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직은 불편한 주위 시선…그래도 "힘을 내요 슈퍼 파더"

[창립 51주년 특집]아빠는 육아휴직 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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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야흐로 ‘아빠 육아’ 시대다. 엄마의 특권 혹은 무게로 여겨졌던 육아에 아빠들이 적극 참여하고 있다. 올 상반기 남자 육아휴직자가 사상 처음으로 전체의 5%를 넘어서는 등 아빠 육아 바람은 거세다. 언론계는 ‘아직’이라는 분위기지만 각 언론사마다 남자 육아휴직자가 속속 등장하고 있다. 강원일보·머니투데이·YTN에서 남자 기자 중 최초로 육아휴직을 선택한 김상태·김훈남·이문석 기자를 만나봤다.



“행복 에너지 충전…업무 복귀 문제없어”
김상태 강원일보 기자


“‘발루뽀’라고 아세요? 코끼리가 주인공인 아이들 애니메이션인데요, 5살 딸아이가 자꾸 저걸 보여달라는데 무슨 말인지 도저히 모르겠더라고요. ‘방귀 뽕’인줄 알았다니까요.(웃음) 육아휴직을 하지 않았다면 아이들이 발루뽀를 그렇게 좋아하는지 몰랐겠죠?”


미운 세 살과 더 미운 다섯 살, 12월에 태어나는 아이까지 3남매를 둔 김상태 기자는 지난 4월 강원일보 남자 기자 최초로 육아휴직을 했다. 그동안 그는 아이들이 잠든 늦은 밤에나 집에 들어오기 일쑤였다. 며칠 동안 아이들을 못 볼 때도 잦았다. 아이들은 아빠를 어색해했고 좀처럼 다가오지 않았다.


“아이들과 많은 시간을 보내고 싶었어요. 어렸을 때 많이 큰다는데 그 모습을 가까이서 지켜보고 싶었죠. 또 출산을 앞둔 아내가 일도 하면서 두 아이까지 도맡아 키우니 힘들어하더라고요. 그래서 육아휴직을 결심하게 됐죠.”


두 아이를 키우는 일은 생각보다 만만치 않았다. 빨래, 청소 등의 집안일부터 아이들의 끼니를 챙기고 놀아주는 일은 영 어색하고 힘들었다. 처음 아이들은 하루 종일 집에 있는 아빠에게 안기려 하지도 않았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자 자연스레 마음의 문을 열었다.


“함께 지내다 보니 아이들도 어른들과 언어만 다를 뿐 그들의 세계가 있다는 걸 알게 됐어요. 이젠 아이들의 표정만 봐도 뭘 하고 싶은지 알 것 같아요. 얼마 전에는 백주부 따라서 된장찌개를 해줬는데 맛있게 먹더라고요. 사실 설탕을 많이 넣어서 맛없었는데도 잘 먹어주니 기분 좋던데요.(웃음)”


가족과 함께 보내는 시간이 늘어난 덕에 최근 부산여행도 다녀왔다. “강원도-부산은 큰 맘 먹지 않으면 갈 수 없는 거리예요. 하지만 육아휴직 덕에 맘 편히 다녀올 수 있었죠. 훗날 아이들과 공유할 수 있는 추억이 또 생겼네요. 매일 아이들의 해맑은 웃음을 보면서 마음의 안정을 찾고 있어요. 업무에 복귀했을 때 더 열심히 일할 수 있는 추진력을 얻고 있죠.”


육아 휴직계를 낼 땐 망설여지기도 했다. 남자의 육아휴직을 바라보는 사회적 편견과 회사 내에서 불이익을 받지 않을까 하는 걱정 때문이었다. 그럼에도 그는 육아휴직의 긍정적인 면을 강조했다.


“감사하게도 회사에서 많이 배려해 주셨어요. 다만 인력이 부족한 지역 언론사에서 6개월간이나 휴직을 하려니 동료에게 굉장히 미안했죠. 하지만 저와 가족에게 그 시간이 꼭 필요하다고 생각했어요. 행복한 경험을 하고 충분한 에너지를 쌓고 있으니 이제 회사로 돌아가 만회하는 일만 남았네요. 분명 회사에도 긍정적인 영향을 미칠 거예요. 제가 아이들을 키워보니 오히려 육아는 여자보다 남자가 맡아야 해요. 정신뿐 아니라 신체적으로도 엄청 고되거든요. 저로 인해 남자의 육아 휴직을 자연스럽게 받아들이는 문화가 생기면 좋을 것 같아요.”



“남자 육아휴직 유연하게 바라봐야”
김훈남 머니투데이 기자


“육아휴직을 했다고 해서 이 세상에서 제일 좋은 아빠, 내 아이를 가장 사랑하는 아빠는 아닌 것 같아요. 그저 아이를 사랑하는 여러 방법 중 하나죠. 아빠 기자들이 단 한 달만이라도 육아휴직을 경험해봤으면 좋겠어요. 그동안 몰랐던 내 아이와 아내를 이해할 수 있게 될 거예요.”


