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사태 때 기자 그만둘 각오까지 했다"

이준희 한국일보 사장 인터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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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비 맞을 때 마다 구성원 똘똘

기적 같은 회생…사회에 큰 빚 져

“미안하다. 잘됐으면 좋겠다” 말하면

장 전 회장 인간적으로 돕고 싶어

고통스런 시간이었지만 저력 확인

대주주 디지털에 대담한 투자 계획


사장실이라고 하기엔 초라해보였다. 책상 1개와 6인용 소파가 전부였다. 네댓 사람이 서면 답답하다는 느낌을 주는 작은 공간, 벽에 걸린 그림 한 점이 호사의 전부였다. 탁자에 어지럽게 놓인 신문들 위로 한국일보가 펼쳐져 있었다. 방금 전까지 신문을 들춰 본 흔적이었다.


이준희 한국일보 사장의 명함은 2월부터 ‘주필 이준희’다. 부사장과 사장으로 지낸 1년 반 동안 한국일보는 새로운 주인을 만났고, 법정관리 졸업을 목전에 두고 있다. 그래서 그런지 이 사장의 얼굴에는 홀가분함이 묻어났다.


사장직을 내려놓고 편집국에 복귀하는 소감부터 물었다. “2013년 8월 처음 경영을 맡으면서 ‘좋은 인수자를 만나 회생의 발판을 마련하겠다. 그때까지 여러분이 받을 임금과 지원을 책임지겠다’고 약속했는데, 그 약속을 지키고 퇴임할 수 있어 스스로 대견스럽다.”


▲2월부터 편집국 주필로 복귀하는 이준희 한국일보 사장이 지난 26일 본지와 인터뷰를 하고 있다. 이 사장은 “한국일보가 기적 같은 회생을 이룬 것은 사회 각계각층의 도움이 컸다. 한국일보가 사회에 큰 빚을 졌다”고 했다.

-법정관리 중에 사장을 맡아 심적 부담이 컸을 텐데.


“진짜 암담했다. 해야 하나 말아야 하나 고민했다. 회사가 회생을 못하면 60년 역사의 한국일보를 장사지낸 사람이 될 수 있어 두렵기도 했다. 위기 상황에서 기자들을 포함한 한국일보 구성원들이 한 마음이 되어줬다. 리더십을 믿어주고, 서로가 서로에 대한 진정성을 의심하지 않았던 것이 한국일보가 회생한 원동력이 되지 않았나 한다.”


-우여곡절 끝에 새 주인을 찾고 곧 법정관리도 끝난다.


“회생 과정을 책으로 쓴다면 한 권이 아니라 전집으로 써야 할 정도로 고비가 많았다. 자본주의 사회에서 종업원들이 사주를 바꾼다는 것은 거의 불가능한 일이었고 특히 언론사라서 명분이 있어야 했다. 한국일보 사태가 발생했을 때 여야나 보수·진보를 넘어 지지를 보내줬다. 이후 각계각층의 도움으로 회생 절차를 밟을 수 있었다. 기적과도 같은 회생이었다. 한국일보가 사회에 큰 빚을 졌다.”


-2013년 한국일보 사태 때 논설실장에서 논설고문으로 좌천되기도 했다. 어떤 심경이었나?


“장재구 전 회장이 무리하게 편집국장과 부장단 교체라는 강수를 뒀을 때 논설실장으로 있으면서 격문을 썼다. 편집국까지 폐쇄했을 때는 집필을 거부하고 ‘이건 언론사가 아니다’라는 내용의 격한 글을 다시 한 번 썼다. 기자를 그만둘 각오가 되어 있었다.”


-창립자인 고 장기영 사주부터 장씨 일가와 미운 정도 들었을 것 같은데.


“편집국장 할 때도 ‘이렇게 가선 안 된다. 한국일보를 자꾸 쇠락하게 만들어선 안 된다’고 계속 얘기했다. 듣지 않고 외면하더라. 결국 구속까지 됐다. 그런데도 반성의 여지없이 계속 한국일보 구성원들에게 적개심을 보이고 소송에서 상황을 반전시키려는 걸 보면서 그나마 있던 미운 정도 사라졌다.”


