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론의 존재 이유

[언론다시보기] 김서중 성공회대학교 신문방송학과 교수

▲김서중 성공회대학교 신문방송학과 교수

언론인이라면 언론의 존재이유에 대해 한 번쯤 생각하고 고민해봤으리라 믿는다. 이에 대한 언론인들의 결론이 자못 궁금하다. 특히 최근 총리 인사청문회 같은 사건을 겪으면서 더욱 그렇다.


언론을 협박한 총리 후보자
국무총리 후보자가 기자들 앞에서 TV에 나온 패널을 빼게 만들었다거나 언론사 간부에게 압력을 넣어 기자들의 인사를 좌우할 수 있다고 주장했다. 교수, 총장도 만들었다 하고, 언론인들을 포함시킨 김영란법 통과를 자신이 막아 왔는데 통과시켜야겠다고 협박도 했다. 범부의 발언이 아니라 실세 총리가 되겠다는 후보자의 발언이라서 흠칫하다. 우리 사회가 타임머신을 타고 수십 년 전으로 되돌아가고 있는 듯하다. 그런데 그러고도 총리가 됐다. 그래서 더 흠칫하다.


어째 이런 일이? 언론 때문이라고 하면 언론들이 억울할까? 언론을 협박하는 후보자와 함께 있었던 기자들도, 보고를 받은 간부들도 이런 사실을 보도하지 않기로 결정했다. 술자리에서 한 발언이라 보도가치가 없다는 이유다. 술자리에서 한 발언이라 거짓이고 과장이라면 그런 무책임한 사람이 총리감일 수 없다. 진실이라면 더 말할 나위 없다. 그것이 시민의 상식이다. 상식을 거스른 판단을 한 그들에게 언론의 존재이유는 무엇인지 묻고 싶다.


다른 언론들의 행태도 별반 다르지 않았다. 야당 국회의원의 폭로로 모든 언론들이 총리 후보자의 발언을 다뤘지만 대부분 거기까지다. 발언이 진실인지 과장인지, 총리 후보자의 발언이 왜 기사화가 안 됐는지에 대한 추가 취재는 거의 없었다. 역으로 보도할 길이 막혀 녹취록 제공이라는 최후의 수단을 쓴 기자에게는 취재윤리라는 잣대를 들이댔다. 심지어 TV조선의 엄성섭 앵커는 방송 도중 ‘녹취록 넘긴 기자는 쓰레기’라 공격했다. 그들에게 언론이란….


공직자 후보에 대한 언론의 검증 노력이 없는 인사청문회는 다수결의 제물일 수밖에 없다. 청문회라는 방식을 거치는 것도 언론을 통한 여론의 향배를 고려하기 위함일 것이다. 총리 인준에 언론의 책임이 막중한 이유다. 그리고 지금도 인사청문회를 앞둔 공직자 후보가 있고 제 역할을 다 못하는 언론의 행태는 반복되고 있다.


또 다른 부적격 공직후보자
법과 정의의 최후의 심판자 역할을 해야 할 박상옥 대법관 후보자는 검사로서 수사에 참여한 박종철 고문치사 사건에서 공범자가 더 있다는 것을 알고도 침묵했다. 1992년에는 물고문으로 입건된 경찰관을 피해자와 합의했다는 이유로 불구속 처리했다. 그리고 사학분쟁조정위원회(사분위) 위원으로 참여 시에는 비리로 물러났던 사학의 구 재단 인사들이나 그 관련자가 복귀하는 것에 손을 들어 주었다. 더 있을지 모르지만 이것만으로도 대법관 후보로서는 낙제점이다. 


하지만 박종철 사건과 관련하여 막내 검사에게 책임을 묻기 어렵다는 조선일보나 중앙일보, 사실상 기사로 이를 다루지 않은 동아일보, TV조선, 채널A 등에게 언론의 존재 이유는 뭘까. 1992년 물고문 사건 처리, 사분위 활동 등을 심층 취재하거나 보도하는 언론은 더 찾기 힘들다. 언론의 역할은 받아쓰기일까?


존재 이유를 상실해가는 언론
헌법은 1조에서 모든 권력이 국민에게서 나온다고 규정하고, 권력의 주체인 국민의 정치적 활동을 돕기 위해 21조에서 언론의 자유를 보장한다. 그래서 수용자들은 언론이 수용자를 대신해서 현실을 감시하고 진실을 알려주어 올바른 판단을 도와줄 것이라 기대한다. 그리고 이런 기대가 언론의 소비를 낳고 경제적 이윤의 기반이 된다. 


그런데 현실은 그런 기대를 배반한다. 이미 하나의 경향이 되어 버린 신문의 위기, 또 하나의 경향이 되어 가고 있는 방송의 위기의 진원지는 바로 신뢰를 상실해가고 있는 지금의 언론 현실이다. 언론인들이 언론의 존재 이유를 되새겨봐야 하는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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