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향 잃은 YTN…젊은 사원들이 미래를 말하다

5일 100여명의 사원 참석한 '소통의 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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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성원들이 가장 원하는 것은 소통이다. 사원들과 소통을 위한 자리를 마련하고, 합리적이고 효율적인 인사를 해 달라. 공정방송위원회와 보도국장 추천제 정상화 등 공정방송을 담보할 시스템이 필요하다. 해직자 문제에도 적극 나서달라.”

 

YTN 차기 사장에 내정된 조준희 전 IBK기업은행장에게 YTN 사원들이 메시지를 띄웠다. 소통에 목말랐던 YTN 입사 3~14년차 ‘젊은 사원들의 모임’은 5일 YTN뉴스퀘어 2층 카페에서 전 사원들과 함께하는 ‘소통의 장’을 열었다. 100여명이 참석한 이날 모임에서 사원들은 2시간 30여분간 연차ㆍ부서ㆍ직종을 떠나 YTN의 현 위기에 대해 허심탄회하게 속내를 털어놓았다. 평소 회사에 대한 생각을 종이에 꼼꼼히 적어와 호소하면서 같거나 다른 생각들을 나란히 펼쳐 보였고 발언이 끝날 때마다 ‘공감’과 ‘격려’의 박수가 터져 나왔다.

 

민감한 이슈를 회피하면서 핵심을 도려내는 보도에 대한 문제가 서문을 열었다. 정치부의 A기자는 “드러내놓고 편향된 보도를 한다기보다 민감한 것을 피해가고 싶어 하는 비겁함이 보인다”며 “최악의 오보는 침묵이라고 했다. 침묵하고 있다가 종편에서 떠들면 한 시간 후에 받아서 쓰는 비참한 상황”이라고 말했다.

 

10년차 B기자도 “과거 경제부에서 정부가 발표한 정책에 대한 시민 반응을 취재했는데 시민들이 부정적인 반응을 보였다고 기사를 쓰지 말라고 하더라”며 “도대체 누구를 위한 보도를 하고 있는지 회의감이 들었다”고 했다. 이어 “지난해 세월호 보도 등 이슈가 터질 때마다 뉴스는 하지만 알맹이가 없다”며 “제가 입사했던 당시 YTN의 화두는 이슈 선점이었다. 하지만 어느 순간 YTN이 만들어내는 이슈가 없다. 거대한 권력과 맞물리는 순간 시민들이 궁금해 하는 뉴스를 하지 못하는 것이 가장 큰 문제”라고 말했다.

 

▲YTN 공채 7~14기 '젊은 사원들의 모임'이 제안한 '소통의 장'이 5일 서울 상암동 YTN뉴스퀘어 2층 카페에서 열렸다.

 

기자들의 무기력, 자기검열에 대한 반성과 함께 보도국 편집회의에 일선 기자들의 의견이 전달될 수 있는 체계가 마련돼야 한다는 제안도 나왔다. 8년차 C기자는 “데스크의 잘못도 있지만 의지가 계속 꺾이면서 기자들이 느슨해진 측면도 없지 않다. 일선 기자들이 치열함을 회복해서 좀 더 현장의 목소리를 강하게 전달하려는 의지가 있어야한다”며 “한 번 더 토론하고 문제를 계속 제기해야한다”고 말했다.

 

7년차 D기자도 “2008년 해직 사태 이후 불신과 반목, 갈등이 심해지면서 노력해도 무슨 소용이냐는 회의감에 선후배할 것 없이 나태해진 면이 있다”며 “열정이 많이 죽었다. 이번 장을 통해 각성하고 우리만의 색깔을 찾아가야 YTN이 설 자리가 있다”고 말했다.

 

보도국 편집회의에 대한 문제도 지적했다. 이틀 연속 사회부와 동일한 내용의 리포트를 작성했다는 A기자는 “가뜩이나 부족한 인력에 똑같은 일을 두 번씩 하게 한다”며 “매일 아침 편집회의를 하고 이슈를 선정할 텐데 얼마나 심도 있게 논의하고 소통하는지 조직 효율성에 회의감이 든다”고 말했다.

