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라마 '펀치'와 '벤츠 여검사'

[스페셜리스트 | 법조] 박민제 중앙일보 기자

  • 페이스북
  • 트위치

▲박민제 중앙일보 기자

“법은 하나야. 나한테도, 당신한테도….” 지난 달 종영한 드라마 ‘펀치’에 나오는 대사입니다. 늘 정의로운 말을 입에서 쏟아내지만 하는 행동은 자신이 거악(巨惡)으로 규정한 이태준 검찰총장(조재현 분)보다 더하면 더했지 못할게 없었던 윤지숙 법무부 장관(최명길 분)의 말입니다. 온갖 악행을 일삼은 탓에 결국 드라마 말미에 자신이 했던 대사대로 법의 처분을 받아 몰락하는 그녀의 모습을 보며 많은 시청자들이 통쾌해했습니다. 


이 드라마는 서초동 법조단지에서도 제법 반향이 컸습니다. 검사들은 물론이고 판사·변호사들의 술자리에서도 자주 언급되곤 했죠. 한 전직 고위 법조인은 자신이 사법연수원 교수 시절 가르쳤던 기수 후배들과 만난 식사 자리에 참석한 검사들에게 “니들은 반성해”라고 얘기했다고 합니다. 드라마 속에 나오는 검찰 수뇌부의 부정적 모습을 빗대서 하는 농담이었죠. 


법조인들은 이 드라마에 대해 대체로 ‘만화’같은 이야기라는 반응을 보입니다. 실제 존재하는 대검찰청 차장, 반부패부장, 수사지휘과장, 수사지원과장 등의 직책을 가져다 쓰긴 했지만 내용 면에서는 대부분 허구라는 얘기입니다. 세부적인 면에서도 실제 검찰의 모습과 많이 다르기는 합니다. 37세로 나오는 주인공 박정환 검사가 대검 수사지휘과장을 맡는 점에서부터 검사들이 감옥을 제 집 드나들듯이 갔다가 나와서 다시 중요직책을 맡는 등 허무맹랑한 부분이 많습니다. 검찰총장에게 90도로 절하며 허리도 피지 못하는 간부들과 압수수색하면서 핵심 정보가 담긴 USB를 주인공들이 사적 용도로 빼돌리는 장면을 묘사하는 대목에선 좀 과하다 싶은 생각도 들었습니다. 실제 일부 검사들은 검찰총장을 수백억원씩 받는 범죄자로 묘사하는 데에 격한 반응을 보이기도 했습니다. 


그런데 일반인들의 반응은 다릅니다. 이 드라마에 대해 과장됐다고는 해도 전부 거짓은 아닐 것이라는 평이 많습니다. 말하자면 저 정도까지는 아니더라도 어느 정도 개연성은 있을 것이라는 판단인 겁니다. 슬프게도 이 같은 반응은 처음이 아닙니다. 지난해만 해도 ‘골든크로스’니 ‘개과천선’이니 하는 드라마들이 인기를 얻었고 판·검사들의 이미지는 하락하기만 했습니다.


왜 이런 일들이 반복되는 걸까요. 사실 근 몇 년간 법조 출입을 하면서 만나본 판·검사들의 모습은 정반대였습니다. 자신의 업무에 파묻혀 멸사봉공(滅私奉公)하며 범죄자들을 잡기 위해, 정확한 판결을 내리기 위해 치열하게 매진하는 이들이 절대 다수라고 생각합니다. ‘정치판결’이니 ‘기획수사’니 하며 장난질을 치는 사람들이 간혹 나오기는 해도 드문 사례라고 봅니다.


이 같은 법조인에 대한 현실과 이미지 괴리의 가장 큰 원인은 국민들에게 강한 충격을 줬던 몇몇 사건들을 제대로 처리하지 못한 영향이 크다고 봅니다. 최근에만 해도 ‘벤츠 여검사’에 대해 대법원은 사랑의 정표라며 무죄를 선고했습니다. 대법원의 법리적 판단도 일리는 있지만 언제든지 이해관계인이 될 수 있는 변호사에게 금품을 계속 받은 검사를 무죄라고 본 것은 솔직히 납득하기 힘든 부분입니다. 사채왕의 돈을 받아 구속 기소된 최모 판사 건 처리도 그렇습니다. 비위사실이 진작부터 공개됐지만 대법원은 ‘사실무근’이라고만 주장했고 검찰도 1년간 제대로 수사하지 않고 방치했었습니다. 


결국 이런 중요한 사건들을 제대로 처리하지 못하다 보니 허무맹랑한 드라마에도 국민들은 ‘리얼리티’를 느끼며 공감하게 된 것은 아닐까요. 억울해할 수도 있겠지만 결국 ‘펀치’가 구현한 허구적 세계에 개연성이라는 날개를 달아 준 것은 법원과 검찰 자신들의 역할이 가장 컸던 것 같습니다.



박민제 중앙일보 기자의 전체기사 보기

배너

많이 읽은 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