쪽잠 자며 버티지만 정작 기사 쓰는 법 몰라

[기자교육, 이대로 좋은가] ①수십년째 경찰서 수습교육
사건기사만 배워…선임도 교육 소홀
턱없이 낮은 급여 주며 열정페이 강요
교육 프로그램 혁신적으로 바꿔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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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약 다른 회사에서 이런 수습교육이 이뤄졌다면 바로 기사가 됐을 겁니다. 상식적이지 않거든요. 그런데 언론사들끼리는 묵인하며 카르텔을 형성하고 있는 셈입니다.”


한 종합일간지 A기자는 언론사에서 이뤄지는 수습교육은 “말이 안 되는 교육 방식”이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교육 기간 내내 인간으로서 누릴 기본적인 욕구마저 박탈당하고, 그에 합당한 대우도 받지 못한다는 것이다.


언론사의 수습기자 교육은 보통 부서별 순회교육과 경찰서 순회(일명 사쓰마와리) 교육으로 진행된다. 부서별 순회교육은 각 부서에 대한 이해를 높이기 위해 사회부를 제외한 경제부, 문화부, 스포츠부, 국제부, 사진부 등을 도는 형식으로 이뤄진다. 그러나 대부분 ‘견학’ 수준에 그친다. 수습 기간의 대부분은 경찰서 순회 교육이 차지한다. 종합일간지 B기자는 “경찰서 도는 것만이 거의 유일한 교육”이라며 “다른 교육은 하나마나한 수준”이라고 말했다.


경찰서를 도는 기간 동안 수습기자들은 각자 라인을 부여받아 1진 기자에게 일대일 교육을 받는다. 이들은 1진 기자에게 상황을 보고하고 지시를 받으며 현장취재를 다닌다. 이러한 교육 체계는 지난 수십 년간 유지됐는데, 그 방식은 매우 획일적이고 강압적이다. 종합일간지 C기자는 “다양한 취재방법이 있는데 수습 기간 내내 전혀 접하질 못했다”며 “기자마다 스타일이 다른데 오로지 기본만 배웠다. 회사가 원하는 기자상이 하나인 것 같다”고 비판했다.


▲수습기자들은 경찰서 순회 교육 기간 동안 난민촌 수준의 기자실에서 2~3시간 쪽잠을 자며 일한다. 사진은 열악하다고 소문이 자자한 서대문경찰서 기자실. 원룸크기도 안 되는 이 방에서 많게는 5~6명이 잔다.

경찰서 순회 교육이 기사 작성 능력 함양에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지적도 있다. 육하원칙에 따른 스트레이트형 사건 기사에만 익숙해진 탓에 내러티브 등 다른 형식의 기사에 도전할 엄두를 내지 못한다는 것이다. 특히 수습기간이 끝난 후 사회부가 아닌 다른 부서에 파견된 기자들의 고충은 더욱 크다. 통신사 D기자는 “사건기사는 기본적인 형식이 있으니 어느 정도 쓰는 것이 가능했지만 그 이상의 것들을 잘 할 수가 없었다”며 “특히 경제부 등 타 부서에 간 동기들이 적응하는 데 많은 어려움을 겪었다”고 전했다.


수습기자를 교육하는 1진 기자들도 한계에 직면하기는 마찬가지다. 교육을 전문적으로 담당하는 인력이 없는 탓에 업무 외에 별도의 시간을 내 수습기자들을 교육시켜야 하기 때문이다. 종합일간지 E기자는 “수습이 들어올 때 ‘이제 너희도 보고 받으려면 늦게 자야 한다. 일이 늘어날 거다’라는 말을 들었다. 따지고 보면 1진 기자들의 노동권 침해”라며 “솔직히 일에 치일 때는 교육에 소홀할 수밖에 없었다. 뭘 가르칠지도 난감하고 애매했다”고 토로했다.


일각에서는 이런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일정 연차 이상의 고참급 선배들이 수습기자의 글쓰기 교육에 참여해야 한다고 말한다. 종합일간지 F기자는 “지금처럼 전적으로 사회부, 그 중에서도 경찰팀이 수습교육을 맡는 방식에서는 질적인 업그레이드가 쉽지 않다”며 “연차별·분야별 선배기자들이 고르게 참여하는 프로그램을 적극적으로 검토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아예 경찰서 순회 교육 시스템에서 벗어나야 한다는 주장도 있다. E기자는 “요즘에 누가 경찰기사를 보나. 범죄 수법이 재미있는 사건을 가져와도 ‘옛날에는 면 톱인데 요즘에는 4~5매 감’이라고 내부적으로 얘기한다”면서 “언론 환경은 날이 갈수록 변화하고 있는데 아직도 경찰을 주요 취재원으로 강조하는 건 시대에 뒤떨어지는 일이다. 경찰 외에 세상에 다양한 주체들이 있는데 그들을 취재하는 경험을 쌓아야 한다”고 조언했다.


수습교육 방식뿐만 아니라 가혹한 수습교육 과정도 지적의 대상이 되고 있다. 3~4개월 간 난민촌 수준의 수습기자실에서 하루 2~3시간 쪽잠을 자며 일해야 하는 수습기자들이 만성적인 수면 부족에 시달리고 있기 때문이다. A기자는 “잠이 부족한 상태에서 신호등에 빨간불이 켜진 것을 인지하지 못하고 횡단보도를 건너다 자동차 경적소리에 놀라 잠에서 깬 적이 있다”며 “재난현장 같은 긴박한 곳에서의 취재를 대비하기 위해 강도 높은 훈련을 시키는 것은 이해하지만, 굳이 3~4달 씩 잠을 안 재울 필요가 있나 싶다. 회사가 조금이라도 수습기자의 건강을 배려했으면 한다”고 말했다. 통신사 G기자도 “경찰서 순회 교육이 도움이 안 됐던 것은 아니다. 그러나 정확히 말해 근로기준법 위반”이라면서 “최소한 저녁이 있는 삶을 보장해줬으면 좋겠다. 수습도 짐승이 아닌 인간”이라고 말했다.


수습기자란 이유로 ‘열정페이’를 강요당하는 것도 문제로 지적되고 있다. 극소수의 메이저 언론사 수습기자들은 야근수당과 택시카드를 별도로 지급받지만 대부분의 수습기자들에게 이는 먼 나라 이야기다. 수습기자의 대부분은 기본급의 60~80% 정도만을 지급받고, 택시비와 식비는 알아서 해결한다. A기자는 “한 달에 약 140만원을 받았는데 택시비가 200만원이 나왔다. 식비까지 해결하려니 마이너스 인생이었다”며 “기본적인 상식에 부합하게끔 처우를 개선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박재영 고려대 미디어학부 교수는 “수습이라는 제도의 취지는 교육인데, 수습기자가 배우는 것은 좋게 말해 정신력, 끈기, 저돌성, 전투력 밖에 없다. 이런 것은 기자에게 필요한 요소 중 하나일 뿐인데도 그게 전부인 양 미덕으로 간주되고, 그에 대한 무용담이 긍정적으로 회자되면서 어느덧 교육은 잊혔다”며 “한마디로 현재 수습기자 제도에 ‘교육’은 없다. 언론사 스스로 문제의식을 갖고 수습기자 교육을 혁신적으로 바꿔야 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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