 

편집부 E기자도 “이슈에 대한 기획이 너무 약하다”며 “사건이 터지면 당일뿐만 아니라 다음날 아침에도 보도를 해야 하는데 막상 보면 전날 발생기사 밖에 없다. 국부장단 저녁회의에서 다음날 이슈에 대한 대비책을 세워야 하는데 어떤 논의와 지시가 있었는지 알 수가 없다. 정확한 전달이 필요하다. 또 이슈(콘텐츠)가 부족한데 편집부가 취재부서와 협의해 보조하는 차원에서 일부 리포트를 작성하는 것은 어떨까 생각해봤다”고 말했다.

 

보도국장 추천제 부활 등 공정방송 장치 마련해야

 

공정방송을 보장할 장치의 필요성도 제기됐다. 2009년 배석규 사장이 일방적으로 폐지한 보도국장 3배수 추천제와 무기력한 노사 공정방송위원회의 정상화다. 20여년차 F기자는 “능력에 따른 합리적 인사가 아닌 호불호에 따른 사측의 인사 철학이 보도를 망가뜨렸다”며 “편집회의나 이슈 선점 문제는 간부들의 무능 때문이다. 보도국장 추천제를 부활하고 인사 상향 평가 시스템의 견제 기능을 정상화하는 등 구조적으로 공정방송을 할 수 있는 시스템을 마련해야한다”고 말했다.

 

국제부 G기자는 특파원 인사 문제를 제기했다. 이 기자는 “지난해 오보였던 한국의 핵무기 개발 기사 등 특파원들의 보도 질이 얼마나 낯 뜨거운 지 알 수 있다”며 “기사의 질이 타사와 극명하게 대비되는데 정상적인 조직이라면 책임을 물었어야 한다. 경영진이나 보도 책임자들이 선발과정과 운영을 과연 합리적이고 객관적인 기준으로 했는지 의문이 들 수밖에 없다”고 지적했다.

 

실무적인 제안도 나왔다. ‘디지털 퍼스트’를 추구하는 타사들에 비해 홈페이지와 SNS 등에 대한 대처가 미약하다는 지적이다. 3년차 H기자는 “타사는 카드뉴스 등 여러 시도를 하는데 우리는 캡처화면 편집도 눈길을 끌지 못하고 인터넷을 잘 활용하지 못한다”면서 “홈페이지가 SNS와 연계도 안 돼 있고 재미가 없다. 뉴스를 보려 해도 광고가 계속 뜨는데 어느 시청자가 홈페이지에 들어와 뉴스를 클릭하겠는가. 적어도 SNS과 연결되는 뉴스는 광고 없이 바로 접근할 수 있게 해야 한다”고 말했다.

 

반박도 이어졌다. 뉴스제작팀 I기자는 “팀에서 여러 가지 제작을 많이 하고 있지만 시청자나 스마트폰 이용자들을 통해 제대로 소비가 안 되는 상황”이라며 “사실 취재 파트에서도 이런 고민과 역량을 발휘해줘야 하는데 가장 큰 문제는 소통이 안 된다는 것”이라고 꼬집었다. 이어 “개인의 두뇌가 집단지성을 이길 수 없다”며 “각자 일만 하면서 관심이 없는데 스스로 얼마나 치열하게 고민해왔는지 반성하면서 앞으로 전향적인 자세로 했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또다른 기자는 인물 정보 업데이트를 제안했다. 기자들이 만난 취재원 등 인물들의 전화번호와 간략한 특징 등을 업데이트해 취재 활성화와 내부 정보망을 두텁게 할 수 있다는 것. 9년차 J기자는 “제가 입사했을 당시엔 했는데 지금 경찰팀 후배들에게 물어보니 배운 적이 없다고 했다”며 “언론사에 정보가 매우 중요한데 지금부터 쌓아 가면 앞으로 20년 후 탄탄한 정보를 구축할 수 있을 것”이라고 했다.

 

▲YTN 한 사원이 회사가 처한 경쟁력 위기와 관련해 자신의 의견을 말하고 있다.

