표현의 자유와 언론의 절제

[글로벌 리포트 | 일본] 이홍천 게이오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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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홍천 게이오대 교수

올해 들어 위안부 문제와 언론자유를 둘러싸고 보수우익 시민단체와 위안부 기사를 작성한 기자 사이에 소송전이 이어지고 있다. 이런 움직임이 패전 70주년을 맞아 과거를 부정하려는 사회적인 분위기를 조성하지 않을까 우려된다. 


지난 2월까지 제기된 관련 소송은 4건. 이중 2건은 우에무라 다카시 전 아사히신문 기자가 자신을 비방한 주간지와 해당 주간지에 코멘트한 대학교수, 기고자를 상대로 제기한 것이다. 우에무라씨는 1월9일에 슈칸분슌을 상대로 1650만엔의 손해배상과 사죄기사 게재를, 2월10일에는 신쵸샤 등 3개 주간지를 상대로 1650만엔의 손해배상과 사죄광고를 요구하는 소송을 제기했다. 대표적인 반한 저널리스트로 알려진 사쿠라이 요시코는 주간 신쵸에 우에무라씨의 위안부 기사를 ‘날조’, ‘악의적인 허위보도’라는 기고문을 실었고 공식 홈페이지에도 같은 내용을 게재했다. 


나머지 2건은 보수시민단체가 아사히신문을 상대로 제기한 것이다. ‘아사히신문을 바로잡는 국민회의’는 지난 1월26일 8700명의 서명을 받아 아사히신문을 상대로 1인당 위자료 1만엔과 사죄광고를 요구하는 소송을 도쿄지법에 제기했다. 이들은 위안부 강제연행 증언을 보도한 13건의 기사가 “일본군이 조직적으로 위안부를 강제연행했다는 삐뚤어진 역사를 국제사회에 확산시켜 일본에 대한 비난을 불러일으키는 원인을 제공해 일본국민의 인격권과 명예를 훼손했다”고 주장했다. 


2월18일에는 일본계 미국인 3명과 일본인 200여명이 1인당 위자료 100만엔과 미국 주요신문에 사죄광고 게재를 요구하는 소송을 제기했다. 이들은 “아사히신문이 위안부 관련 오보를 장기간 방치한 결과, (미국에서) 위안부 동상이 만들어지고 (일본인들이) 괴롭힘을 당하는 등 정신적인 고통을 겪었다”고 밝혔다. 


사쿠라이씨는 소송에 대해서 “우에무라씨의 위안부 보도를 비판했지만 (그렇다고) 소송을 하는 것은 언론인답지 않고 유감이다. 언론인이라면 언론을 통해서 설명하고 반론하면 된다”고 산케이신문에 밝혔다. 사쿠라이씨가 문제 삼은 우에무라씨의 기사는 23년 전에 작성된 기사다. 우에무라씨는 주간지들의 집중 공격으로 고베의 한 여자대학에 교수로 내정됐다가 우익들의 항의로 채용이 취소됐다. 또 비상근 강사를 맡고 있는 홋카이도의 한 대학에서도 우익들의 압력으로 쫓겨날 상황에 놓여 있다. 23년 전에 작성한 2건의 기사로 인해서 자녀들의 신상이 인터넷에 공개되고 ‘매국노의 딸’, ‘자살하도록 만들겠다’며 가족까지 위협받고 재직중인 대학의 학생들에게까지 위해를 가하겠다는 협박이 이어지고 있다. 


사쿠라이씨가 쓴 글로 인해서 우에무라씨는 물론이고 가족도 생명의 위협을 느낄 정도의 상황이 벌어지고 있다. 사쿠라이씨도 이런 사실을 모르지는 않을 것이다. 지금과 같은 분위기라면 가족의 안전이 위협받는 테러가 언제 일어나도 이상하지 않는 상황이다. 


그런데 참 이상하다. 기사를 게재한 주간지나 기고자들은 우에무라씨가 고통당하는 것은 마치 당연하다는 듯이 무관심하다. 헌법에 보장된 언론자유를 행사한 것뿐인데 왜 그러냐. 언론인들끼리 논쟁하면 되는데 소송까지 하는 것은 유감이라는 반응이다. 그러면서 일본국민의 인격권과 명예가 훼손당했다며 언론사를 상대로 한 소송에 대해서는 언론자유를 보호해야 한다며 두둔하지 않는다. 


언론인 출신이라고 해도 언론사가 작정하고 보도하면 혼자서 맞서기는 힘들다. 다수의 변호사들이 우에무라씨의 소송에 참가한 것도 이런 힘의 불균형을 해소하기 위한 것 아닌가. 한 보수지는 이를 두고 원고는 한 명인데 대리인이 170명이라며 비꼬기까지 했다. 그러면서 ‘날조기자’보다는 ‘3류 기자’나 ‘어용기자’라는 표현을 더 심각하게 느끼는 사람도 있다며 ‘어감의 문제’로 본질을 흐린다. ‘날조기자’라는 보도가 대학교직에서 쫓겨나고 가족들이 협박을 당하는 상황과 직접적인 관련성이 있는지를 밝히기는 쉽지 않다. 소송당한 주간지도 협박을 교사하는 내용은 없다고 반론했다. 


이걸 보자니 NHK가 제작한 ‘누가 이웃을 학살했는가’라는 다큐멘터리의 한 장면이 떠오른다. 학살 이유 중의 하나로 라디오가 주민들을 선동했다는 내용이다. 학살을 선동한 죄로 수감된 라디오 DJ의 말이 잊혀지지 않는다. “나는 사람을 죽이라고 이야기(방송)한 적이 없다. 청취자들이 자기들 멋대로 그렇게 해석하고 행동한 것뿐이다.” 라디오에서는 학살당한 부족을 ‘바퀴벌레’로 묘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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