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법부 자처하는 방송통신심의위 오만

[언론 다시보기] 김준현 변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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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준현 변호사

방송통신심의위원회(방심위)가 정보통신망에 게시된 정보 중 타인의 명예훼손과 관련된 정보에 대해 직권 또는 제3자 신고만으로도 심의를 시작할 수 있도록 정보통신 심의규정을 바꾸려고 한다.


당사자의 신청 없이도 행정당국인 방심위가 직권으로, 또는 제3자 신고로 인터넷 게시글 등이 명예훼손에 해당하는지를 심의하고 관련 게시물을 차단하거나 삭제를 하겠다는 것이다.


이 같은 개정방안은 법리적으로 타당하지 않다. 우리 형법은 타인의 권리를 침해하는 명예훼손적 표현에 대하여는 침해당사자의 처벌의사를 요구한다. 어떤 표현이 타인의 명예를 훼손하더라도 처벌을 하려면 당사자의 의사가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표현의 자유와 개인의 인격권과의 조화를 위한 최소한의 장치다. 상식적으로 생각해도 당연한 논리이다. 명예훼손이 되는 사실 여부에 대하여는 행정당국이나 제3자가 아니라 당사자가 가장 잘 알기 때문이다.


방심위는 형법이나 정보통신망법에서 명예훼손죄를 반의사불벌죄로 규정했으므로, 방심위가 당사자의 의사와 무관하게 심의에 착수하는 것은 법리적으로 문제가 안 된다는 의견이다. 그러나 형벌과 행정처분은 별개다. 방심위는 사법부가 아니라 행정기관이다. 행정기관에 불과한 방심위가 명예훼손에 대한 사실관계를 판단할 수 있다는 것은 지나친 오만이자 월권이다.


더욱이 개정안은 표현의 자유를 후퇴시킬 뿐만 아니라 인터넷상 명예훼손에 대한 피해구제의 현실적 대안도 될 수 없다. 방심위 심의 결과 게시물 삭제, 차단 등의 행정처분이 이뤄지더라도 피해자가 손해배상 등을 청구하려면 별도로 소송을 제기해야 한다. 게시글 작성자의 입장에서는 방심위의 처분에 대하여 표현의 자유를 침해했다며 이의를 제기하려면 행정처분 취소 소송을 제기해야 한다. 피해자나 게시글 작성자 역시 실질적인 피해를 구제받으려면 또 다른 절차를 거쳐야 하는 셈이다.


결국 규정 개정으로 남게 되는 것은 불필요한 행정처분의 남발과 표현의 자유에 대한 침해뿐이다. 이번 개정추진에 대하여 정치인 등 공인에 대한 비판적 여론을 억제하기 위한 것이라거나 불필요한 행정력 낭비만 불러올 것이라는 지적이 나오는 이유다.


▲방송통신심의위원회 전체회의. (뉴시스)

오히려 이 기회에 현실적 대안이 논의되어야 한다. 언론중재위원회처럼 현재 방송통신위원회의 ‘명예훼손 분쟁조정부’를 활성화하는 것도 하나의 방안이다.


인터넷 게시글로 피해를 본 사람이 신청하면 분쟁조정부에서 중재나 조정을 담당하며, 조정이 성립하지 않을 경우는 민사상 소를 제기한 것으로 간주하는 식으로 개선할 필요가 있다. 행정기관이 심의 의결 주체가 아니라 조정과 중재권자로서 역할을 하되 당사자들이 수긍하지 않으면 최종적으로 사법부의 판단을 받도록 하는 것이다. 또한 명예훼손에 대한 게시글에 대한 삭제나 차단을 행정당국의 권한 아래에 두는 것이 아니라 현행 법의 가처분제도나 정보게재자(포털사이트 등)의 임시조치를 이용하여 사법부의 판단을 받도록 하는 것이 필요하다.


방심위 개정규정 대상에 정치인 등 공인을 포함하지 않으면 되지 않겠냐는 방심위 의견은 논점의 본질을 흐리는 것이다. 주목해야 할 부분은 공권력이 일상적인 표현의 자유에 간섭, 검열할 권한을 가지는 것이 타당하냐는 근본적 물음이다.


공권력이 개인들의 권리의무관계에 과도하게 개입하는 것은 경찰국가에서나 있을 일이다. 그 권리가 표현의 자유와 관련된 것이라면 더욱 경계해야 한다. 표현의 자유를 침해하는 제도를 양산하는 사회는 여론의 다양성을 잃게 된다. 그리고 경직된 사회는 기득권을 보호하는 방향으로 치우치기 마련이다. 방심위의 명예훼손 정보에 대한 자의적인 판단과 게시글 삭제 권한 등 과도한 권한을 축소하는 논의가 시작될 시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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