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제시장과 아메리칸 스나이퍼

[언론 다시보기] 김진혁 한국예술종합학교 방송영상과 교수

▲김진혁 한국예술종합학교 방송영상과 교수

영화 ‘국제시장’을 둘러싼 논란은 이제 잦아든 상태다. 대충 정리된 논쟁의 결과는 ‘이념으로 영화를 바라볼 필요는 없다’ 정도인 것 같다. 동의한다. 하지만 영화 국제시장은 애초부터 이념이 논란의 중심인 영화는 아니었다. 언뜻 정치성향이 다른 세대 간 대결로 비춰졌지만 그건 어디까지나 영화를 둘러싸고 벌어진 논쟁 중 하나였을 뿐, 영화의 내용 자체에 대한 논쟁이었다고 보기는 어렵다.


국제시장의 내용을 두고 벌이는 논쟁이라면 ‘역사를 적절하게 다루고 있는가’로 보는 것이 옳다. 영화의 설정 자체가 근현대사의 굵직한 사건들을 나열하는 방식이기 때문이다. 그런 면에서 국제시장은 매우 아쉬운 점이 발견되는데 각 사건들은 물론 각 사건들과 주인공이 어떻게 맞닿아 있는 것인지에 대해 설명하지 않고 있기 때문이다. 


우리가 역사를 다룰 때 ‘모든 사실’을 다 다룰 수 없기 때문에 반드시 선택된 사실들이 어떠한 ‘맥락’을 지니고 있는 것인지를 함께 설명해야 한다. 단적인 예를 들면 이 맥락에 따라 일제 강점기는 ‘식민지 지배’가 될 수도 있고 ‘근대화’가 되기도 한다. 혹은 ‘살인 행위’가 될 수도 있고 ‘정당 방위’가 될 수도 있다. 사실은 맥락과 결합할 때 ‘진실’이 되는 것이다. 이건 거시사가 아닌 개인사를 다룰 때 역시 마찬가지다.


국제시장이 ‘근현대사를 살아간 한 남자’의 이야기라면 이 남자가 살아낸 근현대사가 이 남자와 어떠한 맥락으로 닿아 있는지가 필요하다. 적어도 이 남자의 머릿속에선 어떻게 연결되어 있는지에 대해 설명할 필요가 있다. 하지만 국제시장은 이 부분에서 취약점을 드러낸다. 주인공은 수동적으로 반응을 할 뿐 맥락에 대해서는 그저 ‘어려웠던 시대’라는 게 전부다.


4·19를 경험한 아버지 세대, 고속 성장을 경험한 삼촌 세대와 대화를 하다 보면 당시 시대의 맥락에 대한 그분들의 인식을 쉽게 엿볼 수 있다. 독재정권 시절이라 대놓고 말 못한 경험들을 지니고는 있으나 그렇다고 해서 당시 시대에 대한 맥락이 무지한 건 결코 아니다. 비록 현실에 매몰됐으나 고등학교 때 거리로 나왔다는 자부심도 있고, 386처럼 데모는 안했지만 중동에 가서 더위와 싸우며 외화벌이를 했다는 자부심도 있다. 결코 근현대사에 대해 아무 생각 없이 수동적으로 반응만 한 건 아니라는 말이다. 


최근 개봉한 영화 ‘아메리칸 스나이퍼’가 그런 면에서 매우 좋은 예라 할 수 있다. 이 영화 역시 한 개인의 삶에 초점을 맞추고 있기에 이라크전을 소재로 하고 있으면서도, 이라크전의 거시적 배경에 대해서는 전혀 언급이 없다. 하지만 주인공이 어렸을 때 아버지로부터 교육 받은 보수적 사고(이분법적 선악 구도)에 대한 에피소드와 그 사고방식이 성인이 돼서 어떻게 이라크전 참전 결심으로 연결되는지 등의 맥락이 적절하게 포함되어 있다. 


그렇기 때문에 영화는 주인공 개인의 미시사를 따라가면서도, 주인공이 놓인 역사적 시대상으로부터 주인공을 괴리시키지 않는다. 주인공은 9·11테러와 이라크전이라는 역사적 사건 속에서 보수적 사고를 지닌 한 명의 ‘애국 시민’으로 온전히 존재한다. 그러한 주인공에 환호를 할 수도 있고, 반대로 비난을 할 수도 있지만 적어도 양쪽 모두 주인공이 현실 속에 존재하는 인물임을 충분히 인정할 수 있게 된다. 


이렇게 말하면 마치 당시 독재정권이나 정치적 상황에 대해 국제시장이 직접적으로 언급했어야 한다는 주장으로 오해할지도 모르겠다. 전혀 그렇지 않다. 오히려 그런 방식이야말로 인위적이다. 그저 국제시장의 주인공 ‘덕수’가 당시를 살았던 진짜 ‘덕수’였으면 하는 것이고, ‘진짜’ 덕수라면 자신이 살아냈던 그 시절에 대해 적어도 영화 속보다는 훨씬 더 많은 맥락을 스스로 인지했을 것이라고 생각할 뿐이다. 무엇보다 그런 덕수일 때 오히려 더 많은 사람들이 덕수를 진심으로 이해할 수 있지 않았을까 하는 아쉬움이 남는다.

김진혁 한국예술종합학교 교수의 전체기사 보기

배너

많이 읽은 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