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문쟁이를 벗어나야죠. 디지털은 가능성이 많거든요"

[기자 25시](20) 한겨레 디지털콘텐츠팀 이재훈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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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슈 전달 ‘속도전’보다 전체 맥락 이해할 수 있는 ‘친절한 뉴스’ 중점
이미 공개된 내용이라도 마구잡이 인용은 안해
온라인에선 매체 파워 무용지물…새로운 기사 브랜드 만들어야
 


아침에 눈을 떠서 저녁에 잠들 때까지 그의 세상은 네모난 사각 창 속에 있다. 24시간 살아 움직이는 온라인 ‘현장’을 놓치지 않기 위해 침대 머리맡까지 그의 손에서 휴대전화가 떨어질 새가 없다. 지난 12일 한겨레 7층 편집국. 고요한 아침을 가장 먼저 깨운 건 디지털 부문 기자와 직원들이었다. 디지털콘텐츠팀에서 ‘디지털 퍼스트’의 최전선에 선 이재훈 기자도 그곳에 있었다. 2013년 9월 SNS팀에서 그는 한겨레 페이스북 페이지 ‘좋아요’를 1년 새 2만명에서 13만명으로 늘리는 데 기여했다. 1년7개월째 디지털라이터. 현재는 ‘친절한’ 콘텐츠를 담아낼 다양한 ‘그릇’ 만들기에 전념하고 있다.


2014년 12월13일. 새벽 4시15분. 경기 평택시 칠괴동 쌍용차 평택공장 70m 높이의 굴뚝에 두 명의 노동자가 올랐다. 쌍용자동차 해고자인 김정욱 사무국장과 이창근 정책기획실장이었다. 해고자 복직을 요구하며 평택공장 고공농성에 돌입한 그들. 아직 동이 트기 전 어둠이 깔린 새벽, 한겨레는 이들의 ‘벼랑 끝 선택’을 온라인을 통해 세상에 가장 먼저 알렸다.


“이재훈 기자가 써줬으면 좋겠어요.” 전날 밤 한통의 전화가 울렸다. 이창근 실장이었다. “내일 굴뚝에 올라가려고 한다”는 수화기 너머 목소리에 이 기자가 되물었다. “네? 굴뚝이요?”


말리고 싶었지만 차마 말릴 수가 없었다. 2009년 쌍용차 옥쇄파업 이후 그들의 힘겨운 싸움을 쭉 지켜봤던 만큼 굴뚝 계단을 오르는 그 지푸라기 심정을 알고 있었다. 할 수 있는 건 기사로 응원하는 것 뿐. 고공 농성 속보를 홈페이지와 SNS 등을 통해 전했고 유명 인사들과 시민들의 릴레이 지지를 온라인을 통해 꾸준히 보도했다.


12월18일. 가수 이효리씨의 트위터가 화제에 올랐다. “쌍용차 해고자들이 복직만 된다면 비키니 입고 춤이라도 추고 싶다”는 글이었다. 이 기자는 궁금했다. ‘노란 봉투의 기적’에 참여하는 등 쌍용차 해고자 문제에 관심이 있다는 것은 알았지만 고공농성은 달랐다. “적극적 투쟁 행위잖아요. 연예인의 지지선언이 쉽지 않다고 생각했죠. 생각이 궁금했어요.”


▲이재훈 기자가 지난 12일 서울 마포구 한겨레 사옥 5층 방송스튜디오에서 디지털콘텐츠팀 팟캐스트 ‘디스팩트’의 두 번째 녹음을 하고 있다.

트위터를 통해 이효리씨와 이 실장이 종종 이야기한다는 사실을 알고 있던 이 기자는 이 실장을 통해 인터뷰를 추진했다. 그리고 다음날인 19일 “삶의 이야기를 듣겠노라” 약속하고 제주도로 한걸음에 달려갔다. 이씨의 어린 시절부터 제주도 생활, 고공농성 응원까지 진솔한 이야기를 나눈 인터뷰가 공개된 22일 SNS는 들썩였다. 제주도 이주 후 첫 일간지 인터뷰였다.


“한겨레의 ‘디지털 퍼스트’는 온라인에서 매체의 신뢰도를 어떻게 유지하는가의 문제다.”
판에 박힌 온라인 기사와는 거리가 멀다. 홈페이지 페이지뷰(PV)를 확대 재생산하기 위한 자극적이고 선정적인 제목, 이른바 ‘낚시’성 기사에 독자들의 피로감은 높다. 온라인 검색어 기사는 “전혀 쓰지 않는다”는 이 기자. 단순히 속도전으로 이슈를 전하기보다 한 걸음 더 들어간 뉴스를 지향한다. “이슈의 A부터 Z까지 알 수 있게 ‘친절한’ 뉴스를 전하려고 해요. 독자들이 한 번의 클릭으로도 이슈의 전체 맥락을 이해할 수 있도록 기사의 효용과 정보 값을 높이자는 취지죠.”


