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북 심판" vs "민주주의 위기"…극명하게 갈린 언론

통진당 해산 언론 보도 분석
중앙, 의원직 박탈 문제 지적
경향·한겨레 헌재 판결 비판
진보 위기 해법모색도 시각차
MBC, 하루에만 23건 보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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헌법재판소의 통합진보당 해산 결정에 따른 후폭풍이 거세다. 헌정 사상 초유의 정당 해산 결정은 법리적, 정치·사회적 공방을 가열시키며 우리 사회를 혼란의 장으로 밀어 넣었다. “이념논쟁을 종식시키는 계기가 되길 바란다”는 헌재의 주문과 달리 이념논쟁과 갈등도 증폭되는 형국이다. 이념 간 대립 양상은 언론 보도에서도 그대로 드러났다. 통진당 해산 결정 관련 보도는 언론사 성향에 따라 극명한 대조를 나타냈다. 같은 판결을 두고 보수지는 ‘자유민주주의 수호’로, 진보지는 ‘민주주의의 죽음’으로 평가했고, 대안적 방향 모색에 대해서도 보수지는 “진보를 바꿔야 한다”고 주장한 반면 진보지는 “헌재를 바꿔야 한다”며 상반된 목소리를 냈다.


동아일보와 조선일보는 통진당 해산을 당연한 귀결로 반기며 지난 몇 차례의 선거에서 통진당과 손잡았던 야당의 ‘원죄론’을 제기했다. 새정치민주연합이 “종북 숙주 노릇”을 했다는 지적이다. 두 신문은 8대1로 통진당 해산을 결정한 헌재 판결의 요지를 그대로 전하면서 비판적인 의견이나 정치적, 법리적 논란은 거의 다루지 않았다. 법적 근거 없는 의원직 박탈 결정이 ‘월권’이라는 지적에 대해서도 함구하거나 ‘일각’의 의견으로 치부했다. 헌재 결정은 되돌릴 수도 없고, ‘불복’해서도 안 된다는 논리다. 


▲통합진보당 해산 결정에 대한 신문 보도 논조는 극명하게 엇갈렸다. 사진 위부터 12월22일 한국일보 3면 기사와 한겨레 1면 기사, 20일 동아일보 1면 머리기사와 23일자 조선일보 사설.

같은 보수지로 분류되는 중앙일보는 법 규정 없는 의원직 박탈 결정에 대해 “헌재가 삼권분립의 원칙을 위배하는 것 아니냐는 논란이 일고 있다”고 지적하며 다소 차이를 보였지만, 헌재 결정에 반대 의견을 제기하는 것을 ‘종북’과 동일시한다는 점에선 조선, 동아와 다르지 않았다. 조선은 문재인, 이해찬 의원이 헌재 결정을 ‘세계사적으로 유례가 드문 일’, ‘끔찍한 일’이라며 비판한 것을 두고 23일 사설에서 “국민의 다수가 종북 세력과 다시는 연대하지 말라는데도 야당이 이를 무시하고 다시 장외의 ‘사이비 훈수꾼’들에게 휘둘린다”고 비판하기도 했다.


반면 경향신문과 한겨레 등 진보성향 신문들은 법조계와 학계 등 각계 전문가 의견을 바탕으로 헌재 판결의 문제를 조목조목 비판하고, 편향된 인적 구조 문제를 집중적으로 제기했다. 경향은 22일 1면 머리기사에서 “획일적이고 보수적인 재판관 구성은 오히려 헌법의 근간인 다양성을 훼손하는 역설적 결과를 낳고 있다”고 지적했다. 한겨레는 22일 8~10면 3개 면을 털어 헌재의 문제를 대해부했다. 23일자 사설에선 “독일 헌재처럼 국회의 3분의2 의결로 모든 재판관을 임명하도록 해 정치적 편향성을 줄이는 한편, 사법관료 이외 인사들도 재판관으로 임명할 수 있도록 적극적인 변화를 모색할 때”라고 주장했다. 중도성향의 한국일보 역시 헌재 판결의 빈약한 논리구조와 팩트 오류, 헌재의 보수화 문제 등을 집중 보도하고 있다. 


이념논쟁과 별개로 진보가 변해야 산다는 데는 이론의 여지가 없었다. 통진당 해산 결정 이후 신문들은 저마다 진보의 위기를 진단하고 해법을 모색하는 연속 기획을 선보였다. 하지만 이 역시 시각차가 컸다. 보수지들은 헌재 판결에 대한 진보진영의 비판을 “퇴행적 불복 투쟁”(중앙)으로 규정하며 “통진당 잔존 세력과 절연”(동아)하고 ‘종북’의 싹을 잘라내야 한다고 강조했다. 조선은 23일 검찰이 통진당 소속 당원들에 대한 국가보안법 위반 고발 사건 수사에 착수한 사실을 보도하며 “독일에서는 공산당 해산 이후 12만5000여명에 이르는 공산당 관련자가 수사를 받았고 이 중 7000명가량이 형사처벌을 받기도 했다”고 설명했다. 


한국일보와 경향신문도 헌재 판결 이후 연속 보도를 통해 진보정치 전반의 위기를 지적하고 있다. 하지만 진보진영 안팎의 우려의 목소리와 함께 암중모색의 가능성을 시사한다는 점에서 차이를 보였다. 한국일보는 22일 ‘진보정치의 거듭나기, 지금이 기회다’에서 “그동안 통진당의 ‘종북 트라우마’에 발목이 잡혔던 진보진영, 나아가 야권 전체가 새롭게 태어날 수 있는 기회”라고 밝혔다. 


한편 지상파 방송 3사 메인뉴스도 지난 19일부터 통진당 해산 사건을 집중 보도하고 있다. 지난 19일 MBC ‘뉴스데스크’의 관련 보도는 무려 23건으로 KBS(12건), SBS(10건)를 합친 것보다 많았다. 그러나 방송 보도는 ‘중계’ 수준에 머물렀다. 헌재 판결을 심층적으로 분석하거나 반론을 포함한 각계의 다양한 의견을 분석적으로 보도하기보다 대립되는 의견을 찬-반 공방 수준으로 단순 전달하는 식이다. JTBC ‘뉴스룸’이 22일 소수의견이 반영되지 않는 헌재 구성의 문제를 별도의 리포트로 보도한 것과도 차이를 보인 대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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