지난 2월 아내와 ‘바통 터치’하며 육아휴직에 들어간 김훈남 머니투데이 기자는 22개월 남자아이를 키우는 초보 아빠다. 김 기자가 머니투데이 남자 기자 중 처음으로 육아휴직계를 내자 주위에선 걱정과 응원이 교차했다.


“애 키우기 만만치 않다, 1년 동안 감 떨어지는 것 아니냐는 걱정도 있었지만 대체로 응원을 많이 받았어요. 지난 6개월 동안 해보니 이제야 조금 요령이 생기는 것 같아요. 남은 6개월은 더 잘할 수 있을 거예요.”


육아휴직은 아내가 임신했을 때부터 충분히 고민하고 내린 결정이다. 아이와 의사소통이 될 때까지는 직접 키우자는 생각이었다. 아내의 복직과 함께 시작된 김 기자의 육아는 생각보다 고됐다.


“일할 때는 나름대로 일정을 조절하면서 체력 안배를 할 수 있었죠. 하지만 휴직 후엔 온종일 아이만 따라 다니니 체력적으로 힘들더라고요. 몸 쓰는 일을 해본 지 오래되기도 했고요. 조카 하루 봐주는 정도로 생각했다가는 몸살 나기 십상이에요. 반면 아이와 함께 있으니 마음은 안정돼요. 다른 사람에게 아이를 맡겼다면 정신적으로 힘들었을 것 같아요. 지인들 얘기 들어보니 심지어 부모님께 맡기는 것도 스트레스라던데요.”


매일매일 아이가 커가는 모습을 보면 기쁘지만 육아 방법을 배운 적이 없기에 걱정되기도 하단다. “책이나 인터넷에서 얻은 정보로만 아이를 키우다 보니 이때 가르쳐야 할 것을 놓치고 있는 건 아닌지 불안하기도 해요. 이 고민은 아빠라서기보다 육아를 하는 모든 부모가 안고 있는 숙제 같아요.”


그는 기자이기에 다른 직업보다 남자의 육아휴직을 좀 더 유연하게 바라봐야 한다고 말한다. “우리 일 자체가 잘못된 점을 지적하고 이를 바로 잡아야 한다고 말하는 것이잖아요. 기사에는 육아휴직 필요하다, 양성평등 해야 한다, 일과 직장의 양립이 보장돼야 한다고 말하면서 정작 기자들은 그러지 못하는 게 문제 아닌가요? 여기자들 휴직이 쉽지 않은 곳도 있는데 회사나 다른 구성원들이 휴직에 대해 불편한 기색을 보이면 언론사·기자로서의 공적 책무, 우리 일 자체를 부정하는 것이죠. 감사하게도 저희 회사 어른들은 이런 부분들을 이해해 주셔서 저는 이렇게 아이를 키우고 있네요.(웃음)”


6개월 뒤 회사에 복귀하는 김 기자에게 기자로서 1년간의 공백은 어떻게 와 닿게 될까. “회사에 돌아갔을 때 그 공백이 크게 느껴진다면 제 역량의 문제겠죠? 육아에 익숙해지니 넉넉하진 않더라도 저만의 시간이 생기더라고요. 이제부터 슬슬 빈자리를 메우기 위한 준비를 시작하려 해요.”



“마법 같은 경험이자 또 다른 도전”
이문석 YTN 기자


“육아휴직을 고민하는 남자 기자들이 있다면 도전하세요. 출근길이 즐겁고 일하는 게 행복한 마법 같은 경험을 할 테니까요.”
이문석 YTN 기자는 요즘 그 어느 때보다 일에 대한 만족도가 높다. 지난해 2월부터 1년간 YTN 남자 기자 중 최초로 육아휴직한 덕분이다. 예전에는 힘겹게 느껴졌던 일이 육아와 비교하면 굉장히 쉽게 느껴진단다.


“아내가 출산한 후 육아휴직하고 복귀할 때쯤 제가 휴직에 들어갔어요. 봐줄 사람이 없기도 했고 말 못하는 아기를 어린이집에 보내기도 조심스러웠죠. 스스로 의사 표현을 할 수 있을 때까지는 부모가 직접 키워야겠다고 생각했어요. 어렸을 때 조카를 돌봐준 경험도 있어서 자신만만했죠. 그런데 그 자신감이 독이 될 줄 몰랐어요. 생각보다 너무 힘들더라고요.”


이 기자는 육아휴직 1년을 인간으로서 존엄성을 상실했던 시간이었다고 말한다. 혼자만의 시간이 없었을 뿐 아니라 아이에게 자신의 모든 것을 맞춰야 했다.


