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류(韓流)'가 '한류(漢流)' 될 수도…내부 경쟁력부터 키워야"

한중FTA 방송환경 영향 토론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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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중FTA가 지난해 11월 실질적으로 타결된데 이어 지난 2월25일 가서명을 완료했다. 한류 시장의 중심이 일본에서 중국으로 넘어가고, 중국 자본이 국내 방송 시장에 적극 진출하고 있는 상황에서 한‧중FTA가 방송 산업에 미칠 영향을 두고 관심이 뜨겁다.


한중 양국은 드라마, 애니메이션, 다큐멘터리 공동제작 협정에 협의 또는 고려하는데 동의했다. 사실 중국과의 공동제작 자체가 새삼스러운 일은 아니다. 이미 중국자본은 MBC 드라마 ‘킬미 힐미’ 공동제작에 참여하고, 대형 외주제작사 초록뱀미디어를 인수하는 등 국내 방송콘텐츠 시장에 깊숙이 침투한 상황이다. 주목할 것은 국내 방송시장은 사실상 개방된 상태인데, 중국은 이념적 특성상 자국 산업 보호 조치를 병행하고 있다는 점이다. 이 같은 규제의 비대칭성은 한‧중FTA를 이해하는데 필요한 중요한 키워드 중 하나다.


그렇다면 한‧중FTA는 우리 정부의 주장대로 ‘장밋빛 미래’를 가져올까. 6일 ‘한중FTA에 따른 방송환경 개방의 영향과 전망’을 주제로 국회에서 열린 토론회에선 “위기이자 기회다”, “100% 위기다” 등으로 전망이 엇갈렸다. 분명한 건 공동의 위기의식을 갖고 후속 협상을 준비해야 한다는 지적이다. 한‧중FTA에 대한 준비보다 국내 방송 콘텐츠 산업의 경쟁력을 키우기 위한 정책적 논의가 필요하다는 목소리도 나왔다.


▲‘한중FTA에 따른 방송환경 개방의 영향과 전망’을 주제로 한 토론회가 언론개혁시민연대, 공공미디어연구소, 설훈 국회의원, 우상호 국회의원 공동 주최로 6일 국회 의원회관 제9간담회실에서 열렸다.

한‧중FTA의 사회문화적 파급효과와 대응방안을 살펴본 박상호 공공미디어연구소 연구팀장은 “중국 자본의 한국 방송산업 투자는 단기적으로 배우, PD, 작가 등 특정 직업군과 제작사 등의 이익을 가져올 수 있지만, 장기적으로 우리 제작 환경과 자체 경쟁력이 뿌리채 흔들 수 있다는 위기감뿐만 아니라 중국을 기반으로 우리의 인력으로 만든 방송콘텐츠가 국내에 역수입되는 상황을 조만간 맞을 수 있다”고 우려했다. ‘한류(韓流)’가 중화의 ‘한류(漢流)’로 바뀔 위기가 도래할 수 있다는 것이다.


문화적인 측면에서 국내 방송 콘텐츠 산업의 경쟁력은 중국보다 우위에 있는 것으로 평가된다. 문제는 자본 경쟁력이다. 중국의 방송 콘텐츠 시장 규모는 20조원으로 국내 시장 규모의 3배가량 큰 것으로 추정된다. 드라마 제작의 경우 중국이 제시하는 연출료와 작가료는 국내보다 2~3배 이상 높고, 예능 프로그램 회당 제작비는 약 10배에 달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최근엔 이런 ‘차이나머니’를 앞세워 한국의 유명 배우와 연출진 등을 섭외하거나 아예 한국 제작시스템을 이전시켜 방송 콘텐츠를 제작하는 사례가 늘고 있다. 박상호 팀장은 “중국의 거대 자본에 의해서 우리나라가 방송콘텐츠 제작을 위한 OEM 국가로 전락할 수 있다”고 지적했다.


이종관 미디어미래연구소 정책연구실장도 “중국 자본이 많이 투입될 경우 우리 제작사 입장에선 중국 클라이언트의 요구에 따라 콘텐츠를 만들어줄 수밖에 없게 된다”며 “콘텐츠 경쟁력이 빠른 속도로 약화되고 우리의 제작 인프라가 무너지거나 공동화 될 수 있다”고 전망했다. 이 실장은 “한‧중FTA는 위기이자 기회일 수 있지만, 개인적으로는 6대4 정도로 위기를 강조하고 싶다. 위기의식이 존재해야 신중하고 전략적인 접근도 가능하다”며 후속협상 과정에서의 신중한 대응을 주문했다.


