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동차로 북한을 여행할 수 있는 날

[글로벌 리포트 | 중국] 박일근 한국일보 베이징특파원

▲박일근 한국일보 베이징특파원

지난 4일 중국 푸젠(福建)성 샤먼(廈門)의 한 부두엔 아주 특별한 자동차 두 대가 눈길을 끌었다. 대만승용차여행협회 소속 회원들이 화물 여객선에 자신들의 승용차를 싣고 도착했기 때문이다. 이들은 중국 현지 교통규칙 등에 대한 간략한 설명과 함께 임시 운전면허증과 임시 차량번호판을 받은 뒤 자신들의 승용차를 운전, 샤먼의 유명 관광지로 출발했다. 중국이 대만 관광객에게 자신의 차를 직접 운전해 대륙을 여행할 수 있도록 허용한 것은 처음이다. 


중국과 대만의 민간 교류는 2008년부터 본격화했다. 당시 대만에서 마잉주(馬英九) 총통이 집권하며 중국과의 통상(通商), 통항(通航), 통신(通信) 등 이른바 삼통(三通) 정책이 전면 시행됐다. 이제 중국과 대만의 교류는 마치 한나라를 오가는 것처럼 편리하고 풍성하다. 양안의 여객 항공편은 이미 주 840회나 된다. 지난해 대만인의 중국 대륙 방문은 537만명(연인원), 중국인의 대만 방문은 405만명을 기록했다. 


이러한 양안 민간 교류의 현장을 가장 잘 보여주는 곳이 샤먼 앞 진먼다오(金門島)이다. 샤먼에서 배를 타고 30분 거리인 진먼다오는 대만 입장에서 보면 최전방이다. 실제로 중국은 1970년대 초까지 이 곳에 모두 100여만발의 포탄을 퍼부었다. 그러나 지금은 시간마다 정기 운항선이 오갈 정도로 양안 간 왕래가 잦다. 1949년 중국군이 진먼다오로 진격할 당시 출발지였던 다덩다오(大嶝島)에는 중국에서 유일하게 대만 상품들을 관세 없이 사고 팔 수 있는 ‘대만소액상품거래시장’도 운영되고 있다. 


이러한 양안 간 교류의 모습을 보면서 한반도로 눈을 돌리면 우리의 상황은 너무 답답하다. 중국과 대만은 바다를 사이에 두고 있다. 그럼에도 벌써 자동차 여행을 허용할 정도로 가까워진 상태이다. 남북한은 바다도 없이 하나의 땅으로 이어져 있다. 대만처럼 배에 차를 실을 필요조차 없다. 더구나 서울에서 개성까진 직선 거리로 60㎞도 안 된다. 마음만 먹으면 1시간 안에도 갈 수 있다. 만약 자신의 차를 타고 평양과 백두산을 여행할 수 있게 된다면 그 감격은 말로 표현하기 힘들 것이다. 아니 그 차를 타고 베이징(北京)은 물론 모스크바까지 달릴 수 있다면 한반도는 비로소 극동 아시아의 고립된 섬에서 탈피, 유라시아 대륙의 주인공으로 거듭날 것이다. 그러나 남북한 관계는 5·24 조치 이후 몇 년 동안 꽉 막혀 있는 상황이다. 남한에서 운전하던 차를 직접 몰고 북한을 거쳐 대륙을 여행할 수 있는 날을 기대하는 것은 지금으로서는 헛된 몽상에 가깝다. 


꼬일 대로 꼬인 남북관계를 푸는 데는 양안의 실리적 지혜를 배울 필요가 있다. 민감하고 해결이 어려운 정치 외교 군사 안보 문제 등은 장기적 과제로 추진하고, 비교적 이견이 많지 않은 민간 교류와 경제 협력 부문부터 물꼬를 터 가는 게 양안의 접근 방식이다. 


이처럼 민간 교류와 경제 협력이 늘어나 분위기가 성숙되면 어려운 문제를 푸는 데도 도움이 된다. 실제로 대만 관광객의 첫 대륙 자가용 여행이 허용된 날 베이징(北京)에서도 양안 지도자가 마주 앉았다. 시진핑(習近平) 중국공산당 총서기와 주리룬(朱立倫) 대만 국민당 주석은 4일 베이징 인민대회당에서 6년 만에 ‘국공(國共) 영수회담’을 갖고 ‘양안 운명공동체’와 아시아인프라투자은행(AIIB) 등에 대해 논의했다. 시 총서기는 중국 국가주석이지만 주 주석은 대만 총통이 아니란 점에서 양안 정상회담은 아니지만 양국 정치 지도자의 교류가 갈수록 늘어나고 있는 것은 부러운 일이다.


통일은 한민족뿐 아니라 중화민족의 꿈이기도 하다. 이 역사적 과제를 누가 먼저 달성하느냐에 따라 한반도의 운명도 달라질 것이다. 양안이 한참 앞서가고 있고 우리는 늦은 것 같지만 언제나 그렇듯 지나고 보면 지금이 가장 빠른 때일 수도 있다. 사실 양안은 아직 정상회담을 하지 못한 상태지만 우린 이미 두 차례나 남북 정상회담까지 성사시킨 바 있다. 광복 70주년인 올해를 남북 지도자가 잘 활용하길 기대한다. 중국이 AIIB를 세운 것처럼 남한의 주도로 ‘북한인프라투자은행’을 세워 북한의 도로를 정비하는 사업을 펴는 것도 아이디어가 될 것이다. 우리도 자동차로 한라에서 백두까지 마음껏 여행할 수 있는 날이 하루빨리 오길 꿈꿔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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