난파 당한 지상파 구조선은 '공영방송'

지상파 위기 '출구가 안보인다' (3)신뢰의 위기
권력 일상적 개입 노출
자본논리에 공영성 상실
공영방송 제 역할 못하자
종편·보도채널 영향력 확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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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는 이미 가라앉기 시작했는데 엉뚱한 곳에 땜질식 처방만 하고 있다. 진짜 문제는 배 안에 있다는 것을 선원들은 아는데 선장과 배의 키를 쥔 자만 모르거나 알려고 하지 않고 있다.”


난파선 신세가 된 지상파 방송사. 그러나 구조선은 어디에도 없다. 지상파 방송사 한 중견 PD는 “항로를 바꿔야 하는데 배의 몸집이 너무 커서 방향을 틀기가 쉽지 않다. 이미 너무 많이 늦었는지도 모르겠다”고 자조 섞인 전망을 내놨다. 한때 ‘황금알을 낳는 거위’로 불리던 지상파 방송사가 ‘미운오리새끼’로 전락했다. 지상파의 위기는 다방면에서 총체적으로 ‘진행형’이지만, 본질은 저널리즘의 위기에서 비롯됐다는 것이 중평이다. 공영방송의 추락은 지상파 전체의 신뢰도를 끌어내렸고, 이제는 ‘공공 서비스’로서 지상파의 존재 이유를 묻고 있다.


지상파 방송의 위상 추락은 보수정권 들어 본격화됐다. 이명박 정부 들어 가동된 ‘언론장악 시나리오’가 KBS와 MBC를 차례로 옥죄었다. 공영방송 이사회가 물갈이되고, 대통령과 가까운 인사들이 공영방송 사장 자리를 꿰찼다. 민감한 정치사회 이슈를 다루는 시사프로그램이 폐지되고, 정권이 불편해 하는 뉴스 대신 동물 소식이 뉴스 시간을 채웠다. 카메라와 마이크를 든 기자들이 취재 현장에 나갔다가 손가락질을 받으며 쫓겨나는 일이 많아졌다. 이에 저항한 이들은 해직자가 되거나 이른바 한직만 맴돌아야 했다.


▲세월호 참사 보도는 지상파에 대한 국민의 불신에 기름을 끼얹은 격이 됐다. 지난 5월 경기 안산 화랑유원지에 마련된 세월호 희생자 합동분향소 추모게시판에 김시곤 당시 KBS 보도국장의 부적절한 발언을 비판하는 전단지가 붙여있는 모습. (뉴시스)

그러는 사이 종합편성채널과 보도채널들이 영향력을 넓혀가기 시작했다. 채널이 많아지자 시청자들은 미련 없이 리모컨을 돌렸다. 지상파는 유료방송이 시청자와 광고 등 자신들의 파이를 가져가는 것을 손 놓고 바라봐야 했다.
그리고 세월호 참사가 터졌다. ‘전원 구조’ 오보로 시작해 속보 경쟁과 정부 발표 ‘받아쓰기’만 일삼은 지상파 방송의 행태는 시청자들을 등 돌리게 한 결정적인 모멘텀이 됐다. 뿐만 아니라 공영방송 KBS 사장이 정권과 유착해 보도개입을 일삼았다는 폭로가 나오고 또 다른 공영방송 MBC의 보도국 간부들 입에선 세월호 사고 유족들의 가슴에 생채기를 내는 발언들이 터져 나오면서 두 공영방송은 날개 없이 추락해 갔다.


지상파의 신뢰도 추락은 각종 여론조사와 지표 등에서 확인된다. 지난해 말 여론조사전문기관 리서치뷰가 실시한 ‘가장 신뢰하는 방송’ 설문조사에서 1위를 차지했던 KBS는 세월호 사고 직후인 지난 5월 같은 조사에서 JTBC에 1위 자리를 내줬다. 지난 9월 시사저널이 각계 전문가 1000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설문조사에서도 ‘전통의 강자’였던 KBS는 신뢰도와 열독률 부문에서 각각 2,3위로 밀려났다. KBS를 밀어낸 자리는 대부분 JTBC가 차지했다. 김춘식 한국외대 미디어커뮤니케이션학부 교수는 “뉴스 시청률로 보면 여전히 지상파가 훨씬 높지만 습관적인 시청자들을 빼면 지상파 시청률이 종편보다 낮을 수 있다”며 “시간이 지날수록 지상파의 절대적 우위는 낮아질 수밖에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공영방송의 추락은 지상파 전체의 위기를 심화시켰다. 조항제 부산대 신문방송학과 교수(한국언론정보학회장)는 “MBC가 특유의 날카로움을 잃어버리면서 전체적인 지상파 신뢰도가 하락했다. 공영방송이 언론으로서 권위를 지키며 정도를 걸어야 하는데 KBS, MBC가 시장에 지나치게 매몰돼서 제 역할을 못하고 권력에 쓴 소리를 해야 할 시점에도 전혀 하지 못하면서 지상파 전체적으로 권력에 의해 재갈이 물려진 느낌을 받게 된다”고 지적했다.
지상파 방송사 한 관계자도 “공영방송이 제 역할을 했으면 상황이 이렇게까지 나빠지진 않았을 것”이라며 책임론을 인정했다. 하지만 그는 “공영방송이 제 역할을 할 수 없게 만든 정권에도 책임이 있다”고 덧붙이며 “지상파가 제 역할을 할 수 있게 제도적으로 만들어줘야 하는데 제도를 못 고치게 하는 정부여당에 잘못과 책임을 물어야 한다”고 말했다.


조항제 교수도 1차적으로는 정치권력이 방송을 보는 시각부터 바뀌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는 “정권이 방송을 도구로만 보는 이상 지금 나타나는 현상들은 치유되기 힘들다”며 “정치권력의 일상적 개입을 차단하고 법제도와 공영방송 거버넌스를 재정비해서 공영방송이 제 자리를 잡게 되면 지상파 방송 전체가 지금보다 나아질 수 있을 것”이라고 밝혔다.


김춘식 교수는 상업주의 행태를 벗어나 저널리즘의 퀄리티를 높이는 것이 중요하다고 지적했다. 김 교수는 “JTBC와 같은 형태의 뉴스 포맷 변화만으로도 뉴스에 대한 몰입도는 얼마든지 달라질 수 있다. 문제는 저널리즘의 퀄리티가 좋다고 해서 시청률이 높은 것은 아니라는 점이다. 시장 논리를 떠나 방송 채널의 정체성과 관련된 문제이기 때문에 정치적 판단이 필요하리라고 본다”고 말했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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