핵심은 콘텐츠 제작 역량을 확보하는 것이다. 이 실장은 “선 경쟁력 강화 후 개방이라는 큰 틀의 정책 기조를 유지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는 “한류의 발원지인 지상파 방송사와 외주제작사에 대해 중국 자본에 흔들리지 않고 고유의 콘텐츠 경쟁력을 어떻게 유지할 수 있을지, 방송발전기금 지원 규모를 확대한다거나 별도 정책적인 조치를 취할 것인지 신중하게 고민해야 한다”고 말했다.


박상호 팀장도 “대외적인 한‧중 FTA 후속 협상에 대한 준비보다 대내적으로 우리나라의 방송콘텐츠 산업의 활성화를 위한 생태계 조성을 위한 법‧제도의 평가와 개선방향에 대한 논의가 더 절실하다”고 밝혔다.


지상파를 대표해 나온 이선의 한국방송협회 정책위원은 “방송 콘텐츠 제작역량을 키우기 위해 지상파와 외주사가 상생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 정책위원은 “대내적 경쟁력을 공고히 해 중국발 쓰나미를 막아야 한다면 지상파와 외주사가 신뢰를 바탕으로 공동 노력해야 한다”며 이 같이 말했다.


그러나 한‧중FTA에 따른 방송시장 개방에 대응하기 위한 차원에서 정치권과 지상파 방송사가 내놓은 대안은 외주사와의 ‘상생’을 지향하기 보다는 갈등만 키웠다. 조해진 새누리당 의원이 지난해 11월 발의한 외주제작 의무편성 비율에서 특수관계자가 제작한 프로그램의 편성 제한을 폐지하는 방송법 개정안이 불씨가 됐다.


박상주 드라마제작사협회 사무국장은 “중국은 자국 콘텐츠를 보호하기 위해 한국 콘텐츠의 중국 시장 잠식을 막으려고 노력하는데 우리 상황은 반대”라며 “한류를 기획하고 제작했던 외주제작사 말살 정책을 국회와 정부가 펼치고 있다”고 주장했다. 박 사무국장은 특수관계자 조항을 폐지하는 방송법 개정안은 방송사가 자회사나 계열사에 일감을 몰아주는 법안이 될 것이라고 강도 높게 비판했다.


그러면서 “중국 대자본에 대한 우려는 외부가 아닌 내부에서 찾아야 한다”며 “상생 법안을 꼭 만들어 달라”고 당부했다.


배대식 독립제작사협회 정책실장도 “우리 방송시장 상황을 보면 지상파 스스로의 힘으로 버틸 콘텐츠 제작 역량이 안 되기 때문에 콘텐츠 시장에서 중요한 역할을 하는 외주사에 대한 제도를 제대로 만들지 않고서는 결국 우리끼리 피터지게 싸우다 망할 수도 있다”며 “비정상적인 외주제작 제도를 손질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와 관련 정부 측 대응은 원론적인 수준이긴 했지만 소관 부처 별로 다소 차이를 보였다. 지상파 관리감독 기관인 방송통신위원회 곽진희 편성평가정책과장은 “특수관계자 조항이 폐지되더라도 외주사의 순 외주제작 비율을 안정적으로 보장한다면 큰 우려가 아닐 수 있다”며 “법적으로 순 외주제작 비율을 높이고 외주사와 방송사가 경쟁할 수 있도록 사후규제를 철저히 하겠다”고 사후 제도적인 측면에 방점을 찍었다.


외주제작사를 관할하는 문화체육관광부의 박용철 방송영상광고과장은 “다양하고 창의력 있는 제작사가 시장에 진출해 성장할 수 있는 기본적 기반이 마련되는 게 우선”이라며 “정당하고 공정한 수익 및 저작권 분배가 시장에 정착될 때 중국 시장에 대응하는 우리 시장의 기본적인 체력이 튼튼해진다”며 외주사 지원에 방점을 찍었다. 박 과장은 “방송 영상 콘텐츠 시장에 변화의 물결이 오는 상황에서 대립적, 갈등적으로 접근하기보다 상생할 방안을 머리 맞대고 논의한다면 헤쳐나갈 수 있는 방안이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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