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혹 덮고 무분별 폭로라며 국정원 두둔하는 일부 언론

7월 9~20일 9개 일간신문 분석
평균 21.8건…한겨레 48건 최다
지상파, 여야 공방 프레임 부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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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킹 프로그램 구입에 관여한 국가정보원 직원이 스스로 목숨을 끊고 직원 일동이 성명서라는 형식으로 초유의 집단행동에 나서면서 국정원 해킹 의혹이 일파만파로 번지고 있다. 국내 주요 언론은 국정원 해킹 의혹을 주요하게 다루면서도 보도량과 논조에 큰 차이를 보였다. 보수언론은 ‘여야 정쟁’과 ‘음모론’ 등에 무게를 싣고 있는 반면 진보언론들 위주로 새로운 의혹 제기가 이어졌다.


국정원 해킹 의혹과 관련해 종합일간지에서 첫 보도가 나온 날인 지난 9일부터 20일까지 관련 기사를 종합한 결과(지면 기준) 국내 9개 조간신문에서 매체 당 평균 21.8건의 기사(사설 2.7건)가 보도됐다. 한겨레가 48건(사설 4건)을 보도해 압도적으로 많았고, 경향신문이 33건(사설 4건)으로 뒤를 이었다. 한국일보가 23건(사설 3건), 세계일보가 19건(사설 2건), 동아일보와 국민일보가 17건(사설은 각각 3건, 2건)을 보도했다. 조선일보는 16건(사설 2건), 서울신문은 12건(사설 2건)을 보도했고 중앙일보가 11건(사설 2건)을 보도해 가장 적었다.


지난 11일 조선은 10면 ‘伊 해킹 프로그램 업체 고객 명단 유출 ‘서울 서초구 5163부대, 8억원어치 구매’’에서 관련 의혹을 처음 보도하면서 사이버 테러 전문가들의 말을 인용, “세계 모든 정보기관이 첨단 해킹 프로그램을 구하려고 노력한다… 우리 정보기관도 비슷한 상황이었을 것”이라고 전했다. 같은 날 한겨레가 이탈리아 해킹팀에서 유출된 자료를 분석해 “국정원이 컴퓨터와 스마트폰을 해킹해 실시간으로 도·감청할 수 있는 프로그램을 대선이 있던 해인 2012년에 구입했다는 의혹이 강하게 제기되고 있다”고 전한 것과 대조적이었다.


▲국내 주요 언론은 국정원 해킹 의혹을 주요하게 다루면서도 보도량과 논조에 큰 차이를 보였다. (위쪽부터 시계방향으로) 한겨레(13일), 조선일보(21일), JTBC(20일), MBC(20일) 보도.

이병호 국정원장이 국회 정보위원회에 출석한 다음날인 15일, 처음으로 모든 조간신문이 국정원 해킹 의혹을 다뤘다. 보도량에는 다소 차이가 보였지만 확실한 진상규명이 필요하다는 데 한목소리를 냈다. 동아는 “국정원이 휴대전화와 카카오톡 문자 등을 불법 감청했거나 해킹을 했다면 심각한 사안이 아닐 수 없다”고 했고, 경향은 “국정원의 거짓과 불법 행위에 대한 국민적 불신 때문에 ‘대북정보전 용도’라는 국정원의 해명을 곧이곧대로 납득할 국민은 많지 않을 것”이라고 지적했다.


이후 일부 언론을 제외하곤 여야의 주장을 나란히 보도하거나 새로운 팩트를 찾는 데 소극적인 모습을 보였다. 사설에서 극명히 논조가 갈리기 시작한 것은 지난 18일부터였다. 조선은 “지금 단계에선 이를(민간인 사찰) 뒷받침할 어떤 객관적 증거나 단서도 확인된 게 없다”며 “정보기관의 활동을 위축시킬 수 있는 무분별한 폭로나 섣부른 의혹 제기는 삼가야 한다”고 주장했다. 반면 한겨레는 김무성 새누리당 대표가 “국가 안위에 대해서 해킹할 필요가 있으면 해야 하는 것 아닌가”라고 발언한 것을 두고 “새누리당의 ‘국정원 변호인’ 역할은 도를 넘었다”고 비판했다.


국정원 직원이 18일 스스로 목숨을 끊은 이후 보도량은 급증했고 “임씨의 자살은 국정원이 뭔가 불법행위를 했을 거라는 의혹과 자연스럽게 연결된다”(한겨레)는 분석과 “국정원 민간 사찰을 기정사실화한 정치적 논란이 임씨를 죽음으로 몰아간 측면도 없지 않다”(동아)는 해석이 맞섰다. 특히 조선은 “외국의 수많은 정보기관이 같은 프로그램을 구입했는데 오직 한국에서만 이 난리”라고도 했다. 경향은 21일 국정원이 ‘국정원 직원 일동’ 명의의 보도자료를 낸 데 대해 “국정원은 상명하복의 위계질서가 뚜렷한 조직”이라며 “수뇌부가 ‘지시’했거나 최소한 ‘승인’했을 게 분명하다… 성명서는 국정원 개혁이 왜 절실한지 다시금 일깨워주기에 충분하다”고 지적했다.


한편 지상파방송은 국정원 해킹 의혹을 ‘애써 외면’하려는 듯한 태도를 보이고 있다며 비판받았다. 최민희 새정치민주연합 의원은 “민주주의 근간을 흔들고 국민의 기본권을 근본부터 위협하는 이 중대한 사안에서 우리의 공영방송 KBS, MBC는 어디에 있는가”라고 일갈했다. 지상파 3사는 단독보도는 차치하고 여야 주장과 국정원 입장을 전하는 수준에서 더 나아가지 못했다. 첫 보도도 의혹이 한창 번진 후인 14일부터 시작됐다. 지난 10일부터 20일까지 SBS는 8건, KBS는 9건, MBC는 12건을 보도했는데, 이는 총 57건을 보도한 JTBC를 크게 밑도는 수치(메인뉴스 기준)다.


민주언론시민연합도 “언론이라면 마땅히 제기해야 할 의제인 국가비밀정보기관에 의한 전방위적 국민사찰 의혹이 근거 있게 제기되고 있는, 이런 참담한 언론 상황을 목도하고서도 마치 꿀 먹은 벙어리마냥 입을 닫고 있는 그대들에게 ‘당신들이 정녕 언론기관이냐’고 많은 국민들이 준엄하게 묻고 있다”고 논평했다.


특히 지난 20일 KBS는 자살한 국정원 직원 임모씨의 유서가 추가로 공개됐다며 경찰의 발표를 그대로 전했다. MBC도 “국정원의 대응 방식이 과거와는 달리 신속, 적극적”이라며 국정원 관계자의 발언을 인용해 “불법적인 민간인 사찰은 없었다는 자신감의 표현”이라고 보도했다. 반면 JTBC는 임씨의 유서 내용에 의문부호를 붙였다. JTBC는 “‘정말 내국인에 대한 사찰은 없었습니다’ ‘자료를 삭제하였습니다’ ‘실수였습니다’ ‘죄송할 따름입니다’라는 문장들은 누군가의 추궁에 대한 답변서 같은 내용”이라며 “임 씨가 스스로 목숨을 끊기 바로 전날인 지난 17일 국정원 조사를 받았다… 조사가 시작되자 압박 때문에 스스로 목숨을 끊은 게 아니냐는 추론도 가능한 대목”이라고 보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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