풍자 개그도 허락 않는 NHK 회장

[글로벌 리포트 | 일본] 이홍천 게이오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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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홍천 게이오대 교수

NHK가 지난 3일 예능 프로그램에서 정치인을 소재로 다루지 말라고 압력을 가해 논란이 되고 있다. 유명 개그맨 콤비 ‘폭소문제’가 TBS의 라디오 프로그램에 나와 NHK의 버라이어티 프로그램 방송회의에서 정치인을 타깃으로 한 풍자개그 내용이 전부 거부당했다고 폭로했다. 여기서 말하는 정치인은 지난해 말 정치자금 부정의혹으로 사임한 오부치 유코 전 경제산업상이다. 오부치 의원은 자신의 얼굴을 인쇄한 와인을 선거구 주민에게 나눠주고, 정치자금 수사를 위한 가택조사를 방해하기 위해 하드디스크를 드릴로 파괴한 의혹을 받고 있다. ‘폭소문제’는 오부치 의원의 이런 행동을 “당선되면 오부치 와인으로 건배. 다루마 인형의 눈은 드릴로 구멍을 내고”라며 풍자했다. 이 문제가 논란이 되자 NHK 모미이 회장은 특정 정치인을 풍자의 대상으로 삼는 것은 품격이 떨어진다고 비판했다.


그러나 표현의 자유를 수호해야 할 언론의 품격을 떨어뜨린 것은 다름 아닌 모미이 회장 자신이 아닌가. 모미이 회장은 취임 기자회견에서 위안부문제는 어느 나라나 다 있었다고 발언하는가 하면 NHK는 국제방송에서 영토에 관한 일본의 입장을 분명하게 대변하겠다고 밝히기도 했다. 아베 수상의 입맛에 맞는 방송을 하겠다고 공언한 것은 언론의 수장으로서 품격있는 행동인가. 풍자만화와 같이 풍자개그도 정치가를 조롱하는 것으로 권위에 도전하는 표현방식의 하나이지만, 권력을 자유롭게 비판할 수 없는 사회적 분위기가 짙어지고 있는 것이 일본의 상황이다. 


프랑스 풍자 주간지 샤를리 에브도에 대한 테러 이후 표현의 자유를 지키려는 움직임이 전 세계적으로 확산되고 있는 가운데 일본사회는 이에 역행하는 것은 아닌가라는 분위기가 느껴진다. 일본의 인기밴드 ‘사잔 올스타즈’의 라이브 퍼포먼스가 황실을 모독했고 아베 수상을 풍자했다며 우익단체들이 개인 사무소 앞에서 항의하는 소동이 벌어졌다. 여성세븐은 ‘구와타 게이스케 비판 쇄도, 폐하와 국기에 대한 오산’이라는 기사를 게재, 퍼포먼스를 비난했다. 지난 15일 구와타씨가 소속된 프로덕션은 “배려가 부족했다”는 사죄문을 발표했다. 


밴드 보컬 구와타 게이스케는 NHK 홍백가합전에서 콧수염을 붙이고 등장했고 ‘피스(평화)도 하이라이트’라는 노래를 불렀다. 노래는 ‘아전인수격 대의명분’이라는 가사가 포함되어 있다. 이를 두고 집단적 자위권 행사 용인을 위한 헌법해석 변경으로 해석하거나, 곡명의 하이라이트를 극우로 바꿔 읽는 등 시청자의 반응은 다양했다. 한편에서는 아베 수상을 독재자로 냉소하고 중의원 해산을 비웃은 것 아닌가라는 비난이 쇄도했다. 덴노로부터 받은 훈장을 주머니에서 꺼내들고 경매를 붙이는 조크였지만 황실에 대한 모독이라는 항의를 받았다. 지난해 12월29일 송년 라이브에는 ‘폭소 아일란드’라는 곡의 일부분을 ‘중의원 해산 턱없는 소리한다’는 것으로 변경, 아베 수상의 중의원 해산을 풍자했다. 부인과 함께 라이브를 관람한 아베 수상은 쓴웃음을 지었다. 


표현의 자유가 침해받고 있는데도 일본 미디어의 반응은 무덤덤하다. ‘사잔 올스타즈’의 사례에 아사히신문만 우려를 나타냈다. ‘폭소문제’에 대해서는 마이니치, 도쿄신문이 관련 기사를 게재했고, 도쿄신문은 사설로 다뤘다. 반면에 요미우리에서는 관련 보도를 찾을 수 없었다. 가수나 연예인이라서 남의 일 보듯 무시한 것일까. 


그렇다면 중의원 선거를 앞두고 재경방송사에 보낸 자민당의 공정방송 요구 압력에 대해서 일본 미디어는 어떤 반응을 보였을까. 결과는 0, 170, 325, 4672, 7553. 이들 숫자는 전국지들이 다룬 기사량이다. 한 조사회사에 따르면 지난 중의원 선거(2012년)에 비해 선거관련 보도가 40%나 줄었다고 한다. 요미우리에서는 단 한 줄의 기사도 찾지 못했다. 요미우리는 프랑스의 풍자 주간지 샤를리에 대한 테러에 대해서는 사설까지 게재, 표현의 자유는 민주주의의 근간이고 테러는 절대 용납받지 못한다고 밝히면서도 이슬람 측의 반대입장까지 자세하게 소개했다. 기사가 미치는 사회적 영향을 고려해서 게재해야 한다는 언론의 책임성도 함께 강조했다. 각 언론사들도 관련기사를 연일 속보로 다루고 있다. 


그러나 정작 일본 언론을 둘러싼 사회 환경의 변화에 대해서는 둔감하기 그지없다. 극단적인 공격을 당하지 않는다면 표현의 자유를 침해하는 권력의 압력 정도는 참고 견뎌도 된다는 것인가. 패전 70년, 분단 70년, 한일 국교정상화 50년을 맞이하는 올해는 언론·표현의 자유가 더더욱 요구되는 한 해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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