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술에 빠진 시니어 기자, 예술분야 소통 역할 톡톡"

편완식 세계일보 미술전문기자

  • 페이스북
  • 트위치

▲편완식 세계일보 미술전문기자

미술을 좋아했던 소년은 미술을 업으로 삼으리라 생각하지 못했다. 학창시절 담임선생님의 권유로 미술대회에 나가 곧잘 상을 타오곤 했지만, 화가가 될 마음은 없었다. 대학에서 철학을 전공하고 기자가 된 후에도 마찬가지였다. 그러나 그는 결국 미술을 업으로 삼는 ‘미술전문 기자’가 됐다.


“문화부에 발령받은 뒤 여러 분야를 취재하다 미술을 맡게 됐어요. 운이 좋았죠. 평소 관심 있던 중국미술을 더 자세히 보기 위해 베이징대에 1년간 연구학자로 가 있기도 했어요. 미술전문기자로 자리잡게 된 건 아프리카 미술 취재가 결정적이었죠.”


편완식 세계일보 기자가 아프리카 미술 취재에 나선 것은 ‘서구 일변도’인 한국 미술계를 환기하기 위해서였다. 다양한 지역의 미술을 접하는 것이 한국 미술에 자양분이 될 수 있다고 믿었다. “한 달간 케냐, 탄자니아 등 여러 지역을 다니며 미술로써 아프리카를 바라봤어요. 피카소의 창작 DNA도 아프리카 원시미술에서 찾을 수 있죠. 이 취재를 계기로 미술에 더 빠져들었어요.”


미술기자로 전문성을 인정받은 그는 현재 미술 관련 기사뿐 아니라 ‘편완식의 미술살롱’, ‘편완식이 만난 사람’ 등을 연재하고 있다. 편 기자는 우리 미술·문화토양을 키우기 위해 기자들의 역할이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우리 민족은 뛰어난 문화소화력을 가지고 있었어요. 조선시대, 주자성리학을 받아들여 조선성리학으로 발전시켰고 겸재 정선으로 대표되는 진경산수라는 우리의 미술을 만들었죠. 당시엔 문화 생산자와 소비자가 소통하는 문화담론이 형성돼 있었어요. 그러나 일제강점기를 거치면서 우리 스스로 문화를 소화할 수 있는 토양이 사라졌어요. 이를 복원하기 위해서는 예술·문화전문 기자가 필요해요. 예술 창작자와 평론가, 소비자를 한데 묶는 소통의 중요한 매개체가 바로 기자입니다.”


하지만 편 기자는 문화·예술전문기자를 양성하지 못하는 우리 언론의 현실을 안타까워했다. “미술기자들은 미술을 알만하면 다른 부서로 배치받고, 미술계 인사들은 기자들과 깊이 있는 대화를 나누지 못한다고 불평해요. 언론사가 문화·예술이라는 큰 틀에서 기자들을 바라봐야 하는데 단순히 일의 영역, 경제 논리로만 대하기 때문이에요. 미술계의 풍부한 자원과 다양성을 조명해야 하지만 상업적 갤러리에 휘둘리거나 주어진 한계 속에서만 취재하는 기자들이 많아요. 그렇게 되면 기자는 담론을 형성하는 한 축으로 성장할 수 없죠. 언론사가 문화 분야에서만큼은 기자들에게 전문성을 부여해야 해요.”


세계일보 공채 1기인 편 기자는 1989년에 입사한 뒤 지금도 현장에서 활약하고 있다. 그는 시니어 기자들의 노하우가 콘텐츠 차별화에 시너지를 발휘할 것이라고 확신했다. “수평적 의사소통 환경을 조성한 뒤 시니어 기자들에게 자율성을 주면 더 좋은 콘텐츠가 나올 수 있죠. 대신 결과물에 대한 평가를 철저하게 내리면 돼요. 나이 들어 현장을 누비는 것이 측은한 게 아니라 멋있다는 시각으로 바라볼 수 있어야 해요.”


십여 년 동안 미술을 담당했지만 아직도 취재하고 싶은 것이 많다는 그. “아프리카 미술 보완 취재와 북한, 중국, 동남아, 중남미 미술 등 궁금한 것들이 많아요. 진부한 얘기지만 죽는 날까지 현장에 있다면 정말 행복할 것 같네요.(웃음)”   



김달아 기자의 전체기사 보기

배너

많이 읽은 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