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월호와 둥팡즈싱호, 국가 지도자

[글로벌 리포트 | 중국] 박일근 한국일보 베이징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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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일근 한국일보 베이징특파원

최근 중국 여객선 둥팡즈싱(東方之星)호의 침몰은 지난해 우리나라의 세월호 사고를 떠올리게 했다. 수백명의 희생자가 발생한 점이나 선장이 살아 남았다는 사실이 세월호와 유사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세월호 선체가 아직도 진도 앞 바다 속에 가라앉아 있는 반면 둥팡즈싱호 선체는 사고 발생 나흘 만에 수면 위로 인양됐다. 세월호 승객 중 9명은 14개월이 지난 지금도 ‘실종’ 상태에서 구천을 떠돌고 있지만 둥팡즈싱호는 보름도 안 돼 442명의 시신을 모두 찾아 장례식까지 치렀다. 이런 관점에서 보면 세월호와 둥팡즈싱호는 달라도 너무 다르다. 과연 무엇이 이러한 차이를 만든 걸까. 


세월호와 둥팡즈싱호 사건이 가장 다른 점은 국가 최고지도자가 곧바로 사고 현장을 찾았느냐 여부에 있었다. 둥팡즈싱호가 침몰한 것은 지난 1일 밤 9시29분이었고 관영 매체의 첫 보도는 2일 새벽 4시24분에 나왔다. 이후 중국 지도부는 번개처럼 움직였다. 첫 보도가 전해진 지 4시간 만에 시진핑(習近平) 주석이 특별 지시를 내렸다는 뉴스가 관영 매체들에 의해 전해졌다.


같은 시각 리커창(李克强) 총리는 이미 전용기를 타고 사고 현장으로 향하고 있었다. 리 총리가 전용기 안에서 각 부처 장관 및 전문가와 함께 구조 방안 등에 대해 격론을 벌이는 장면은 관영 CCTV를 통해 전국으로 방송됐다. 리 총리는 이날 오전 사고 현장에 도착한 뒤 둥팡즈싱호가 손에 잡힐 만한 곳까지 배를 타고 접근, 현장을 직접 살폈다. 그는 이어 인근에서 동원할 수 있는 전문 잠수부를 모두 소집, 수중 구조에 총력을 기울일 것을 지시했다. 잠시 후 낮 12시52분 65세 할머니가 극적으로 구조됐다. 거꾸로 뒤집힌 채 선체 밑바닥만 수면 위에 떠 오른 둥팡즈싱호의 선실 안에 갇혀 있던 할머니는 15시간30분 만에 잠수 구조대원들의 부축을 받으며 물 밖으로 나왔다. 이 장면 역시 CCTV로 생중계가 되며 14억명 중국인을 감동시켰다. 리 총리도 현장에서 이를 지켜봤다. 


반면 세월호 당시 우리 국민들은 사고 현장에서 국가 지도자를 찾아볼 수 없었다. 물론 CCTV가 리 총리의 사고 수습 장면 등을 비중있게 보도한 것은 사회주의 독재국가의 선전술이라고 할 수 있다. 정부가 뭔가 하고 있다는 것을 보여주기 위한 의도된 장치였다. 그러나 중국의 국가 지도자는 어쨌든 곧바로 사고 현장으로 달려가 구조를 진두지휘했고, 이 과정에서 생환의 기적도 이뤄졌다. 


더 중요한 것은 중국 정부가 이를 통해 국민의 신뢰를 얻었다는 데 있다. 중국 정부가 사고 발생 72시간이 지나자 곧바로 선체 인양 결정을 내릴 수 있었던 것도 기본적으로는 초기 대응 과정에서 국민들로부터 신뢰를 얻은 게 밑바탕이 됐다. 반대하는 목소리는 통제됐고 승객 가족들의 의견도 반영되지 않은 것은 비판받을 수 있는 대목이다. 그러나 중국은 사건을 신속하게 수습함으로써 국론 분열과 국력 소모를 최소화할 수 있었다. 이는 우리 정부가 지난해 세월호 사고 발생 시 초기 대응에서 국민의 신뢰를 잃은 뒤론 사고 수습 과정에서 주도적 역할을 전혀 하지 못한 채 질질 끌려 다니기만 한 것과 대조된다. 스스로 초래한 업보다. 


중국이 일사천리로 대형 참사를 덮은 것에 대해 옹호할 생각은 전혀 없다. 다양한 의견을 수렴해야 하는 만큼 시간이 걸릴 수밖에 없는 민주주의 국가의 의사 결정 과정과 일당 독재 사회주의 국가의 권위적 행정을 단순 비교하는 것도 무리일 것이다. 그러나 세월호와 둥팡즈싱호는 대형 사고 발생 시 정부의 초기 대응, 특히 최고 지도자가 곧바로 현장을 찾아가는 게 얼마나 중요한지 잘 보여줬다. 답은 현장에 있다. 


더 큰 문제는 세월호 사고를 통해 혹독한 교훈을 얻었을 박근혜 정부가 사실은 이후에도 전혀 달라진 게 없다는 데 있다. 최근 중동호흡기증후군(메르스) 사태가 이를 확인시켜 줬다. 세월호 침몰 장면이 전국에 생방송이 되는데도 그 다음 날에야 현장을 찾았던 박 대통령은 이번 메르스 사태엔 첫 확진자가 나온 지 보름이 더 지나서야 의료 현장을 방문했다. 뒷북만 치는 지도자를 믿고 따를 국민은 없다. 


세월호나 메르스 같은 대형 사건 사고는 또 다시 일어날 것이다. 적어도 그 땐 누구보다 먼저 현장으로 달려가는 대통령 모습을 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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