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량산엔 인문이 흐른다

송의호 중앙일보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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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 이 산이 중국에 있었다면 반드시 이백과 두보가 시를 지어 읊었을 것이다.”


조선 중기 지식인이자 산을 사랑한 풍기군수 주세붕이 경북 봉화의 청량산에 오른 뒤 남긴 찬사다. 청량산은 ‘해동의 서성(書聖)’인 통일신라 김생이 10년간 공부했고 최치원의 흔적이 남은 곳이다.


퇴계 이황도 열네 살에 청량산을 오른 이후 49년 동안 틈만 나면 찾았다. 퇴계는 청량산을 아예 ‘오가산(吾家山)’, 즉 우리 집 산이라 부르고 ‘청량산인’을 자처했다. 퇴계 사후 청량산은 퇴계의 학문적 시원이 됐고 선비들은 청량산을 찾아 퇴계의 자취를 더듬고 글을 남기는 게 유행이 됐다. 그런 글만 100여 편이 전해진다.


신문기자인 저자는 올해만 수십 차례 청량산을 오른 뒤 청량산의 인문 흔적을 길어올렸다. 그는 “퇴계 선생이 왜 그토록 청량산을 자주 찾았는지 그 이유를 알고 싶어 발걸음을 뗐다”며 “청량산은 그 답을 생각하게 하는 인문의 산”이라고 말했다.

-부글북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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