-장재구 전 회장은 3월쯤 있을 상고심 판결에서 감형을 바라고 있다던데.


“지금이라도 ‘내가 불민해서 여러분 고생 시켰다. 좋은 주인 만났으니 한국일보를 부활시켜 주길 바란다. 밖에서 마음으로나마 성원하겠다’고 말씀해주시면 인간적으로 도울 일이 있으면 돕고 싶다. 그런데 그런 정서가 아니다. 본인 주식도 소각되고 신주 발행이 끝나 법적으로 해볼 도리가 없는데 적개심만 불태우고 있다는 얘기를 듣고 안타까운 마음이 든다.”


-삼화제분과 1차 인수 작업이 틀어지면서 마음고생이 많았을 것 같다.


“삼화제분과 M&A가 뜻밖의 가족 분쟁으로 늦어져 위기감이 든 게 사실이다. M&A가 이뤄지지 않을 경우 기존 소유구조로 다시 돌아갈 수 있다는 위기감이 컸다. 다행히 지난해 8월 2차 M&A 당시 유수의 기업들이 앞다퉈 인수에 뛰어들었다. 십 수 년 만에 수익을 내고 구성원들이 신문 회생에 강력한 의지를 나타낸 데서 가능성을 본 것 같다. 고통스러운 시간을 거치면서 한국일보가 가진 저력, 전통의 힘이란 간단치 않다는 걸 확인할 수 있었다.”


-동화그룹은 한국일보 정상화에 어떤 청사진을 갖고 있나?


“디지털 전략에 구체적인 복안과 대담한 투자 계획을 가지고 있다. 무엇보다 정파나 이념에 휘둘리지 않는 한국일보의 정체성을 공유하고 있다. 경영 측면에서 기업 운영의 노하우를 접목하고 신문의 정체성을 강화해 정보산업으로서 어떻게 부가가치를 만들어낼지 고심하는 것 같다.”


-편집권 독립 보장을 약속했다지만 이윤 추구를 최우선으로 하는 기업인만큼 결정적일 때 기업의 논리가 작동하지 않을까하는 우려도 있다.


“기업 문화가 상당 부분 이식될 것은 분명하다. 하지만 신문사가 수익 사업이 아니라는 건 승명호 회장 본인이 잘 알고 있다. 기업문화를 합리적으로 이식하는 것 이상으로 우려할만한 조짐은 아직 나타나지 않았다. 한국일보에 그동안 경영이란 자체가 존재하지 않았던 만큼 좋은 의미의 결합 효과를 기대하고 있다.”


-한국일보에서 만 30년을 보냈다. 가장 잊지 못할 순간이 있다면.


“시경캡, 법조캡, 국회반장, 사회부장, LA특파원, 논설위원, 편집국장, 논설위원실장, 부사장, 사장까지 했다. 내가 복이 많은 사람이다. 우리사회 모든 격동의 순간, 정치사회적 변혁의 현장에 있었던 사건기자 시절이 가장 기자다웠다. 뿌듯했던 순간은 편집국장 끝나고 후배들이 ‘형하고 함께 해서 정말 행복했습니다’라며 감사패를 줬을 때다. 이번에도 사장에서 물러나니까 노조에서 ‘큰 형님처럼 잘 이끌어주셨다’며 감사패를 주더라. 그게 내 자랑이다.”


-1년 반 만에 편집국 복귀인데 기분이 어떤가.


“신문을 봐도 광고부터 봤는데, 다시 기사를 제대로 봐야 하니까 걱정이 태산이다.(웃음)”


-새 출발을 앞둔 한국일보에 바라는 점이 있다면.


“경영 난맥상이나 생존을 걱정해야 하는 외적인 고민을 벗어버린 만큼 기자들 스스로 한 사람 한 사람이 한국 사회를 리드하는 입장이라는 자부심과 기자 이상의 언론인 의식을 갖고 사명을 다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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