지난해 10월 조직개편에서 신설된 디지털콘텐츠팀이 내놓은 온라인 맞춤형 콘텐츠가 대표주자다. 이슈의 흐름을 세밀하게 정리해주는 ‘더(the) 친절한 기자’와 불충분하거나 잘못된 뉴스를 애프터서비스 하듯 설명해주는 ‘뉴스AS’다. “‘온라인=짧은 기사’라는 방정식은 오해”라며 “긴 기사도 충분히 읽는다. 넘쳐나는 정보에 이용자들은 정리된 뉴스를 원한다”고 이 기자는 설명했다.


온라인에서 아무리 뜨거워도 철칙은 분명하다. 공개된 내용이라 해도 마구잡이 인용에 당사자들은 불편하다. “확인을 하지 않고 쓰는 기사는 없어요. 허락 없이 무단으로 퍼오는 것도 금하고 있죠. 조금 느리더라도 추가 취재를 하고 당사자에게 전재 허락을 구해요. 공익적 목적이어도 홈페이지 PV와 연관된다면 허락을 받는 것이 저널리즘의 윤리죠.”


온라인에서 매체의 브랜드 파워는 더 이상 보장된 카드가 아니다. 언론 불신 속에 수많은 기사들과 겨루고 살아남아야 하는 상황에선 기사 브랜드로 승부할 수밖에 없다. “사람들은 온라인에서 한겨레라서, 조선일보라서 기사를 보지 않아요. 그래서 디지털 콘텐츠에 제목을 달고 새로운 브랜드와 유형을 만드는 거죠. 일례로 ‘더 친절한 기자’가 충실한 내용과 신뢰할 수 있는 기사라고 각인된다면 한 번 더 클릭해볼 수 있는 가능성이 커지죠. 하지만 매번 별 특색 없이 올라간다면 과연 클릭을 할까요. 실제 읽지 않는 이들이 더 많죠.” 다만 콘텐츠는 충실하되 접근은 가볍게 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콘텐츠팀 팟캐스트 ‘디스팩트’ 출시
“안녕하세요. 한겨레가 만드는 정통 시사 팟캐스트 ‘디스팩트’ 시작합니다~”(이재훈)
지난 12일 오후 1시58분45초. 한겨레 5층 방송 스튜디오. ‘ON AIR’에 빨간불이 켜졌다. 디지털콘텐츠팀이 지난 6일 출시한 팟캐스트 ‘디스팩트’의 두 번째 녹음 현장. 이 기자와 콘텐츠팀 박현철, 김원철, 박수진 기자가 함께 자리했다. 평창 동계올림픽 분산 개최를 보도한 토요판팀의 윤형중 기자도 첫 게스트로 초대됐다.


“지난주에 디스팩트가 첫 방을 했어요. 폭발적인 반응을 일으켰다는데 맞나요?”(이재훈)
“엄청난(?) 다운로드수를 기록하면서 폭발적이었죠. 확인은 직접 들어가서 하시죠.(웃음)”(김원철)
“혹자는 (사투리 때문에)왜 영남방송을 하고 있냐고 하던데요.(웃음)”(박현철)

 

▲한겨레 디지털콘텐츠팀 기자들이 12일 5층 방송스튜디오에서 팟캐스트 '디스팩트'를 녹음하고 있다. 이날 녹음된 내용들은 13일과 16일, 18일 주3회 방송됐다. (맨 오른쪽부터 시계방향으로)박수진 기자, 김원철 기자, 토요판팀 윤형중 기자, 박현철 기자, 이재훈 기자.


이날 주제는 디지털콘텐츠팀이 단독 보도한 단국대 신입생 행동규정 파문과 토요판팀에서 심층 리포트로 다룬 평창 동계올림픽 분산 개최, 그리고 박주영 선수의 FC서울 입단 이슈였다. 정해진 멘트는 없었다. 사회를 맡은 이 기자가 오전에 간단한 소개말과 질문을 적은 콘티를 작성했을 뿐. “많은 것을 정해놓으면 딱딱해지죠. 기자들은 즉석에서 자연스럽게 말해요.” 2시간여의 녹음은 시종일관 화기애애했다. 하지만 막 첫 걸음을 뗀 만큼 서로가 수정할 내용은 곧바로 제기했다.


