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습기자 2주 현장실습 반인권적 제도"

한겨레 노조 성명

  • 페이스북
  • 트위치

올해 처음 ‘2주간 현장실습’을 적용해 수습기자 공개채용을 진행 중인 한겨레에 대해 전국언론노동조합 한겨레신문지부가 “일부 지원자의 탈락을 전제로 치러지는 반인권적 2주 현장실습 방침은 즉각 중단돼야 한다”고 밝혔다. 


전국언론노조 한겨레신문지부는 23일 성명을 내고 “사측은 기자직 4차 전형에서 최종 합격자의 1.5배수에 해당하는 인원을 2주 현장실습에 참여시킨다는 방침을 확정했다”며 “지원자 일부는 서류-필기시험-1박2일 합숙면접-2주 현장실습 등 두 달간의 과정을 거친 뒤, 자신의 뜻과 상관없이 불합격하게 되는 지나치게 가혹한 채용 방식이다”고 비판했다. 


노조는 “사측이 2주 현장실습을 굳이 서바이벌 방식으로 운용하려는 목적은 최대한 신중히 옥석을 가려내겠다는 것이다”며 “최근 몇 년간 새내기 사원의 일부가 회사를 그만두면서 2주간의 현장실습 평가를 추가해 한겨레에 대한 지원자의 충성도를 검증하겠다는 것”이라고 했다. 


노조는 그러면서 “한겨레와 더 오래 인연을 이어갈 인재를 뽑는 편이 낫다는 사측의 문제의식에 일부 동의한다”며 “다만 이를 실현하는 방식과 수단은 신중한 검토와 의견수렴 과정을 거쳐 마련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이어 노조는 “먼저 기존 입사자의 퇴사가 우려할 만한 수준이라고 판단했다면 문제의 원인을 제대로 진단하고 정확한 처방을 내리는 게 순서다”며 “전형방식의 완성도는 충분한지, 입사 이후 사원 관리는 체계적으로 이뤄졌는지, 무엇보다 한겨레는 이들 ‘젊은 피’의 열정을 담아내기에 충분한 그릇이었는지 총체적으로 점검하는 게 맞다”고 꼬집었다. 


노조는 “1999년 국민일보와 동아일보, 2007~2008년 YTN이 현장실습형 채용을 진행했으나 비용 대비 효과가 크지 않아 폐기했다”며 “올 초 CBS가 2주간의 현장실습을 통해 일부 지원자를 탈락시키는 방식으로 최종 합격자를 선발했지만 현재 노사 모두 부정적 평가를 내리고 있다”고 전했다. 


또 노조는 “현장실습 논란과 관련해 언론단체 및 학계 전문가 등의 자문을 얻어 나름대로 해법을 마련해 사측에 전달했지만 경영진은 ‘일단 시행한 뒤 그에 따른 책임을 지면 되는 것 아닌가’라는 식의 반응으로 일관했다”며 “오기를 부리기보다 현장실습 채용 방침을 철회해 안팎의 논란으로부터 슬기롭게 빠져나올 수 있는 지혜를 모으는 것이 중요하다”고 밝혔다. 


아래는 성명 전문. 


일부 지원자의 탈락을 전제로 치러지는 반인권적 ‘2주 현장실습’ 방침은 즉각 중단돼야 한다. 회사는 최근 진행하고 있는 수습사원 채용과 관련해, 기자직 4차 전형에 해당하는 2주 현장실습의 세부 방침을 확정했다. 기본적으로 최종 합격자의 1.5배수에 해당하는 인원을 현장실습에 참여시킨다는 것이다.


이는 곧 지원자의 일부가 서류전형과 필기시험, 1박2일 합숙면접도 모자라 2주간 현장실습까지 모두 치른 뒤, 자신의 뜻과 상관없이 ‘불합격’의 쓴잔을 마셔야 한다는 뜻이다. 입사지원서 접수가 시작된 게 지난 5월18일이니 시험 기간으로 따지면, 현장실습 탈락자는 거의 두 달 남짓 자신이 붙을지 떨어질지 모르는 ‘불안한 지위’ 속에서 떨어야 한다. 지나치게 가혹한 채용 방식이다.

