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0만명 반정부 시위 브라질, 개혁이 필요한 이유

[글로벌 리포트 | 남미] 김재순 연합뉴스 상파울루 특파원

▲김재순 연합뉴스 상파울루 특파원

브라질은 1980년대 중반 역사상 가장 위대한 시민운동을 경험한다. 대략 1983년부터 시작된 민주화 운동 ‘지레타스 자(Diretas ja, ‘지금 당장 직접선거를’이라는 뜻)’는 대통령 직선제를 요구했다. 1984년 1월25일 상파울루 시 탄생 430주년을 맞아 남미 가톨릭 성지의 하나인 세(Se) 성당 앞 광장에 모인 수십만 명의 시민은 민주주의 회복과 대통령 직선제를 한 목소리로 요구했다.


국민의 민주화 열망에 밀린 군사독재정권은 민정 이양을 약속했고, 정치권은 제헌 의회를 구성해 민주 헌법을 제정했다. 1985년 3월15일 간접선거로 대통령에 당선된 탄크레두 네비스가 갑작스럽게 사망하고 대신 대통령에 취임한 주제 사르네이가 민주주의 회복을 선언하면서 1964년부터 시작된 군사정권은 마침내 21년 만에 종지부를 찍었다.


1992년에는 시민운동이 비리 의혹에 휩싸인 대통령을 끌어내렸다. 군사정권 종식 이후 처음으로 직접선거로 선출된 페르난두 콜로르 지 멜루 당시 대통령은 측근 비리에 연루된 의혹을 받고 있었고, 대규모 시위가 계속되자 의회는 결국 콜로르를 탄핵했다.


브라질 사회는 2013년 6월 대중교통요금 인상에 반대하는 시위가 부패·비리 척결과 공공 서비스 개선, 복지와 교육에 대한 투자 확대 등을 요구하는 시민운동으로 번지면서 한바탕 몸살을 앓았다.


시위는 정부가 2014년 월드컵을 개최하는 데 막대한 돈을 쓰면서 정작 국민 생활에 필요한 분야에는 투자를 외면하고 있다는 불만에서 비롯됐다. 초기에 2000∼3000명에 불과했던 시위대는 시간이 흐르면서 100만명을 넘었다. 콜로르 탄핵을 끌어낸 1992년 시위 이후 21년 만에 가장 큰 규모였다.


그로부터 2년이 채 되지 않아 브라질은 또다시 대규모 시위 분위기에 휩싸이고 있다. 지난 15일 전국의 주요 도시에서 벌어진 반정부 시위에 최대 180만명이 참가했다. 최대 도시 상파울루에서만 100만명 가까운 인파가 거리를 가득 메웠다. 시위대는 비리 척결과 노동자당 정권 퇴진, 호세프 대통령 탄핵 등을 촉구했다.


이번엔 브라질 최대 기업인 국영에너지회사 페트로브라스 비리 스캔들이 시위의 도화선이 됐다. 대형 건설회사들이 페트로브라스에 장비를 납품하거나 정유소 건설 사업 등을 수주하는 과정에서 막대한 뇌물이 오갔고, 이 가운데 일부는 돈세탁을 거쳐 정치권에 흘러들어 간 것으로 드러났다.


시위가 예상했던 것보다 대규모로 진행되자 법무장관과 대통령실장은 긴급 기자회견을 열어 비리 척결 노력과 비리 연루자에 대한 강력한 처벌을 약속했다. 정치인에 대한 기업의 후원금 제공을 제한해 비리의 원천을 차단하도록 노력하겠다는 말도 했다. 국민과 언제든 대화할 준비가 돼 있으며 반대 의견에도 귀를 열어놓고 있다며 소통 노력도 강조했다.


시위가 민주주의 회복 선언이 나온 지 꼭 30년이 되는 날에 벌어졌다는 사실은 브라질 사회에 적지 않은 의미를 던진다. 브라질의 시민운동이 30년 전 이날 민주화를 이뤄냈다면, 2015년 이날은 뿌리깊은 부패·비리와 기득권층의 유전무죄 관행에 엄중한 경고를 보낸 것이다.


이번 시위의 원인이 된 페트로브라스 비리 스캔들은 2003년부터 시작된 브라질 중도좌파 정권을 13년 만에 최대 위기로 몰아넣고 있다. 작년 대선에서 어렵게 재선에 성공하고 올해 초 2기 정권을 출범시킨 호세프 대통령은 부패·비리의 고리를 끊어내고 이른바 ‘처벌받지 않는 권력’을 하나씩 없애야 하는 과제를 안게 됐다.


미국 워싱턴에 본부를 둔 연구기관인 ‘미주 대화(Inter-American Dialogue)’의 명예소장이자 브라질 전문가인 피터 하킴은 호세프에게 ‘개혁 대통령’이 되라고 주문했다. 현재의 위기를 벗어날 수 있는 돌파구를 정치·경제·사회 전 분야의 개혁에서 찾으라는 말이다. 집권 이후 두 차례 대규모 시위를 경험한 호세프 대통령이 어떤 해법으로 국민의 열망을 충족시킬 지 주목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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