참사와 테러, 기자 트라우마

다트센터 (Dart Center) 아시아 태평양 펠로십 참관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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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월10일 홍콩대학교에서 열린 다트센터(Dart Center) 주관 아시아 태평양 펠로십에서 발표하고 있는 이승용 MBC 기자.

“이곳에 오기 일주일전 친한 동료기자가 테러로 숨졌습니다. 그동안 동료 기자 7명이 살해됐습니다. 분쟁지역을 장악한 군벌은 특히 국제적 언론사에 기사를 쓰는 기자들을 타깃으로 삼습니다.”


“테러가 있기 전에 특별한 징후는 없습니까?” “기자에게 전화를 걸어 죽이겠다고 협박합니다.” “그런 실질적 위협이 있어도 취재를 계속합니까? 안전이 우선 아닐까요?” “협박이 있다고 저널리스트가 물러나면 되겠습니까? 누군가 현장을 지켜야죠.” (키란 나지스 중동지역 프리랜서 저널리스트)

 

삶과 죽음, 참사와 테러, 안전과 취재. 기자와 희생자 또 그들의 트라우마. 묵직한 주제에 뜨거운 토론이 홍콩의 무더위를 무색케 했다. 얼굴빛과 억양이 제각각인 기자들이 경험담을 중심으로 치열하게 의견을 제기하고, 반론을 내놓았다. 한 기자가 폭탄테러로 피투성이가 된 채 응급실에 실려 가는 자신의 동영상을 담담하게 소개하자 일순간 정적이 감돌기도 했다. 


미국 콜롬비아 대학 저널리즘 스쿨이 운영하는 다트센터 (Dart Center)의 아시아·태평양 펠로십이 지난 10일 홍콩대학교에서 일주일간의 일정으로 열렸다. ‘저널리즘과 트라우마’라는 주제로 매년 열리는 펠로십에 올해는 한국과 중국, 대만, 파키스탄, 인도, 스리랑카, 방글라데시, 호주, 뉴질랜드 등 10여 개 국에서 20여명의 기자와 언론학자가 참가했다.


그동안 한국은 이 펠로십 참가가 흔치 않았지만 세월호 참사를 계기로 다트센터에서 한국기자의 참가를 요청하게 됐다. 세월호 참사는 IS 등 이슬람 종파 분쟁과 연계된 각종 테러, 네팔 대지진과 함께 이번 펠로십의 핵심 이슈 중 하나였다.


기자에 대한 테러에 대해 논의하는 시간에선 생방송 중인 기자에게 가족을 살해하겠다는 협박 전화가 걸려오는 모습, 기자가 폭탄 테러의 피해자로 뉴스에 나오는 모습이 공개되기도 했다. 최근엔 1차 폭탄 테러가 발생한 뒤 구조대와 취재진을 노린 2차 폭탄 테러가 자주 발생해 기자들의 피해가 커지고 있다는 분석이 제기됐다. 특히 서방언론에 기사와 영상을 제공하는 프리랜서 저널리스트들에 대한 협박과 살해가 매우 심각해 그 대응책이 집중적으로 논의됐다.


네팔 대지진과 관련해선 자연재해 현장에서 안전을 확보하는 방법, 어느 순간까지 현장을 지킬 것인가, 생존자의 2차 피해를 막고 피해복구를 지원할 재난보도의 길은 무엇인지 각자의 경험을 진지하게 풀어놓았다. 참가자 중 네팔 대지진 현장에서 막 돌아온 사진기자들에게 홍콩 지역 특파원들이 큰 관심을 보였다.


홍콩대 학생들과 함께 한 공개강좌에선 세월호 참사에 대한 질문이 이어졌다. 한국의 언론인 5000여명이 세월호 보도와 관련해 공개사과를 했으며, 세월호 취재 기자 중 46%가 심각한 트라우마를 겪고 있다는 사례가 공개됐다.


이번 펠로십에서는 희생자와 생존자의 후유증을 최소화하면서 취재하는 방법, 복구를 지원할 저널리즘의 구현, 재난과 사건 사고를 취재하면서 겪게 되는 취재진의 트라우마를 예방하고 치료할 다양한 방법이 각각의 실제 사례를 통해 제시됐다. 심리적 치유에 도움이 되는 간단한 호흡법과 체조 등 즉각 일상에 적용할 수 있는 구체적인 방법도 배울 수 있었다. 테러로부터의 위협, 자연재해의 위험, 피해자들의 비난 등 재난현장의 극심한 스트레스를 세계 각국 기자들이 터놓고 얘기함으로써 스스로 치유하는 과정을 찾는 좋은 기회였다.


▲10일 홍콩대학교에서 열린 다트센터(Dart Center) '저널리즘과 트라우마' 펠로십에 참여한 기자들이 기념사진을 찍고 있다.

재난보도를 위한 다트센터의 조언


인터뷰할 때

-희생자들의 인격을 지켜주고 그들에게 존경심을 갖도록 하라

-곤란한 질문으로 희생자를 힘들게 하지 말라.

-희생자의 아픔을 안다고 말하지 말라.


기사 쓸 때

-피해자의 삶에 주의를 기울이고 언제나 정확하라

-피해자 시신의 불필요한 노출을 피하라.

-자극적인 단어의 사용을 피하라.


취재 기자

-당신의 한계를 인식하라

-휴식하라. 단 몇 분이라도 힘든 상황에서 벗어나 있어라.

-데스크나 동료 중 누구라도 진지하게 말을 들어줄 사람을 찾아라.

-스트레스를 줄여줄 자신만의 방법을 만들어라.


카메라기자

-항상 침착하고 생각을 집중하라. 위험하다 느끼면 피하는데 주저하지 말라.

-참사현장의 끔찍한 장면이 꼭 필요한 것인지 항상 자문하라.

-희생자 가족의 슬픔의 순간을 방해하지 말라.

-스트레스가 감정의 한계선을 넘는다고 생각하면 즉시 상담을 받아라.


언론사 간부

-개별기자가 현장의 충격에 대해 느끼는 강도와 시기는 각각 다르다.

-취재진의 안전을 책임질 담당자를 지정하고, 그의 조언에 귀를 기울여라.

-취재진이 개인 상담을 받을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하라.

-현장 취재진을 격려하고 그들의 노고에 진심으로 감사하라.


다트센터는


미국에서 911테러 이후 TV와 신문에 참사 모습이 계속 노출되면서 희생자 가족뿐 아니라 기자와 시청자까지 많은 트라우마를 겪게 되자 트라우마를 줄이는 저널리즘을 모색하기 위해 다트재단에 의해 설립됐다. 미국 컬럼비아 대학 저널리즘 스쿨이 중심이 돼서 미국, 유럽, 아시아-태평양 등에서 지역별 펠로십을 매년 개최하고 있다. 참가신청은 다트센터 홈페이지(dartcenter.org)에서 가능하며 100% 영어로 진행된다. 세월호 희생자 가족과 한국기자들을 위해 다음 달 한국에서 워크숍을 개최할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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