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건 직후에도 그랬지만 지금도 나는 이 짧은 2분16초를 정확하게 기억해낼 수가 없다. 리퍼트 대사 주변에 앉아 있던 한 여성의 비명을 들은 순간부터 리퍼트 대사가 혈흔이 낭자한 채로 행사장을 떠나기까지 마치 단거리 달리기를 하듯 바쁘게 뛰었고, 가쁜 숨을 참지 못한 채 셔터를 눌렀던 기억뿐이다.
세상은 폭력과 갈등에 민감했다. 사상 초유의 외교사절 피습사건을 적나라하게 기록한 사진은 현장에 흘려진 리퍼트 대사의 피가 마르기도 전에 국내외로 퍼져 실시간 뉴스로 흘러나왔고, 당일 석간부터 다음날 조간까지 대부분 신문 1면을 차지했다. 미국 대사의 상처는 자연스럽게 '한미동맹의 위기'로까지 의미가 확장되었고, 오전이 지나기도 전에 '종북몰이'가 고개를 들면서 광화문광장에는 크고 작은 집회가 시작되었다.
개인적으로 이번 취재는 뉴스통신사 기자로서 지금까지 경험해보지 못한 사진의 반향을 확인할 수 있었던 계기였다. 또 한편으로는 한 극단주의자의 야만적인 폭력을 기록한 사진이 각기 다른 해석의 도구가 되고 의미가 확대되는 상황을 목격하면서 일종의 사진의 한계에 대해서도 생각해보게 되었다. 피를 기록했다고 해서 폭력의 진실에 더 가까이 접근했다고 볼 수 없는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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