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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펙’이라는 당근 내걸어 ‘기자’ 아닌 ‘알바’로 부리는 언론사

[창립 51주년 특집]인턴기자들의 하소연

김달아 기자2015.08.19 13:07:04

언론사 실무경험 기회에 재수·삼수 인턴 부지기수
‘교육 제공’ 공고와 달리 단순작업·허드렛일 시켜
최저임금 못미치는 활동비, 또다른 형태의 ‘열정페이’


언론사 입사에 인턴경험이 필수가 됐다는 말이 나온다. 인턴 모집은 이미 신입 공채를 방불케 하는 경쟁률을 보인다. 지망생들은 직무관련 경험과 입사 과정에서 필요한 스펙을 위해 인턴을 택한다. 현재 대부분 언론사는 ‘현장 경험과 교육 제공’을 목적으로 인턴제를 운영하고 있다. 하지만 정작 인턴들 사이에선 체계적인 교육을 받을 수 없을 뿐 아니라 각종 잡무에만 내몰린다는 불만도 터져 나온다. 선배 기자들은 모르는 인턴기자들의 이야기를 들어봤다.



“인턴 안 하면 자소서에 쓸 말 없어”
기자를 지망하는 대학생 A씨는 이번 여름 방학 그토록 원하던 인턴기자가 됐다. 지난해부터 수차례 인턴기자에 지원했지만 번번이 서류나 면접에서 낙방한 뒤였다. A씨가 처음 인턴을 지원했던 이유는 기자라는 일이 적성에 맞는지 확인해보고 싶어서였다. 하지만 계속 떨어지자 불안감이 커졌다.


“주위 언론고시 준비생 중 인턴을 안 해본 사람이 없어요. 심지어 인턴 면접에서 만난 사람 중에는 이미 인턴을 1~2차례 경험한 분도 있었고요. 인턴 면접에서도 이전에 했던 인턴활동에 관해 물어보기도 하더라니까요. 언론사 최종 면접에 올라온 사람들 중 대부분이 인턴했던 적이 있다고 하더라고요. 다른 사람들은 다 하는데 자꾸 떨어지니까 불안했죠. 인턴이 모든 사람에게 필요한 것은 아니지만 저처럼 눈에 띄는 활동이 없는 사람들에게는 필수예요. 워낙 스펙 좋은 지원자가 많으니까 저는 인턴이라도 안 하면 자기소개서에 쓸 말이 없어요.”


사회 전반적인 채용 추세가 직무연관 경험을 강조하는 것이다 보니 지망생들에게 인턴기자는 실무경험을 쌓을 수 있는 최적의 기회다. 이력서와 자기소개서, 실무평가, 면접 등 채용 전 과정에서 실무경험은 이점이 될 수 있다. 지망생들이 인턴 모집에 몰려드는 이유다.

차라리 사무직 아르바이트였다면
이처럼 치열한 경쟁을 뚫고 인턴기자가 된 B씨는 막상 합격하고 보니 당초 기대했던 인턴생활과 달라 크게 실망했다. ‘현장 경험과 교육’을 제공하겠다는 채용 공고와는 달리 그가 맡은 것은 말 그대로 허드렛일이었다. 선배 기자들이 녹취한 인터뷰를 문서로 풀어내거나 사진·동영상을 찾는 일이 반복됐다. 그마저도 일이 없을 땐 우두커니 앉아만 있을 때도 있었다. 대체로 기사에 쓰일 사례를 찾거나 종종 선배를 따라 나가 인터뷰를 따오는 게 그가 맡은 일의 전부였다.


“차라리 사무직 아르바이트로 뽑혔다면 이렇게 실망하진 않았을 거예요. 이럴 거면 왜 인턴기자로 뽑았죠? 인턴이지만 ‘기자’니까 현장 경험 쌓고 더 많이 배우고 싶어서 지원한 건데 잡일만 하게 될 줄은 몰랐어요. 물론 부서마다 인턴기자들이 하는 일이 달라요. 하지만 저처럼 내근하는 경우가 대부분이에요. 분명히 인턴 모집공고에는 교육을 제공한다고 돼 있는데 기사 쓰기, 취재 방법 등 제대로 된 교육을 받은 적은 단 한 번도 없어요. 인턴 관리체계가 없는 것 같아요. 선배들도 우리한테 어떤 일을 시켜야 할지 잘 모르는 것 같고요. 당장 잡일을 할 사람이 부족하니까 인턴기자라는 이름으로 무작정 저희를 뽑은 것 아닌가요?”

온종일 사무실 앉아 기사 어뷰징
언론사가 어뷰징이나 실시간 이슈 담당 인력을 인턴기자로 채용하는 것도 문제라는 지적이 나온다.
해당 업무를 맡았던 인턴기자 C씨는 “실제 취재한 적은 단 한 번도 없고 온종일 사무실에 앉아 베껴 쓰기 기사만 썼다. 클릭수 때문에 자극적인 키워드를 기사에 넣을 때마다 죄책감이 들기도 했다. 기사 맨 마지막엔 네티즌들의 의견을 넣는 것이 나름의 공식이었다. 하지만 의미 있는 내용보다 검색이 잘되는 단어를 조합해 넣는 경우가 대부분이었다. 그래도 기자니까 작은 경험이라도 쌓을 수 있을 줄 알았는데 바이라인도 나가지 않을 뿐 아니라 오히려 경력에 마이너스만 될 것 같아 두 달 만에 그만뒀다”고 말했다.