디스팩트는 ‘이것이 팩트다’와 ‘팩트를 디스한다’는 두 가지 의미를 담고 있다. 이 기자가 물음을 던졌다. “기자들이 취재현장에서 팩트를 수집하고 보도하는데 정말 모든 사안을 알고 있을까요? 기자들은 절대 진실을 알 수 없어요. 다만 가까이 다가갈 뿐이죠. 혹자는 자기주장이 팩트라며 진리라고 하지만 경계해야 하죠. 기자의 건강한 주관과 사회적 팩트를 어떻게 결합하느냐가 중요하죠.”


팟캐스트는 당초 ‘더 친절한 기자들’의 오디오판으로 제안됐다. 추가 노력과 비용이 들지 않고 또 하나의 콘텐츠가 될 수 있다는 점에서 고민보다는 일단 뛰어들었다. 오디오가 사용자 편의에 더 적합하다는 판단도 있었다. “모바일에서 동영상의 뉴스콘텐츠는 점점 찾지 않고 있어요. SBS가 취재파일이나 카드뉴스 등 새로운 시도를 하는 것도 이를 방증하죠. 한때는 신방 융합을 강조했지만 이제는 영상보다 간편하고 부담이 덜한 오디오를 찾는 거죠.”


주간이던 방송은 금, 월, 수요일 주3회로 전환했다. 녹음을 마치고 평가를 묻자 이 기자는 “만족스러웠다”며 “70점 이상”이라고 웃었다. 4시13분. 페북에는 “녹음을 마치고 왔다”며 “윤형중 기자는 ‘가리왕산, 아직 모근은 남아 있다’는 명언을 남겼다”며 녹음 현장 사진을 투척했다.


팟캐스트가 가능했던 것도 인력의 다양화였다. 방송팀에서 근무했던 박수진 기자가 편집을 담당했다. 팀에는 취재기자와 그래픽 디자이너 등 9명의 팀원들이 있다. “팀별 협업모델은 변화에 대응이 늦죠. 개발 인력 등 다양한 역할의 인력이 필요해요.”


오전에는 아침 보고를 올리고 콘텐츠 유형 다양화 기획안을 작성했다. 사실 이 기자의 일은 출근길부터 시작이다. 30여분의 짧은 출근 시간에 포털의 아침 조간 헤드라인 모아보기를 통해 주요 신문의 제목을 훑고, 전날 밤 화제가 된 이슈를 실시간 파급력이 큰 트위터를 통해 살펴본다. 회사에 도착해서는 페이스북과 SLR클럽, 불펜 등 각종 커뮤니티 사이트의 반응을 점검한다.


▲이재훈 기자(오른쪽 세 번째)가 같은 팀 김원철 기자와 이날 새로 선보인 디지털 콘텐츠 ‘한 장의 지식’과 관련해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콘텐츠팀은 이날 새 포맷인 ‘한 장의 지식’도 선보였다. 뉴스에서 쓰이는 어려운 개념을 한 장의 사진과 그래픽으로 사전처럼 명료하게 설명해주는 콘텐츠다.


새로운 실험을 하는 콘텐츠팀의 ‘아이디어’는 일상에서 비롯된다. 매주 수요일마다 정기회의를 하지만 발제를 위한 자리가 아니다. 초기엔 아이템을 내기도 했지만 오히려 부담만 컸다. “매일 얼굴을 맞대고 있는데 자유롭게 브레인스토밍을 하는 거죠. 잡담하면서 나오는 좋은 아이디어가 더 많아요.(웃음)” 기자 개인이 아닌 팀 보고 체계로 바꾼 것도 같은 이유였다.

디지털퍼스트 목적 아닌 ‘도구’로
“디지털 퍼스트는 목적이 아니라 ‘도구’가 돼야 해요. 디지털을 도구로 자신의 콘텐츠를 더 풍부하게 전달하는 거죠.”


디지털은 기자들의 가능성을 실험할 수 있는 장이다. 콘텐츠와 플랫폼을 동시에 개발하면서 자신의 기사를 쓸 수도, 다른 이의 기사를 돋보이게 할 수도 있는 자리다. 이 기자는 “다양한 호기심을 갖고 있는 기자들은 많은 가능성이 있다”면서 “다양한 방법으로 독자들과 호흡할 수 있음에도 신문, 방송 하나에만 종속된 것은 능력을 사장시키는 것”이라고 꼬집었다.


버려지는 ‘정보’가 새롭게 탄생할 수 있다. “기자들이 100을 취재하면 신문에 쓸 수 있는 팩트는 50도 안돼요. 중요한 자료인데 핵심만 쓰고 버려져 안타깝죠. 기자들이 갖고 있는 소중한 정보를 다양한 방법으로 많은 이들에게 알리고 싶다는 생각을 하는 것이 중요한 변화의 시작이 될 수 있어요.”


