냈다는 것이다.


영국 일간지 ‘파이낸셜 타임스(Financial Times)’의 기자 출신인 레이 스노디(Ray Snoddy)가 저술한 ‘오늘의 BBC : 불확실한 미래’는 바로 그 거래의 숨겨진 뒷이야기를 밝혀 화제를 모으고 있다. 그에 따르면 이번 거래에는 존 위팅데일 문화장관 뿐 아니라 조지 오스본 재무장관도 직접적으로 개입했다. 애초 보수당 정부는 노인 수신료로 인해 발생하는 7억5000만 파운드에 달하는 BBC의 예산 손실에 대해 고작 5000만 파운드 정도만 보상할 계획이었다. 위팅데일 장관이 기존에 BBC의 예산으로 충당되던 브로드밴드 롤아웃(rollout) 비용에서 5000만 파운드를 낮춰주겠다고 제안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에 대한 BBC의 대응은 어땠을까. 세간의 우려와 달리 BBC 경영진은 정부의 제안에 공격적으로 맞선 것으로 드러났다. BBC 경영진은 위팅데일 장관에게 ‘수신료 구멍’을 메꿔주지 않는다면 BBC2와 BBC4 TV 채널을 폐쇄할 것이라고 ‘협박하는’ 한편, 지역의 라디오 방송사들을 폐쇄하고 스코틀랜드와 웨일스 북부, 아일랜드 지역에서 라디오 뉴스 서비스를 줄이겠다는 으름장을 놓았다고 한다.


‘가디언’은 이 책이 (수신료 거래 과정을) ‘멜로드라마처럼’ 과장되게 묘사하고 있다고 냉정하게 평하면서도 “예상과 달리 코너에 몰려 싸우게 된 BBC 리더들은 생각보다는 근육질이었다”며, BBC 경영진의 대응 자체는 긍정적으로 해석했다.


문제는 칙허장 갱신까지 남아 있는 라운드의 수가 너무 많다는 것이다. BBC가 협박의 대가로 얻은 것은 2016년 말로 예정된 칙허장 갱신 이후의 물가상승률에 맞춰 수신료를 올려주겠다는 위팅데일 장관의 ‘불확실한 약속’이다. 홀 사장에 따르면 위팅데일 장관은 BBC 아이플레이어(iPlayer)의 온라인 시청 서비스를 악용해 수신료를 회피하는 행위 역시 방지할 수 있도록 제도적 개선을 약속했다.


하지만 노동당과 진보 신문들은 이러한 약속을 믿고 BBC 경영진이 긴장을 낮춰서는 안 된다고 경고한다. 실제로 노령인구 수신료 거래를 끝내자마자 영국 정부는 BBC의 목적과 규모를 재정의하는 것을 목적으로 내세운 정책제안서, ‘BBC 녹서(Green paper)’를 발표해 BBC를 당황시켰다. 업계는 ‘녹서’에서 BBC의 근간을 뒤흔들려는 정부의 야심이 드러났다고 입을 모은다. 2라운드가 이제 시작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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