한 언론사 인사팀 관계자는 “어뷰징은 단순한 아르바이트 수준의 업무인데 인턴기자라는 이름으로 채용공고를 내걸면 지원율이 올라가는 데다 더 좋은 역량을 가진 친구들이 지원한다”며 “아르바이트보다는 인턴이 스펙 개념이기 때문에 이력서에 한 줄이라도 더 넣으려는 지원자가 몰리기 때문”이라고 귀띔했다.

“인건비 아끼기 위해 인턴제 악용”
인턴기자들의 업무환경이나 임금은 언론사마다 큰 차이를 보인다. 앞서 B씨 등이 몸담았던 언론사와 달리 채용을 전제로 인턴기자제를 운영하는 있는 곳도 있다. 조선일보·동아일보 등은 여름방학 두 달간 활동한 인턴 중 일부를 필기시험·활동평가·면접 등을 거쳐 신입 기자로 채용한다. 조선일보는 인턴기자에게 일정한 출퇴근 시간을 보장하고 매달 최저임금 이상의 임금과 통신비를 지원한다. 인턴기자들이 쓴 기사나 논술을 논설위원이 첨삭해주기도 한다. 또 오마이뉴스 등은 오랫동안 정기적으로 인턴기자제를 실시해 온 덕에 교육을 중심으로 체계적으로 운영된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하지만 몇몇 언론사를 제외하고는 인턴기자들의 처우는 열악하다. 임금이 아니라 ‘활동비’ 명목으로 급여가 지급돼 최저임금에 미치지 못하는 경우도 허다하다. 대부분 야근수당 등 초과근무수당도 없다. 주말이나 정해진 시간 외 각종 행사에 동원돼 언론사 업무와 상관없는 일을 하기도 한다.


모 언론사 인사 관계자는 “인턴이기 때문에 경험과 교육을 제공한다는 이유로 아르바이트보다도 못한 임금을 주는 곳이 많다”며 “인건비를 아끼기 위해 인턴제도를 악용하는 것이다. 전형적인 열정페이”라고 지적했다.


인턴기자 D씨는 제대로 된 임금을 받지 못하는 것에 대해 답답함을 토로했다. “인턴을 하면서 예비 기자로서 배우는 것이 많다면 이보다 더 적은 임금을 받더라도 이해할 수 있을 것 같아요. 하지만 매일 12시간 이상 선배들 뒤치다꺼리만 하다 보니 억울하기도 해요. 지금 저는 교육받는 게 아니라 일하고 있는 건데 왜 임금이 아니라 활동비 혹은 지원비를 받아야 하는 거죠? 매일 야근하지만 추가근무수당은 바라지도 않아요. 최저임금이라도 받았으면 좋겠어요. 거창한 교육 프로그램은 아니어도 작은 과제를 내주시고 부족한 부분이 있으면 오히려 혼내주셨으면 좋겠어요. 선배들은 우리를 방학 때만 잠깐 있다 가는 손님이라고 생각하겠죠. 하지만 저에게 선배들은 말 그대로 처음 만나는 기자 선배라서 특별해요. 그래서 뭔가 더 배우고 싶다는 생각이 드는 거고요. 친구가 인턴기자로 있는 다른 언론사는 인턴이 발제하고 그게 바로 기사화된다고 하더라고요. 선배 따라 늘 출입처에 가 있기도 한다던데요. 그 과정에서 많이 배울 수 있을 것 같아서 다음 방학 땐 그 회사 인턴에 지원하고 싶어요.”

“인턴 채용 꼼수…언론계 돌아봐야”
인턴기자들은 이런 환경·처우를 알고도 또다시 인턴 모집에 지원자들이 몰려들 것이라고 입을 모은다. 인턴 경험이 언론사 입사에 유리하게 작용할 것이라는 인식이 널리 퍼진 탓이다.


인턴기자를 경험한 E씨는 “지망생들은 인턴 경험을 원하고 언론사는 인턴제를 이용해 값싼 노동력을 얻을 수 있으니 아귀가 맞는 것이다. 인턴기자들은 이런 처우가 불합리하다고 느끼지만 문제를 제기하지 못한다. 언론사들은 경험 제공·교육 목적으로 인턴기자를 뽑았다면 그에 맞는 체계적인 교육을 해야 한다. 내부적으로 구체적인 인턴기자 활용방안을 매뉴얼로 만드는 것도 좋을 것 같다. 그래야만 지금 받는 임금에 고개를 끄덕일 수 있을 것이다. 그렇지 않다면 임금을 최저임금 수준이라도 올려야 한다”고 주장했다.


인턴기자 F씨는 “언론사들이 열정페이·비정규직·청년실업 문제가 심각하다고 지적하는데 그럴 자격이 있는지 의문”이라며 “명함에는 분명 ‘인턴기자’라고 쓰여 있는데 진짜 내가 인턴인지 아르바이트생인지 교육생인지 직원인지 헷갈린다”고 말했다.


언론계 관계자는 “인턴은 현장실습생이라 교육에 중점을 둬야 하는데 저임금을 주고 기자들이 하기 번거로운 잡일을 시키는 경우가 많다”며 “내·외부적으로는 인턴이라 부르지만 행정적으로는 교육생으로 규정해 최저임금을 지급하지 않거나 수당을 주지 않는 등 꼼수를 부리고 있다. 우리 언론계 스스로 돌아봐야 할 일”이라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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