휴가 못가 서러운데 수당도 안줘…연차휴가 '갑질'

촉진제 악용 금전보상 안하고
의무휴가일 지정 수당도 깎아
집중휴가제 등 실효성 높여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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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솔직히 뻔뻔하다.” 국민일보 한 기자는 회사의 휴가사용촉진제(촉진제) 시행에 대해 이렇게 말했다. 그에 따르면 편집국 어느 부서나 인력이 부족해 휴가를 마음 편하게 갈 수 없는 상황이다. “부장이 가지 말라고 해서 안 가는 것이 아니라 남은 사람에 대한 미안함 때문에 휴가를 가지 못하고 있다. 3명이 번갈아 야근을 하는 부서도 있는데 거기는 한 사람만 휴가를 가면 2명이서 하루걸러 야근을 해야 하는 것 아닌가.” 그는 이런 상황에서 회사가 사용하는 촉진제는 면피용일 뿐이라고 지적했다. “사람은 충원시켜주지 않으면서 휴가만 쓰라고 고지하니 더 화가 난다. 묵묵부답인 회사에 분통이 터진다.”


부족한 인력 때문에 연차휴가를 사용하지 못하는 기자들이 회사의 촉진제 시행으로 수당조차 지급받지 못하고 있다. 촉진제는 연차휴가를 소진하기 위해 법으로 권장하는 제도로, 이를 시행했을 경우 회사는 사용하지 않은 휴가에 대해 보상할 의무가 없다. 본보가 20여개 언론사의 연차휴가 사용현황을 조사한 결과 국민일보, 서울신문 등 일부 언론사는 촉진제 시행을 이유로 사용하지 못한 연차휴가에 대한 수당을 지급하지 않고 있는 것으로 드러났다.


▲매일같이 열심히 일하는 기자들도 휴가를 꿈꾸기 마련이다. 그러나 기자협회보가 조사한 바에 따르면 일부 언론사는 아직도 부족한 인력 때문에 연차 유급휴가를 마음껏 사용하지 못하고 있고, 회사의 휴가사용촉진제 시행으로 수당조차 제대로 지급받지 못하고 있다. (연합뉴스)

문제는 기자들이 부족한 인력 때문에 연차휴가를 온전히 사용하지 못하는 데 있다. 국민일보 노조가 5월12일~15일 조합원들을 상대로 실시한 ‘휴가 사용 실태 설문조사’ 결과에 따르면 10명 중 8명의 조합원은 휴가를 다 쓰지 못했다고 답했다. 절반도 사용하지 못했다는 응답도 31.9%나 됐다. 조합원들은 휴가를 떠나지 못하는 가장 큰 이유로 부족한 인력을 꼽으며 “근무인원이 부족해 어쩔 수 없었다”고 답했다. 그러면서 해결책으로 “이유를 불문하고 돈으로 보상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서울신문의 한 기자도 “편집국의 경우 인력이 부족해 현실적으로 연차휴가를 제대로 못 쓰고 있다”며 “여름휴가도 가기 어려워 부장이 거짓 휴가원을 낼 때가 종종 있다. 구성원들은 회사가 어렵다는 것을 아니까 문제 삼지 않고 있는데, 경영진이라도 적극적인 개선 의지를 보여야 한다”고 지적했다. 


지역MBC도 지난해부터 연차휴가를 모두 소진하는 방향으로 방침을 바꿨다. 그러나 부족한 인력에 연차휴가를 모조리 써야 해 프로그램의 질이 저하되고, 쌓여 있는 대체휴가는 거의 쓰지 못한다는 비판이 제기되고 있다. 지역MBC 한 기자는 “주말 당직을 하면 발생하는 대체휴가가 40일 넘게 쌓여 있었는데 거의 쓰지 못했다. 예전에는 대체휴가와 연차휴가를 적절히 분배했는데 이제는 무조건 연차휴가부터 의무적으로 다 써야 한다”며 “더 큰 문제는 부족한 인원에 휴가를 가느라 서로 눈치 보는 상황이다. 업무 부담도 커 프로그램의 질이 저하되지 않을까 걱정된다”고 말했다. 


이혜영 중원노무법인 노무사는 “적절한 대체 인력이 확보돼야 하는데 그렇지 않을 경우 사실상 직원들이 연차휴가를 모두 소진하는 것은 불가능에 가깝다”며 “연차휴가의 50% 정도는 촉진제를 시행하고 나머지에 대해서는 수당을 주는 등 실효성 있는 해결책이 있어야 한다. 노사가 가능한 선에서 합의점을 찾아야 한다”고 말했다. 


연차휴가 중에서 의무휴가가 길어 연차수당을 거의 못 받는 경우도 있다. 언론사들이 의무휴가에 포함되는 날짜에 한해 수당을 지급하지 않기 때문이다. 본보 조사에 따르면 의무휴가제를 운영하는 언론사의 평균 의무휴가일수는 12.2일인 것으로 드러났다. 


1년간 80% 이상 출근한 근로자가 최초로 받는 연차휴가 15일과 단 2.8일 차이 나는 것이다. 그중에서도 매일경제(17일), 한국경제(15일), 헤럴드경제(15일), SBS(15일) 등이 의무휴가일수가 많은 편인 것으로 나타났다. 사실상 의무휴가 규정을 구실로 연차수당을 깎는 셈이다. 


매일경제 관계자는 “예전부터 의무휴가가 너무 많다는 불만이 있었다. 여름휴가, 겨울휴가는 그나마 잘 정착돼 있는데 한 달에 한 번씩 쉬는 월차휴가의 경우 기자들이 못 쓰고 있는 상황”이라며 “일부 내근 부서나 문화부, 국제부는 쓸 수 있을지 몰라도 정치부나 사회부, 경제부 등은 월차를 잘 못 쓴다. 전체적으로 월차를 쓰는 비율이 절반도 안 된다”고 말했다. 한국경제 관계자도 “몇 년 전에 비해 휴가를 많이 쓰는 분위기지만 의무휴가일수 15일은 너무 많다는 인식이 있다”며 “노조도 그와 관련해 회사에 문제를 제기한 것으로 알고 있다”고 말했다. 


일부 언론사에서는 집중휴가제 등을 시행해 휴가 사용을 적극적으로 독려하고 있다. 조선일보는 의무휴가일수 이상으로 휴가를 사용하는 분위기를 만들기 위해 의무휴가를 모두 사용한 사원에게 이듬해 복지포인트 10포인트(10만원)를 더 지급하고 있다. 중앙일보는 1년 동안 소진해야 하는 휴가를 비수기인 3~6월 혹은 9~12월 한꺼번에 쓸 경우 휴가 기간 중 사용한 숙박비, 교통비, 식비 등을 50만원 한도 내 실비로 지원하는 집중휴가제를 지난해 3월 도입했다. 


김세영 광주비정규직센터 노무사는 “휴가를 사용할 수 없다면 사용하지 못한 휴가에 대해 수당을 지급하는 것이 맞다. 그러나 비용이 부담된다면 회사도 적극적으로 휴가를 권장할 필요가 있다”며 “휴가를 자유롭게 사용할 수 있는 환경과 분위기, 제도를 조성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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