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심위, 인터넷 게시글 무차별 심의 시도

제3자 신청할 수 있도록 규정 개정
조사권 없어 명예훼손 판단 어려워
대통령·국가 비판 사전 검열 의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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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송통신심의위원회(이하 방심위)가 인터넷 게시글에 대해 피해 당사자가 아닌 제3자가 명예훼손 심의를 신청할 수 있도록 규정 개정에 나서면서 논란이 일고 있다. 방심위가 인터넷 게시글을 명예훼손이라는 이유로 사전 검열해 대통령과 정부에 대한 비판을 차단하려는 의도가 있는 것 아니냐는 지적이 나온다.


방심위는 지난 9일 전체회의를 열고 ‘정보통신에 관한 심의규정 일부개정규칙안 입법예고(안)’을 보고받았다. ‘정보통신에 관한 심의 규정’ 중 “명예훼손 등 타인의 권리 침해와 관련된 정보는 당사자 또는 그 대리인이 심의를 신청하여야 한다”는 제10조 2항의 개정이 골자다. 통신심의국은 세 가지 안을 제시했지만 ‘당사자 또는 그 대리인’으로 한정돼 있는 심의요청의 범위를 제3자까지 넓혀 ‘친고죄(親告罪)’를 ‘반의사불벌죄(反意思不罰罪)’로 만들겠다는 노선은 분명히 했다.


‘친고죄’의 경우 피해 당사자의 신고에 의해서만 공소를 제기할 수 있지만 ‘반의사불벌죄’는 피해 당사자가 원치 않는다는 의사표시를 하면 처벌할 수 없도록 한다는 의미다. 인터넷 게시글의 명예훼손 여부에 ‘반의사불벌죄’를 적용하면 제3자가 타인의 심의를 신청할 수 있게 된다. 방심위 자체 판단으로 심의에 착수할 수도 있다. 또 방심위 심의 결과 명예훼손으로 결론날 경우 당사자가 반대 의사만 드러내지 않으면 인터넷 게시물을 접속을 차단하거나 삭제 조치까지 취할 수 있게 된다.


▲박효종 방송통신심의위원회 위원장이 지난 6일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미래창조과학방송통신위원회 전체회의에서 의원들의 질의에 답하고 있다. (뉴스1)

방심위는 주요 개정논리로 심의규정을 상위법(정보통신망법)과 균형을 맞춘다는 이유를 들고 있다. 지난해 10월 국정감사에서 민병주 새누리당 의원이 “심의규정을 상위법에 맞춰야 한다”고 지적했기 때문에 개정을 검토하게 됐다는 것이다. 현행 정보통신망법과 형법은 명예훼손을 ‘반의사불벌죄’로 규정하고 있다.


이날 회의에서 야당 추천 심의위원들은 방심위의 이 같은 움직임에 “충분한 의견 수렴을 거쳐 신중하게 추진해야 한다”며 안건 보고 자체를 반대했다. 일부 위원은 여당 추천 심의위원들의 입안예고 강행에 퇴장하기까지 했다. 이들은 사전 논의 및 국민의견 수렴이 불충분했고, 고위공직자 등 특정인물군에 유리하게 작용될 수 있으며, 법리해석 논의가 불충분했다는 이유를 개정 반대의 근거로 들었다.


장낙인 상임위원은 “형법상 반의사불벌죄인 명예훼손죄를 제3자가 고발한 경우 경찰이나 검찰은 수사권이 있어서 조사를 통해 명예훼손 여부를 분별해 기소를 결정하지만 방심위는 수사, 조사권이 없다”며 “개정으로 얼마나 많은 심의요청이 들어올지 모르고 수백 수천 건을 일일이 확인하는 작업을 거쳐야 하는데 행정력 낭비가 눈에 빤히 보이는 상황”이라고 말했다. 제3자로부터 관련 민원이 제기됐을 때, 조사권이 없는 방심위는 명예훼손 여부를 판단하기 어렵고, 이에 따라 해당 게시물을 숙고없이 삭제하는 등의 조치가 빈번하게 취해질 수 있다는 지적이다.


윤훈열 상임위원은 “명예훼손 관련 반의사불벌죄로 개정했을 때 혜택받는 사람은 까놓고 이야기해 여야 몇몇 정치인과 종교인, 연예인 아니겠느냐”면서 “의견수렴을 제대로 하지 않은 상황에서 일방적으로 바꾸는 건 방심위 위상뿐 아니라 국민의 알 권리를 훼손할 수 있다”고 우려했다.


참여연대, 민주언론시민연합, 언론개혁시민연대 등 시민사회단체도 20일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방송통신위원회 명예훼손 제3자 요청 삭제, 누구를 위해서인가?’ 토론회를 개최하는 등 이를 비판하고 나섰다. 이들 단체는 앞서 지난 9일 공동성명을 통해 “방심위가 착수한 개정시도는 인터넷상의 국민의 비판을 차단하겠다는 의도”라며 “심의 규정 개정 시도는 즉각 중단되어야 한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지난해 10월 ‘대통령에 대한 모독이 도를 넘고 있다’는 박 대통령의 발언 후 검찰이 인터넷상 명예훼손에 대해 선제적 대응을 하려다 물러선 바 있다”며 “방심위가 시정요구 제도를 통해 검찰이 못한 선제적 대응을 대신하여 대통령이나 국가에 대한 비판을 위축시키고자 하는 것이 이번 심의규정 개정의 목적이 아닌지 의심스럽다”고 덧붙였다.


방심위 통신심의기획팀 한명호 팀장은 “상위법과 균형을 맞춰야 한다는 법리상의 문제로 개정을 추진하게 됐을 뿐 정치적인 의도를 갖고 추진하는 게 아니다”라며 “많은 지적이 잇따라 공청회 등 충분한 의견 수렴과정을 거쳐 추진할 예정”이라고 했다. 하지만 여당 추천 심의위원들이 다수인만큼 이들이 입장을 바꾸지 않는다면 일정만 늦춰질 뿐 당초 방향대로 개정이 추진될 가능성이 높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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