 

기사에 따른 소송에 대한 회사 법무팀장의 ‘무성의’한 태도도 도마에 올랐다. 5년차 K기자는 “2013년에 쓴 기사와 관련해 회사와 함께 소송을 당했는데 법무팀의 지원이 제대로 이뤄지지 않았다”며 “법정에 제가 제공한 녹취록 등 증거자료도 제대로 제출하지 않았고 1심 패소 후 오히려 법무팀에서 항소를 제기하지 않았으면 좋겠다고 했다”고 말했다. 이 기자는 “회사 변호사인지 원고 변호사인지 정말 묻고 싶었다. 항소이유서도 제가 쓰고 증거들도 더 수집해 법원에 직접 제출했다”면서 “대화를 하면서 법무팀이 갑의 입장에서 을을 대하는 듯 느꼈다. 간부들 관련 소송은 성심성의껏 하고 구성원의 일은 성의 없게 처리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럴바엔 차라리 외부 법조인에 위탁 의뢰하는게 낫겠다”고 지적했다.

 

8년차 L기자도 비슷한 경험을 풀어놨다. L기자는 “소송을 당해 경찰서 출석 통보를 받고 법무팀장에게 3번이나 면담을 요구했는데 만날 수 없었다”면서 “나중에 구두 답변으로 혼자 경찰서에 다녀오라더라”고 말했다. 이어 “압박감과 심리적 충격은 당한 사람만 알 수 있다”며 “CBS 동료기자에게 토로했더니 거기는 법무팀장이 소환을 최대한 미뤄주고 경찰 조사에 대한 대응 연습까지 같이한다고 했다. 사내 변호사가 기자와 기사를 위해 존재하는 것인데 우리는 보호될 수 있는 테두리가 없다. 누구나 작은 기사라도 소송 당할 수 있기에 더 이상 이런 피해가 없었으면 한다”고 말했다.

 

경영 파트 M사원은 시청률 및 채널에 대한 고민과 마케팅에 대한 어려움을 토로했다. M사원은 “그동안 우리는 YTN을 객관적으로 보지 못한 면이 있다. 우리의 시청률을 누가 결정하는지 뉴스의 실제 소비층과 채널 번호 등을 고민해봐야 한다”며 “경영, 마케팅에서는 정보를 파악하기가 굉장히 어렵다. 기자들에게 영업사원을 하라는 것이 아니다. 출입처에서 마케팅과 관련한 예산 등 더 잘 알 수 있는 정보에 관심을 갖고 조금 알려달라는 것”이라고 말했다.

 

보도부터 경영까지 결국 근본적인 문제는 ‘소통’의 부재에서 시작된다고 입을 모았다. 하지만 이날 보직부장 이상 간부 및 임원들은 한명도 참석하지 않았다. 2008년 파업 사태 이후 입사한 N기자는 “회사를 다니면서 항상 느낀 것이 파업 세대와 파업 이후 세대의 단절”이라며 “세대, 부서, 직군, 공채와 경력, 정규직과 비정규직 등의 수많은 단절이 있다”고 지적했다. 14년차 O사원도 “누구나 바쁘게 열심히 일하지만 관심보다는 비판과 지적만 있다. 긍정의 피드백은 엔돌핀과 에너지가 될 수 있다”고 당부했다.

 

새로운 경영진과 함께 해직자 문제 해결은 YTN 변화의 첫 출발이라는 점도 강조했다. 10년차 B기자는 “회사의 문제는 결국 인사와 보도, 해직자 문제다. 해직자가 돌아오지 않으면 이 상처는 치유되지 않는다. 상처가 나아야 열정을 다해 일할 수 있다”면서 “사장 내정자도 (해직 문제를)알고 있다고 했다. 얼마나 노력과 관심을 기울이느냐가 중요하다. 해결에 적극 나서야한다”고 강조했다.

 

4년 만에 마련된 사원들의 자발적 모임에 참석자들은 앞으로도 ‘소통의 장’이 지속돼야 한다고 입을 모았다. 부서나 직군별 대표자를 선정하는 등 채널을 마련해 소통하는 방안도 제시됐다. 논의된 내용은 보고서 형태로 작성해 참석하지 못한 사원들과 간부들, 사장 내정자에게 전달할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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