 

사쪽이 2주 현장실습을 굳이 ‘서바이벌 방식’으로 운용하려는 목적은 하나다. 길게는 수십년간 함께 일해야 하는 만큼, 최대한 신중히 ‘옥석’을 가려내겠다는 것이다. 기존 수습기자는 모두 네 차례의 전형(서류전형·필기시험·1박2일 합숙면접·최종면접 등)을 거쳐 한겨레에 입사했다. 그런데 최근 몇 년간 이들 새내기 사원의 일부는 이런저런 이유로 회사를 그만뒀다. 이에 사쪽은 기존 네 차례의 전형에 2주간의 현장실습 평가를 추가해 한겨레에 대한 지원자의 ‘충성도’를 검증하겠다고 나선 것이다.

 

조합은 사쪽의 문제의식에 일부 동의한다. 가능하다면 한겨레와 더 오래 인연을 이어갈 인재를 뽑는 편이 낫다. 다만 이를 실현하는 방식과 수단은 신중한 검토와 의견수렴 과정을 거쳐 마련해야 한다.


그에 앞서 검토해야 할 과제도 있다. 먼저 기존 입사자의 퇴사가 우려할 만한 수준이라고 판단했다면, 문제의 원인을 제대로 진단하고 정확한 처방을 내리는 게 순서다. 기존 수습기자 채용제도와 관련해 각 단계별 전형방식의 완성도는 충분한지, 입사 이후 새내기 사원에 관리는 체계적으로 이뤄졌는지, 무엇보다 한겨레는 이들 ‘젊은 피’의 열정을 담아내기에 충분한 그릇이었는지 각종 채용·인사·교육제도와 조직문화 등을 총체적으로 점검하는 게 맞다.

 

사쪽은 그렇게 하지 않았다. 편집국 일부의 의견을 수렴해 대뜸 서바이벌 방식의 ‘4주 현장실습’이라는 무리한 제도를 수습사원 모집 요강에 추가했다. 별다른 공론화 절차도 없이 ‘일부 새내기 사원의 퇴사’를 마음대로 ‘채용제도의 문제’라고 단정한 것이다.


한겨레 안팎에서 ‘채용 갑질’, ‘가혹한 평가’라는 지적이 일자, 사쪽은 실습 기간을 4주에서 2주로 줄였을 따름이다. 아울러 ‘합리적 수준의 임금을 지급하는 등 2주간의 현장실습을 거친 뒤 지원자가 탈락하더라도 얻어가는 게 있도록 제도를 마련하겠다’는 희안한 논리로 현장실습의 정당화를 꾀하고 있다.

 

이는 한참 잘못된 결정이다. 서바이벌 방식의 2주 현장실습은 명분도 실익도 없다는 게 조합의 판단이다. 한겨레보다 먼저 인력유출에 대한 고민을 해온 다른 언론사의 경험이 이를 입증한다.


조합이 직접 파악해보니 현장실습(혹은 인턴평가) 방식의 채용제도는 이미 ‘실패한 제도’에 불과하다. 실제로 우리가 이번에 도입한 현장실습(또는 인턴평가) 방식의 채용제도를 두고 있는 언론사는 없다. 1999년 외환위기 직후 <국민일보>와 <동아일보> 등이 각각 3개월, 2개월의 인턴기간을 전형과정에 포함시켜 수습기자를 뽑은 사례가 있으나, 비용 대비 효과가 크지 않다는 결론을 내리고 폐기한 지 오래다. YTN도 2007~2008년 두 차례에 걸쳐 현장실습형 채용을 진행했으나, 이런 과정을 거치고 입사한 합격자가 이내 회사를 그만두는 해프닝이 빚어져 결국 제도를 폐기했다.


