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BS=일베' 시선, 두렵지 않으십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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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BS 수습기자 중에 일베가 있다’ 이미 이 한 마디로 우리는 많은 것을 잃었다.”


극우 성향 커뮤니티 ‘일간베스트(일베)’에 여성과 특정 지역을 모욕·비하하는 글을 올려 논란이 된 KBS 수습기자의 정직원 채용을 앞두고 KBS 내부에서 비판 여론이 거세지고 있다. 노조와 사내 협회 등은 “‘일베 기자’를 동료로 인정할 수 없다”며 공개적으로 반대 의사를 밝혔고, 입사 2년차의 PD들은 해당 기자의 정직원 임용을 반대하는 1인 시위에 돌입했다.


해당 기자는 지난해 KBS 신입사원 공채에 합격하기 전 약 1~2년 동안 일베 유저로 활동하며 여성 혐오와 특정 지역에 대한 차별·폄훼를 담은 글 약 6800여 건을 게시해 온 것으로 알려졌다. 지난 1월 KBS 사내 익명게시판에 해당 기자가 일베에 썼던 여성 비하 글이 올라오고, 이를 2월 초 미디어오늘이 보도하면서 KBS ‘일베 기자’ 논란은 일파만파로 커졌다.


이에 KBS여성협회와 여기자회를 중심으로 경영진이 ‘결자해지’에 따라 해당 기자의 임용을 취소하거나 기자 스스로 양심적 결단을 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터져 나왔다. 그러나 KBS는 한 달이 지나도록 이번 사태에 대해 결론을 내리지 못했고, 해당 기자는 오는 4월1일 정사원 임용을 앞두고 있다. KBS는 “입사 전 일이다”, “감사실 감사 결과로 조치할 수 있는 게 없다”는 입장인 것으로 전해졌다. 이 기자는 논란 이후 수습 교육에서 빠져 내근 중이다.


▲2014년에 입사한 KBS 41기 PD들이 26일 '일베 기자'를 KBS인으로 받아들일 수 없다며 1인 시위를 벌였다.

결국 참다못한 평 PD들이 해당 기자의 정사원 임용을 반대하며 1인 시위에 나섰다. 2014년에 입사한 41기 PD들은 26일 KBS 여의도 본관 식당 앞에서 ‘선배님, 저희는 정말 두렵습니다’라고 적힌 피켓을 몸에 건 채 1인 시위를 벌였다. 이들은 1인 시위와 함께 배포한 호소문을 통해 “공영방송과 일베를 겹쳐서 바라볼 시선이 두렵지 않으신가요”라고 물었다.


이들은 “우리의 조직문화가 수습사원 한 명은 용서할 수 있어도, KBS를 바라보는 시청자들의 시선까지는 바꾸지 못한다”며 “5·18민주화운동 희생자를 ‘홍어’에 비유하고 세월호 희생자와 유가족을 모욕하는 일베와 KBS가 겹쳐 보이는 순간, KBS의 이름을 내건 어떤 방송도 이전과 같은 의미가 아닐 것”이라고 우려했다.


이어 “부디 이 사건을 사소한 해프닝으로 넘기지 말아 달라. 그가 쓴 글과 일베가 어떤 사이트인지를 직접 확인하고 개인에 대한 연민을 느끼기 이전에, 그가 정말 공영방송의 기자로서 적합한지 판단해 달라”고 당부하며 “사회를 병들게 하는 비상식의 가치가 공영방송이라는 필터로 걸러질 수 있다고, 우리는 아직 믿는다”고 밝혔다.


KBS 기자협회와 PD협회 등 9개 협회도 앞서 지난 20일 공동 명의의 성명을 내고 “개인에 대한 연민과 조직 내부의 이해관계에 갇혀 검은 것을 흰 것으로 보려는 어떠한 시도에도 반대한다”면서 “‘일베 기자’의 임용을 명확히 반대한다. 결코 받아들일 수 없다”고 밝혔다.


또 전국언론노조 KBS본부(새노조)는 23일 성명을 통해 “‘일베 기자’가 우리 동료로, 후배로 KBS 공간에서 함께 하고 있다는 것은 그 자체로 국민들의 수신료로 운영되는 공영방송 KBS의 존립을 위태롭게 할 수 있다”고 주장했다. 새노조는 “‘일베 기자’를 개인의 일탈행위, 입사 전 행적이라고 치부하기에는 그가 공영방송인으로서 책임져야 할 무게감이 너무 크다”며 “본인도 그 책임에서 자유로울 수 없음을 명심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이어 “신입사원 최종 면접장에서 선발권을 행사한 조대현 사장을 비롯한 경영진들에게 1차 책임이 있다”며 “조대현 사장과 경영진은 ‘일베 기자’에 대한 단호한 조치를 취하라”고 촉구했다.


KBS는 그동안 신입사원을 선발하면 3개월간 수습직원으로 임용한 뒤 별도의 심사 과정 없이 대부분 정사원으로 채용해왔다. 수습직원부터 사실상 KBS 직원으로 간주해온 관행상 사측에서도 임용을 취소하는데 난색을 표하고 있다는 것이다. 하지만 지난해 같은 경우 KBS가 신입사원 채용 공고를 내며 “수습직원 기간종료 후 소정의 심사를 거쳐 적격자에 한해 일반직 4직급으로 임용한다”고 공지한 사실이 있어 해당 기자의 전력이 수습 평가에 따른 부적격 판단의 근거가 될 수 있다는 주장도 나온다.


새노조와 사내 협회 등은 이번 주까지 회사 측이 결단을 내리지 않을 경우 전면 입장 표명 등 공식 대응에 나설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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