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운명처럼 다가와 내 인생 모두 물들였죠"

축구해설가 활약 중인 이투데이 차상엽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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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투데이 차상엽 기자

유학 시절 통신원으로 언론 입문
독일 돌아가 축구전문지 입사 꿈꾸기도


주말 밤이나 새벽, TV로 분데스리가(독일 프로축구 리그) 경기를 틀면 그의 목소리가 나온다. 조금은 낮지만 힘 있게, 독일 축구에 관한 다양한 정보를 전달하는 분데스리가 전문 해설위원 이투데이 차상엽 기자. 어느덧 해설위원으로 5년차를 맞이했지만 그는 아직도 축구장을 보면 가슴 떨리는 순정파 기자다. 


그가 독일 축구를 처음 접한 것은 1999년 독일 유학 시절이었다. “원래 야구를 좋아했었는데 유럽은 야구가 없더라고요. 할 수 없이 축구장을 다니면서 보기 시작했죠.” 당시 한국에서는 2002년 한·일 월드컵을 앞두고 있었고 2006년 독일 월드컵도 일찌감치 정해져 한국과 독일 양국의 축구 열기는 뜨거웠다. 차 기자의 유학생활도 당연히 그 열기에 휘말릴 수밖에 없었다. “iMBC와 마이데일리에 정기적으로 축구 기사를 보냈어요. 당시에는 인터넷 언론이 많아서 통신원을 쓰곤 했죠. 아주 단순한 지원만 받고 통신원 생활을 시작했는데 하다 보니 완전히 이 길로 빠졌어요.”


그는 축구를 보기 위해 독일뿐만 아니라 영국, 스페인, 스코틀랜드 등 온갖 유럽 땅을 밟았다. 한국 대표팀의 전지훈련을 취재했고 박지성, 이영표 선수와 직접 인터뷰를 했으며 히딩크 감독이 아인트호벤 감독으로 부임했을 때도 직접 네덜란드에 가서 취재했다. “1년에 30번 넘게 직접 축구를 봤어요. 1년이 52주고, 그 중 37~38주 정도 축구경기가 있는데 거의 매주 본 것이나 마찬가지였죠.” 


2009년 만으로 10년 정도 되는 유학생활을 정리하고 한국으로 돌아온 후에도 축구는 그에게 꼬리표처럼 따라붙었다. 축구 에이전트 회사를 창업했다 2년 만에 사업을 정리했고 2011년 하반기부터 sky Sports에서 스페인 프로축구 리그인 라리가 중계를 시작했다. 그 즈음 이투데이에서 스포츠팀을 꾸리는 데 기반을 마련해달라는 연락이 왔다. 그는 중계에 대해 회사에 양해를 구하고 정식 기자 명함을 받아들었다. 


기자 업무와 중계를 병행하는 것은 생각만큼 쉽지 않았다. 업무시간이 겹치지는 않았지만 주말 시도 때도 없이 걸리는 중계 업무를 소화해야 했다. 밤 11시, 새벽 2시, 4시. 현지 시간에 따라 달라지는 유럽 축구 리그를 그는 3년 동안 쉬지 않고 매주 중계했다. 그래도 기자라 도움이 되는 점이 많았다. 스포츠 기자이다 보니 다른 종목과 비교도 가능할뿐더러 기자라서 들을 수 있는 뒷얘기들로 풍부한 정보를 시청자들에게 전달할 수 있었다. 


그러나 해설위원은 아무나 하는 것은 아니었다. 달변가가 아닌 그에게 쉬는 시간 없이 말해야 하는 축구 중계는 처음에는 불가능에 가까운 일이었다. 게다가 낮은 목소리와 필요한 말만 하는 스타일 때문에 지적도 많이 받았다. “새벽에 축구를 보는 사람들이 집중할 수 있도록 목소리를 크고 활발하게 하라는 충고가 많았어요. 지금의 아내가 모니터링을 정말 많이 해줬죠. 덕분에 지금은 그나마 많이 나아졌어요.”


그는 해설위원을 하면서 욕심이 자꾸 생긴다고 말했다. “처음에 라리가 해설을 할 때는 모르는 게 너무 많아서 힘들었어요. 분데스리가 중계를 너무 하고 싶었죠. 1년 후 기가 막히게 제가 일하는 곳에서 분데스리가 중계권을 땄어요. 그 다음에는 바이에른 뮌헨과 도르트문트의 빅게임 해설을 하고 싶었죠. 2년을 기다려 지난 시즌 처음 할 수 있었어요. 이제는 챔피언스리그 결승전 해설을 하고 싶은데 그건 아마 안 될 것 같아요.(웃음)”


사실 그에게는 더 큰 꿈이 있다. 언젠가 독일로 다시 돌아가 축구 전문지에서 일하는 것이다. “독일에는 굉장히 권위 있는 스포츠 잡지들이 많아요. 40대의 신입을 받아줄 지는 모르겠지만 또 운명처럼 이뤄질 수도 있지 않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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