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기발령·권고사직…뉴스룸에서 내몰리는 고참 기자들

17개 언론사 40~50대 평균 51%
뉴스룸 고령화 전 언론사 문제
취재 역량 발휘할 기회 주고
고참 기자 스스로도 변화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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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론사의 소중한 취재자산인 고참 기자들이 취재 역량을 발휘할 기회를 얻지 못하고 대기발령이나 희망퇴직, 권고사직 대상으로 전락하고 있다.


동아일보의 ‘6개월 무보직 대기발령’은 고참 기자를 바라보는 언론사의 극단적인 시선이다. 대기발령을 받은 기자 4명 중 3명은 50대였다. 사실상 회사를 그만두라는 의미의 부당인사는 결국 비극적인 사태를 낳았다. 대기발령을 받은 한 기자는 “온갖 추측성 얘기가 오가고 있는데 그 중에는 소위 ‘고임금 기자들’ 솎아내기의 신호탄이란 얘기도 나오고 있다”고 했다.


최근 희망퇴직을 실시한 연합뉴스에서는 50대 기자 2명과 40대 후반 기자 1명이 퇴직을 신청했다. 연합뉴스 내부에서는 사측이 당초 10여명 정도의 인원을 생각한 만큼 1987년 입사자인 6기 이하를 대상으로 권고사직을 추진한다는 얘기가 돌고 있다. 연합뉴스 한 고참 기자는 “그런 대상으로 오르내리는 것 자체가 참담하다”고 말했다. YTN도 지난해 2014년 기준으로 정년이 최대 15년까지 남은 직원을 대상으로 희망퇴직을 실시했다.


뉴스룸 고령화는 대부분 언론사들이 안고 있는 현안이다. 기자협회보가 신문, 방송, 통신사 17곳의 기자직 연령대별 분포 실태(20대, 30대, 40대, 50대 이상)를 조사한 결과 50대 이상 기자가 차지하는 비율은 평균 21.2% 수준이었으며 심한 곳은 30%를 웃돌았다. 40~50대 기자가 차지하는 비율은 평균 51.1%였으며 60~80%를 차지하는 곳들도 있었다.



내년부터 정년이 연장되면 역피라미드 인력 구조는 심화될 것으로 보인다. 비용을 이유로 정리하고 보자는 몰상식적 접근에서 벗어나 고참 기자들의 능력과 노하우, 네트워크를 활용하는 방안을 찾아야 한다는 지적이 나오는 이유다.


물론 고참 기자들에 대한 편견과 부정적인 인식도 적잖다. 지난해 10월 한 종합일간지 노조가 직원들을 상대로 실시한 설문조사에서는 “고인 물이 너무 많다” “남아서 기여할 부분을 생각하면 득이 별로 없다” “열심히 일하지 않는 나이 든 고연봉자 대신 온라인 뉴스 하나라도 더 생산할 젊은 사원 늘리는 것이 중요하다” 등의 이유로 정년 연장을 반대하는 기자들이 상당수 있었다. 고임금에 자리만 차지하고 있다는 따가운 시선과 함께 세대갈등 조짐을 보이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고참 기자들이 제대로 활약하지 못하는 데에는 언론사의 구조적인 문제가 자리하고 있다. 수직적이고 폐쇄적인 내부 문화와 출입처 중심의 언론사 구조, 단계적 승진제도로 인해 부장이나 국장을 맡고 나면 활기차게 일을 하지 않게 되는 ‘말년 고참 병장문화’가 만연해 있기 때문이다.


이런 문화는 고참 기자가 출입처에서 원활하게 취재활동을 하는 데 사회적, 문화적 장벽으로 존재한다. 또 선임기자, 전문기자 제도가 제대로 뿌리 내리지 못하는 데도 일조한다. 성한용 한겨레 정치부 선임기자는 “선임기자제도가 잘 정착되기 위해서는 선후배 간 관료적이지 않고 위계질서를 중시하지 않으면서 자유로운 분위기가 형성돼야 한다”며 “한겨레는 내부 문화가 다소 특별하기에 그런대로 가능했다. 그러나 다른 언론사에서는 쉽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고참 기자들이 후배 기자들과의 협업을 두려워하지 않는 등 스스로 변해야 한다는 목소리도 나온다. 권영철 CBS 선임기자는 “선임기자가 되면 후배 국·부장 밑에서 일해야 한다. 고참 기자 스스로 후배들과 잘 협업하는 한편 자신의 역할을 찾아야 한다”며 “회사에서도 고참 기자의 역량과 경륜을 활용할 수 있는 제도 마련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한 지상파 방송사 부장은 “경험 많고 노련한 고참 기자들에게 충분한 뉴미디어 교육을 시키면 모바일과 디지털 분야에서 좋은 저널리즘이 탄생할 가능성이 있다”고 말했다.


때문에 일각에서는 회사에서 고참 기자들을 내치기에 앞서 최대한 해결책을 모색해야 한다는 주장이 나온다. 지난해 희망퇴직을 실시했던 YTN 내부에서는 희망퇴직은 한시적 처방일 뿐 총체적 경영난을 상쇄할 방안이 아니라는 지적이 나오기도 했다. 한 종합일간지 기자는 “인력 몇 명 감축한다고 언론사의 구조적인 경영난이 수그러들지 않는다”며 “차라리 제도를 잘 마련해 고참 기자가 현장에서 제대로 뛸 수 있게 해야 한다. 고참 기자가 질 높은 기사를 생산하면 회사의 이미지도 높아질 수 있다”고 말했다. 한용길 CBS 사장도 지난 1일 기자협회보와 인터뷰에서 “고령화된 인력들에 대한 인위적 강퇴를 원치 않는다”며 “고참 기자들은 가장 숙련된 사람들이다. 이들이 자기 역할을 충분히 잘 해줄 것이라 믿는다”고 말했다.


이완수 동서대 미디어커뮤니케이션학부 교수는 “국내 언론현실을 고려했을 때 탐사보도팀 모델, 국제뉴스 대기자제 모델, 팩트체커팀 모델, 지면별 리뷰팀 모델, 콘텐츠 아이디어 기획팀 모델, 뉴저널리즘 개발팀 모델 등 고참 기자들을 활용한 다양한 모델들이 있다”며 “무엇보다 고참 기자에 대한 언론사 CEO의 의지가 가장 중요하다. 고참 기자들이 축적한 지식과 이들의 가치를 경영자들이 인정해야 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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