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가정보원과 국군사이버사령부가 이들 공직자들의 지휘를 받아 지난 대통령 선거과정에서 불법적인 선거운동을 하였다는 것이 밝혀진 것이다.
의혹의 시선이 당시 행정부의 수반인 이명박 전 대통령에게 쏠리는 것은 당연하다. 국가정보원법에는 “국가정보원은 대통령 소속으로 두며, 대통령의 지시와 감독을 받는다”라고 되어 있다. 국정원장은 오로지 대통령에게만 보고하고, 지휘와 통제를 받도록 돼 있는 것이다.
따라서 국정원의 조직적인 불법행위를 이 전 대통령이 관여하지 않았다고 발뺌할 일은 아니다. 이런 점 때문에 지난 2월26일 시민단체들이 이 전 대통령을 공직선거법, 국가정보원법 위반 등의 혐의로 고발하기도 했다.
그러나 며칠이 지나도 이와 관련된 소식은 일부 언론을 제외하고는 보이지 않는다. 자고로 ‘죽은 권력’에 대한 가차없는 칼질을 일삼던 과거 언론의 행태와는 다르다. 노무현 전 대통령의 퇴임 이후에는 친인척 비리사건에 대해 수사과정을 시시콜콜히 보도하여 결국 그를 벼랑으로 내몰았던 행태와 비교한다면 놀라운 일이다.
달라진 점이라면 당시 사건을 담당했던 이인규 전 대검 중수부장의 최근 고백처럼 국정원이 허위사실을 언론에 흘리지 않고 있다는 점이라고나 할까.
물론 언론의 자기변화도 이유가 있을 것이다. 말 그대로 자기반성의 결과일 수 있다. 또 뚜렷한 증거가 없는 고발만으로는 보도가치가 높지 않다고 평가했을 가능성도 있다. 나아가 검찰이 제대로 수사를 하겠느냐 결국 무혐의로 끝날 것이라는 정치적 판단도 했을 터이다. 좀 더 파고 든다면 지금의 살아있는 권력이 죽은 권력의 품 안에서 태어났다고 보는 뿌리동질론이 은연중 자리잡고 있을 수도 있다.
두 정권 간 뿌리가 같으니 이 전 대통령에 대한 비판과 감시를 자제하는 것 아닌가 하는 의심이다. 불법 선거운동 개입에 대한 책임 추궁은 결국 현 정권에도 부담이 되는 사안이기 때문이다. 이래서 4대강 사업도, 자원외교 문제도 밑사람만 문제될 뿐 정작 책임자는 손도 대지 못하는 것 아닌가 싶다. 대통령을 배출한 정당도 그대로일 뿐만 아니라 대선에 부정하게 개입했다고 의심되는 인물들이 여전히 현 정권에서도 요직을 차지하고 있다는 점도 이런 의혹을 뒷받침한다.
언론의 저울질도 뿌리가 같다는 쪽으로 기우는 듯한 행보다. 앞으로 나서지 못하고 엉거주춤한다. 그러나 국가기관의 선거개입은 민주주의의 원칙을 파괴하는 국기문란의 중차대한 범죄다. 전직 대통령이 국가기관을 이용해 자신의 퇴임 이후를 도모했다면, 정권연장을 위한 보험이 국가기관의 선거개입이라면, 역사의 수치다.
지난 노무현 대통령 초기 시절의 대선자금 수사로 살아있는 권력과 맞섰던 검찰의 모습을 지금 기대하기는 힘들다. 그래서 언론의 역할이 더욱 중요한 시점이다. 언론이 지금 죽은 권력을 비판하는 것은 곧 살아있는 권력을 감시하는 일이다.
김준현 변호사의 전체기사 보기Copyright @2004 한국기자협회. All rights reserv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