최근 현장실습을 전형 과정에 포함시켜 수습사원을 뽑은 언론사는 CBS가 유일하다. CBS는 올초 서울 지역 기자와 PD를 채용하는 과정에서 1박2일 실무면접과 최종면접에 이어 2주간의 현장실습을 치렀다. 여기서 일부 지원자를 탈락시키는 방식으로 최종 합격자를 선발했다. 다만 CBS 노사는 올해 처음 진행한 이런 방식의 채용제도에 대해 모두 부정적 평가를 내리고 있는 만큼, CBS 사례가 모범사례가 될 수는 없다.


한국의 어떤 언론사가 이미 서류전형과 필기시험, (무려) 1박2일 합숙면접까지 통과한 지원자를 또다시 2주간의 ‘생존경쟁’으로 내모는지 조합은 파악하지 못하고 있다.

 

사쪽은 일부 지원자의 탈락을 전제로 치러지는 2주 현장실습과 관련해 채용 갑질이라는 비판이 일자, 얼마간의 임금과 현장실습 경험을 빌미로 탈락한 지원자한테도 나름의 대가를 제공한다고 주장했다. 하지만 결국 탈락한 이들한테 남는 건 오랜 전형 기간만큼이나 커지는 쓰디쓴 실패의 경험, 그 과정에서 한겨레가 보여준 ‘채용 갑질’에 대한 부정적 기억이 거의 전부일 것이다.

 

한겨레가 선택할 수 있는 출구가 없는 것도 아니다. 조합은 지난 4일 출범 직후 현장실습 논란과 관련해 언론단체 및 학계 전문가 등의 자문을 얻어 나름의 해법을 마련해 사쪽에 전달했다.


굳이 실시해야 하는 현장실습이라면, 이미 나간 채용공고의 범위에서 최대한 운용의 묘를 살리는 방식으로 부작용을 최소화하자는 제안이었다. 실제로 2차 채용공고를 보면 ‘(현장실습) 기간 동안 기자에게 필요한 실무능력을 쌓는 것은 물론 지원자 스스로 기자로서의 적성여부를 확인할 수 있도록 프로그램을 운용’한다고 나와 있다.


사쪽이 밝힌 현장실습의 취지를 최대한 살린다면, 현장실습 기간에 지원자는 실무 경험을 쌓으며 한겨레를 최종적으로 판단할 수 있다. 물론 한겨레도 현장실습에 참여하는 지원자의 사전동의를 얻어 ‘누구나 인정할 만한 결격사유’가 있다면 부득이 입사를 제한할 수 있다는 사실을 알릴 수 있을 것이다. 다만 이는 지원자 가운데 일정 수를 반드시 떨어뜨리는 배제의 원칙 아래에서 진행되는 지금의 현장실습과는 근본적으로 다르다.

 

조합은 지난 4일 출범 당일부터 19일까지 보름간 정영무 대표이사와 정석구 편집인, 김이택 편집국장 등을 상대로 현장실습 논란을 바라보는 한겨레 안팎의 여론, 현장실습에 관한 다른 언론사의 경험, 언론계의 조언 등에 관한 거의 모든 정보를 공유하며 이 문제를 원만히 풀고자 노력했다.


사쪽은 이런 조합의 노력을 무시한 채 아무런 논리도 없이 ‘어차피 이렇게 하기로 한 것이니, 일단 시행해봐야 한다. 경영진이 그에 따른 책임을 지면 되는 것 아닌가’라는 식의 반응으로 일관했다. 2주짜리 현장실습을 반드시 ‘배제의 방식’으로 실시해야 한다는 별다른 논리도, 이유도 없었다.

 

답답할 따름이다. 경영진이 대체 무슨 책임을 어떻게 지겠다는 것인지 몰라도 지금은 ‘내가 책임지겠다’ 식의 오기를 부릴 때가 아니다. 한겨레가 현장실습 논란으로부터 슬기롭게 빠져나올 수 있도록 지혜를 모으는 것이 중요하다.

백번을 생각해도 일부 지원자의 탈락을 전제로 치러지는 2주 현장실습 방침은 철회되는 게 옳다. 반인권적 2주 현장실습의 즉각 중단을 요구한다.

 

2015년 6월23일

전국언론노동조합 한겨레신문지부

김달아 기자의 전체기사 보기

배너

많이 읽은 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