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베 정부 독주 견제 못하는 일본 언론

[글로벌 리포트 | 일본] 이홍천 도쿄 도시대학 교수

▲이홍천 도쿄 도시대학 교수

3월27일 일본의 TV아사히의 메인 뉴스 프로그램 생방송 도중 벌어진 방송사고(?)가 언론계에 논란이 되고 있다. 아베 정부에 비판적인 입장을 가진 시사평론가 고가 시게아키씨가 아베 정부의 압력을 받아 방송을 그만두게 되었다고 생방송 도중 폭로한 것이다. 고가씨는 진행자가 중동 정세에 대해 질문하자 ‘나는 아베가 아니다(I am not ABE)’라는 손팻말을 들어보이면서 자신이 스가 관방장관과 총리관저로부터 상당한 압력을 받았고 이로 인해 프로그램을 그만두게 되었다고 발언했다. 


아베 정부가 방송장악을 위해 다양한 시도를 벌이고 있는 것은 주지의 사실이다. 방송에 대한 압력은 상당 부분 먹혀들고 있다. 자민당은 지난해 11월 중의원 해산 직전에 재경 6개 방송국 보도국장 앞으로 서한을 보내 공정한 선거방송을 요청했다. 서한은 공정보도를 요청하는 일반적인 수준을 넘어섰다. 거리 인터뷰의 편집방침과 선거보도의 구성에 이르기까지 세세한 내용까지 주문하고 있다. 또 NHK국제방송에 대해 위안부를 둘러싼 역사문제와 영토문제에 대한 일본 정부의 입장을 적극적으로 홍보해 주기를 주문했다. 모미이 NHK 회장은 정부의 방침을 국제방송을 통해 알리는 것은 당연한 역할이라고 발언해 물의를 빚기도 했다. 


이번 생방송 소동을 둘러싸고 해당 방송국과 제작회사측은 ‘압력은 일체 없었다’고 부인하고 있지만 이를 그대로 믿는 사람은 없다. 그런데 논란은 정부를 향하기 보다는 압력을 받았다고 주장하는 고가씨의 언동에 맞춰지고 있는 분위기다. ‘개인적인 감정을 평론에 담아서는 안된다’ ‘평론가로서의 책임을 다하지 못했다’ ‘유머를 통해 논리적으로 풍자하는 것이 좋았다’ ‘방송국과의 사전협의 내용을 위반했다’ 등등.


마이니치신문은 6일자 지면에 ‘압력인가 개인의 돌출행동인가’라는 제목으로 이 문제를 다뤘다. 마이니치는 TV아사히 측이 자민당의 선거방송에 대한 요구를 보도관계자들에게 전달했다는 점은 인정했다고 전했다. 보도는 양쪽의 입장을 전달하는데 그쳤지만 일본 정부의 압력이 있었다는 것을 에둘러 지적하는 형식에 다름 아니다.


TV아사히 측은 개인이나 단체의 의견이 방송내용에 영향을 미치지 않는다고 압력설을 부인했지만 사실상 압력에 굴복했다는 것은 선거방송 내용에서도 확인되고 있다. 지난해 중의원 관련 선거방송 자체가 과거에 비해서 대폭 줄어들었다. 자민당이 지적한 거리 인터뷰는 거의 보도되지 않았다. 보도해서 문제를 일으키기 보다는 아예 보도하지 말자는 분위기가 제작진에 팽배했다는 것은 쉽게 유추할 수 있다. 자민당의 요청(?)이 제대로 먹혀들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스가 관방장관은 3월30일 기자회견에서 “사실과 다른 내용을 공공의 전파를 사용해서 보도한 것은 유감”이라며 “방송법이 있다. 해당 방송국이 어떻게 대응하는지 지켜보겠다”고 발언했다. 방송법의 준수를 들고나온 고가씨의 발언은 방송면허를 갱신받아야 하는 민방 입장에서는 신경을 쓸 수밖에 없는 대목이다. 정부에 거슬리는 보도가 나올 때마다 일본정부는 방송법을 들고 나올 분위기다. 고가씨의 발언은 독해능력이 있는 사람이라면 TV아사히에 대한 무언의 압력과 함께 다른 방송국에 대해서는 은근한 협박으로 받아들여진다는 것은 쉽게 이해할 수 있다. 


이번 사태는 정부에 비판적인 평론가의 출연은 물론이고 우호적인 우익적 인사의 출연도 어렵게 만들었다. 일부에서는 평론가의 발언을 사전에 확인해야 하고 이전의 발언들도 살펴봐야 한다는 목소리도 나오고 있다. 어느쪽이든 문제가 발생할 소지가 있는 평론가는 출연시키기 않는 쪽을 선호하고 있다. 이 때문에 평론가 보다는 해설자가 환영받고 토론 프로그램보다는 해설관련 프로그램이 늘어나고 있다. 방송을 통해서 다양한 의견이 전달되지 못하면 여론이 경직될 가능성이 더욱 높아진다. 


교과서 검정을 통한 위안부 문제 삭제, 위안부 문제에 대한 국제홍보 강화, 한국정부에 대한 외교부의 기술 변경 등 한일국교 정상화 50주년인 올해에도 양국관계가 정상화 될 조짐을 찾기가 힘들다. 일본정부의 독주를 견제하는 언론기능의 약화야말로 한일관계 개선을 어렵게 하는 요인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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