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월호 1년, 언론의 길을 묻다

[우리의 주장] 편집위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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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년 전 오늘, 단원고 2학년 학생들은 수학여행 단꿈에 부풀어 있었다. 이튿날, 어린 친구들을 태운 세월호가 맹골수도 바닷속으로 사라지기 전까지 평온했다. 비보는 언론의 오보로 성난 파도를 만들었다. 한가닥 희망이 절망으로 바뀌며, 언론은 ‘기레기’란 소리를 들어야 했다. 반성과 성찰의 시간이 이어졌다. 재난보도에서 속보경쟁을 버리자며 가이드라인을 만들었다.


그로부터 1년 뒤, 돌아오지 못한 아이들을 품은 단원고 교실 책상마다 꽃들이 놓였다. 세월호가 가라앉으며 엄마 아빠들 웃음도 사라졌다. 다시 광화문 광장으로 나와 삭발을 했다. “세월호 진상규명하라”는 1년 전 구호를 또 외쳤다. 희생자 분향소엔 국화꽃 행렬이 이어졌다. 9명의 실종자는 그 자리도 차지하지 못했다. 우리 사회는 2014년 4월16일에 멈춰서 있다.


세월호 참사 1년, 언론은 변했는가. 1년 전 다짐은 지켜지고 있는가. 언론은 그날의 교훈을 잊지 말자며 지면과 화면으로 특집기사를 싣는다. 망각의 세월을 기억의 시간으로 치환한다. 다시 반성의 시간이다. 지면과 방송에선 1년 전 그날을 쉼없이 재생한다. 밀린 숙제를 하듯 쏟아낸다. 벼락치기 뒤엔 망각이 따른다. 의례적 추모기간이 지나면 일상의 시간으로 돌아갈 것이다. 대통령은 더 빨리 잊고 싶은지 1주기 당일인 16일 오후 중남미 순방을 위해 이 나라를 떠난다. 1년 전, 눈물의 대국민 담화는 진심이 아니었다. 


일부 언론은 정부와 손뼉을 마주친다. 정부의 배·보상금 발표는 대문짝만하게 싣는데, 유족들의 ‘돈보다 진상규명하라’는 요구는 듣는둥 마는둥한다. 진실을 알고 싶은 유족들의 1년 외침을 고작 돈을 바라는 행동으로 폄하하는데 앞장선다. 결코 작은 돈이 아니라며 국민들을 이간질한다. 경제가 살아나지 않는 이유가 세월호 때문인 것처럼 호도한다. 정부의 무능은 그 뒤로 숨긴다. 세월호 특위의 권한을 무력화하고, 조사대상자에게 진상규명 주도권을 맡기는 어처구니없는 일이 벌어져도 무시하거나 고작 단신 처리한다. 유족들이 시행령을 폐기하라며 찬바람 부는 광장에서 농성을 이어가도 눈길 한번 주지 않는다. 그리고 경찰과의 충돌을 부각시킨다.


참사는 아직 진행형이다. 무엇하나 속시원히 밝혀진 것이 없다. 참사 당일 컨트롤타워가 왜 작동하지 않았는지 아직 모른다. 대통령이 구조의 골든타임에 정확한 지시를 했는지 실체를 모른다. 지시를 했는데, 현장에서 명령에 따르지 않았는지도 우린 모른다. 언론이 1년 동안 탐사보도로 다뤘어야 할 사안이었다. 의지가 없었다고 하는 게 맞다. 그래서 떳떳할 수 없다.


자식을 잃은 한 어머니는 진상규명도 안됐는데 따뜻한 방에서 잘 자격이 없다고 아스팔트 위 쪽잠을 잔다. 농성장 거리 위에서 차디찬 밥을 삼킨다. 진도 팽목항을 걸어서 다녀오고, 그래도 그리우면 바다에서 목놓아 아이들의 이름을 부른다. 그리고 단식농성을 해가며 악으로 버텨 세월호 특별법을 만들었다. 모두 희생자와 실종자 가족들이 거대한 권력의 벽에 맞서 싸운 결과물이었다. 그래서 오늘 언론은 부끄럽다.


세월호 1주년이다. ‘가만히 있어라’는 침몰 당시 선내 방송이 우리 사회 곳곳에 울린다. 뻔뻔한 국가는 청년들을 열사의 모랫더미로 밀어넣고, 국가기간뉴스통신사는 임직원을 모아놓고 국기게양식 코미디를 한다. 언론의 받아쓰기는 여전하다. ‘바꿔야 한다’는 국가개조의 타깃은 이 나라의 위정자들이다. 그리고 언론이다. 책임을 국민에게 떠넘겨서는 안된다.


‘세월호’는 오늘도 망각과의 싸움을 벌이고 있다. 언론은 진실을 추적해야 한다. 더 이상 부끄럽지 않기 위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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