“사실 휴직이 쉼 없이 달려온 인생에 쉼표가 될 줄 알았는데…. 그 꿈은 하루 만에 무너졌어요. 사람마다 다르겠지만 저는 온종일 갓난아기와 함께 있어야 했어요. 씻을 시간, 쉴 시간, 밥 먹을 시간, 화장실 가는 시간도 자유롭지 못했죠. 심지어 아기를 안고 변을 볼 정도였다니까요.(웃음)”


하지만 이런 고생은 딸의 웃음 한 번이면 사르르 녹아버렸다. “존엄성을 잃어가며 힘든 나날을 보냈지만 아빠 품에서 안겨 잠든 모습을 모면 정말 행복하더라고요. 또 딸이 저랑 있을 때 엄마를 찾지 않고 아빠를 1차 양육자로 받아들이는 걸 볼 때 보람 있었어요. 이젠 말도 곧잘 하는데 “아빠 사랑해”라고 얘기해줄 때 육아휴직하길 잘 했다고 느끼죠.”


그는 육아휴직을 하고 나서야 앞서 홀로 아이를 키우며 가벼운 우울증까지 앓았던 아내를 이해하게 됐다. “퇴근 후 집에 와서 아내를 보면 쓸데없이 날카롭다고 생각했죠. 왜 우울해 하는지도 잘 몰랐어요. 막상 제가 육아를 해보니 그 기분을 알겠더라고요. ‘내가 술 마시고 늦게 들어왔을 때 아내는 이런 기분으로 나를 기다렸겠구나’라고 말이죠. 특히 아내가 전업주부인 남자 기자들은 육아휴직 꼭 하세요. 육아는 단순히 도와주는 것과는 큰 차이가 있어요. 직접 해보지 않으면 절대 몰라요.”


이 기자는 육아휴직은 ‘휴직’이 아니라 ‘도전’이라고 말한다. “사실 여자 기자가 육아휴직하는 것도 눈치 보이는데 남자는 오죽하겠어요. 하지만 당시 우선순위를 육아에 두고 나니 주위의 부정적인 것들을 극복하게 되더라고요. 1년간 무척 힘겹기도 했지만 저와 가족들에게 좋은 시간이었어요. 또 육아를 경험한 뒤 업무에 복귀하니 일의 소중함도 깨닫고 있죠. 기자가 열심히 일하니 회사도 좋고, 결국 우리 사회에도 도움 되는 것 아닐까요?”



언론계도 남자 육아휴직자 속속 등장
8월 현재 국민·머니투데이·서울 1명, 한겨레 2명


“육아휴직을 하는 남자 기자가 진짜 있나요?”
모 언론사 A기자에게 ‘주위에 육아휴직한 남자 기자가 있느냐’고 묻자 그는 이렇게 되물었다.


A기자의 반응은 남자의 육아휴직을 바라보는 언론계의 시선을 그대로 보여준다. 몇몇을 제외한 대부분의 언론사는 이에 대해 인색한 분위기다. 기자들은 여기자의 휴직도 눈치를 봐야 하는 상황에서 남자들이 휴직을 택하기란 쉽지 않다고 입을 모은다.


일간지 B기자는 “여기자가 육아휴직을 하는 것도 여의치 않다가 지난해부터 조금씩 휴직계를 내기 시작했다”며 “남자들은 아내 출산 후 3일간의 휴가도 눈치 보며 조심스러워 하는데 육아휴직까지 할 수 있겠느냐”고 반문했다.


또 다른 일간지의 차장급 C기자는 “남자들은 복귀 후 승진에서 밀리지 않을까 하는 걱정 때문에 휴직을 쓸 생각도 못 한다”며 “젊은 남자 기자들이 휴직을 하겠다면 막을 방법은 없지만 아직 자연스럽게 받아줄 분위기는 아닌 것 같다. 아마 우리 회사에서 한동안 남자 휴직자는 나오지 않을 것”이라고 단언했다.


기자협회보가 14개 언론사의 육아휴직 기자 현황을 조사한 결과 8월 현재 남자 육아휴직 기자는 서울신문, 국민일보, 머니투데이 각 1명, 한겨레 2명이고 나머지 언론사는 없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런 분위기에도 언론사마다 ‘최초’의 남자 육아휴직 기자들이 속속 등장하고 있다. 언론계뿐 아니라 전 사회적으로 남자 휴직자는 증가 추세다.


한국고용정보원의 고용보험통계현황을 보면 지난 6월 우리나라 남자 육아휴직자는 2천335명으로 전년 대비 47.5%, 전월 대비 14.3% 증가했다. 같은 기간 전체 육아휴직자 대비 남자 비율은 4.1%에 불과하지만 전년 3.3%, 전월 3.9% 등과 비교하면 꾸준히 증가세를 보이고 있다.


지난 5월부터는 1년이었던 남자 공무원의 육아휴직 기간이 여자 공무원과 같은 3년으로 늘어났다. 삼성전자도 지난달부터 이 기간을 1년에서 2년으로 연장해 남녀 직원 모두 신청할 수 있도록 했다.


일간지 D여기자는 “여기자들이 육아휴직을 당연히 누려야 할 권리라고 인식하기까지 6~7년이나 걸렸다”며 “회사 내에 아직 용기 있는 남자 기자가 나타나진 않았지만, 한두 명씩 생기다 보면 자연스레 남자 기자의 육아휴직 문화도 정착될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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