디지털 저널리스트로서 보람을 물었다. 돌아온 답은 사람들 ‘반응’이었다. SNS 댓글이나 리트윗 횟수로 반응을 즉각 알 수 있다. 더 친절한 기자들이 나왔을 때도 “이런 기사가 필요하다”며 큰 호응을 얻었다. “출입처에 있으면 점점 공급자 위주의 보도를 하게 되죠. 디지털은 다양한 이슈를 다룰 수 있고 독자들이 원하는 기사를 알 수 있죠. 항상 긴장관계를 갖고 수용자와 적극적으로 소통할 수 있다는 매력이 있어요.”


기억나는 기사로 이 기자는 지난해 12월 ‘동성애를 지지하지 않는 자유가 성립하지 않는 이유’를 꼽았다. 당시 박원순 서울시장의 동성애를 지지할 수 없다는 발언이 성립하지 않는 이유를 정리한 기사였다. “오른손잡이와 왼손잡이가 있는 것처럼 성소수자도 그 자체로 존재하는 거죠. 지지 여부를 따질 문제가 아니에요. 논리를 쉽게 설명하고 전달하는 게 저널리즘 의무라고 생각했죠.”


SNS 댓글은 물론 메일도 쏟아졌다. 미국의 한 목사는 교회 내 동성애를 합법화하는 작업을 추진하는데 기사로 사람들의 이해를 도왔다고 감사했다. 당시 기사의 한 부분에 의문이 남는다는 메일을 보낸 한 독자는 네 달 만에 수긍이 됐다고 며칠 전 답신이 왔다. “결국 ‘스테디’하게 읽힐 수 있는 콘텐츠가 필요하다는 거죠. 다양한 이슈와 밀도 있는 취재, 친절한 작법으로 풀어 쓰는 기사요. 양질의 콘텐츠를 생산하면 사람들이 자발적으로 전파하고 공유하는 거예요.”

 

▲이재훈 기자는 모니터 속 온라인 '세상'을 늘 주시하고 있다. 그곳에서 벌어지는 이슈들에 주목하며 이용자들의 요구와 반응에 발빠르게 대응하며 디지털에 특화된 콘텐츠를 생산해낸다.


하지만 디지털 세상에서 겪는 정신적 스트레스도 만만치 않다. 휴대전화와 손의 일심동체는 어느새 ‘버릇’이 됐다. “육체적인 것보다 정신적으로 피곤하죠. SNS에 논쟁이 아닌 혐오 수준의 얘기가 오갈 때, 맥락을 왜곡한 비난과 확대재생산 등 피로도가 높죠.” 그는 일주일 중 3일 저녁을 SNS 관리를 맡고 있다. “브랜드 이미지 관리가 중요하다”는 이 기자는 “SNS에서 친근함을 추구하는 언론사도 있지만 저는 정통성 있는 언론의 모습을 보여주려고 한다. 드라이하고 정제된 표현을 쓴다”고 말했다.


그의 머릿속을 차지하고 있는 고민은 포털에 대한 의존도다. 작년 초만 해도 페북이 확장되면서 SNS가 대안이 될 수 있겠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페북 도달률이 점점 떨어지고 상업적 흐름이 나타나면서 “피로도가 높아졌다”고 지적했다. “결국 다시 포털의 종속도가 커지고, 한겨레 자체 PV나 디지털 영향력이 얼마나 유지될까 의문스럽죠.” 한겨레는 3월 말 홈페이지 개편이 예정돼 있다.


장기적으로는 모든 기자들이 디지털 저널리스트로 변신해야 한다고 했다. “신문사가 신문만 만들어서는 생존할 수 없다”며 “디지털이 첨병 역할을 할 수 있다”는 이 기자. 독자들이 줄어들며 당장 몇 년 뒤가 위태로울 수 있다. “이제 ‘신문쟁이’에서 벗어나야죠. 기자들이 기사를 모두 온라인에 출고하고 신문, 모바일, PC, 잡지 등 각 플랫폼에 맞춰 싣는 거죠. 물론 깊이 있는 취재가 전제에요. 디지털은 새롭고 신문은 낡았다는 뜻이 아니에요. 가치를 확대 재생산하자는 겁니다.”


기자로서의 계획도 꺼냈다. 13년차인 그는 우선 디지털 퍼스트에 올인해 다른 동료들이 친근하게 디지털 콘텐츠를 생산할 수 있도록 하겠다고 밝혔다. 하지만 “디지털에 관심이 많아지면서 언젠가 자리를 내줘야할 것”이라고 웃었다. 주요 관심 분야인 노동과 이주민, 교육 관련으로 돌아가고픈 생각도 있지만 그래도 디지털에 대한 ‘애정’으로 “다시 돌아와야 한다는 생각은 있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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