브라질 중도좌파 정권 위기의 실체

[글로벌 리포트 | 남미]김재순 연합뉴스 상파울루 특파원

▲김재순 연합뉴스 상파울루 특파원

브라질에서 대규모 반정부 시위가 잇따르고 있다. 3월15일과 4월12일에 이어 지난 16일에도 전국의 주요 도시에서 동시에 시위가 벌어졌다. 현지 언론은 240여개 도시에서 크고 작은 시위가 있었다고 전했다.


시위 현장에서는 집권 노동자당에 대한 비판과 정권 퇴진, 지우마 호세프 대통령 탄핵을 요구하는 주장이 터져 나왔다. 브라질에서 가장 성공한 대통령으로 꼽히는 ‘중도좌파의 대부’ 룰라 전 대통령도 비난의 화살을 피해가지 못했다. 중도좌파 정권에 대해 전면적인 거부감을 드러낸 것으로 보인다.


브라질 사상 첫 여성대통령이라는 거창한 수식어 속에 지난 2011년 정권을 출범시켰고, 작년 말 대선에서 승리하며 재선에 성공한 호세프 대통령에 대한 여론의 평가는 참담한 수준이다.


여론조사에서 호세프 정부의 국정 운영에 대한 평가는 긍정 8%, 보통 20%, 부정 71%로 나왔다. 부정적 평가치는 브라질에서 군사독재정권(1964∼1985년)이 종식되고 민주주의가 회복된 이래 역대 정부 가운데 최악이다. 호세프 대통령 탄핵에는 66%가 찬성했고 반대 의견은 28%였다.


호세프 대통령과 현 정부가 맞은 위기를 놓고 다양한 분석이 이뤄지고 있다.
국영에너지회사 페트로브라스를 둘러싸고 정·재계 비리가 잇따라 터져 나오는 상황에서 경기 침체와 물가 상승, 실업 증가로 국민의 불만은 갈수록 커지고 있다. 실질소득 감소로 1인당 소득 1만 달러 붕괴가 점쳐지고, 신용불량자가 전체 노동인구의 3분의 1에 해당하는 5540만 명에 달할 것이라는 우울한 전망도 나왔다. 정부가 추진하는 재정 건전화 조치 관련 법안은 연립정권 내부 분열과 야권의 강력한 공세로 의회에서 발이 묶인 상태다.


호세프 대통령의 소통 노력 부족을 지적하는 견해도 있다. 호세프 대통령에게는 대화 의지가 약하고 경직돼 있으며 유연하지 못하다는 지적이 따른다. 호세프는 정치인 출신이 아니다. 대통령이 되기 전까지 선거에 한번도 출마한 적이 없다. 호세프 대통령이 정치적 협의와 타협에 익숙하지 못한 것은 어쩌면 당연하다.


이런 점에서 위기의 원인을 호세프 대통령 개인보다는 13년째 계속되는 노동자당 정권에 대한 피로감에서 찾는 것이 더 타당할 수 있겠다.


빈곤층·노동운동가 출신의 룰라가 엘리트 기득권층의 높은 벽을 허물고 집권하는 과정에서 국민에게 전한 감동은 이제 거의 남아 있지 않다. 부패·비리 스캔들이 잇따르면서 노동자당 정권이 우파 정권에 대해 갖고 있던 비교우위도 사라졌다.


노동자당도 이런 현실을 인식한 듯 변화 조짐을 보이고 있다. 룰라 전 대통령은 자신의 이름을 따 만든 ‘룰라 연구소’ 주관으로 열린 세미나에서 “노동자당은 늙었으며 혁명적인 변화가 필요한 시점”이라고 말했다. 노동자당이 이상과 목표를 상실한 채 선거 승리와 자리 유지에만 관심을 두면서 호세프 정부의 지지율 추락을 불러왔다는 말도 했다.


룰라의 발언 이후 노동자당이 2016년 지방선거와 2018년 대선을 앞두고 대대적인 정비 작업에 나설 것이라는 관측이 나오고 있다. 정치 전문가들은 좌파 성향의 정당과 사회단체를 아우르는 연합체를 구성해 선거에 임할 가능성이 있다고 본다. 구체적으로 인접국 우루과이의 집권세력인 중도좌파연합 프렌테 암플리오(Frente Amplio)가 모델이 될 수 있다고 말한다. 성향을 같이하는 정당과 사회단체를 하나로 묶어 견고한 집권 기반을 구축하는 전략에 노동자당이 관심을 두고 있다는 의미다.


이번 반정부 시위 규모는 4월보다 많이 축소됐다. 시위의 강도는 한풀 꺾일 것으로 보인다. 호세프 대통령 탄핵 주장이 힘을 받기는 쉽지 않아 보인다. 호세프 정부가 올바른 방향으로 가고 있다고 생각하는 것은 아니지만, 그렇다고 탄핵에 찬성하는 것은 아니라는 정·재계의 분위기도 우호적으로 해석된다.
호세프 대통령과 노동자당 정권이 바닥을 친 여론을 딛고 국정운영의 동력을 회복할 지 주목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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